일본 침몰
고마쓰 사쿄 지음, 고평국 옮김 / 범우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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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 노동권익센터 소식지 2024년8월


최악의 상상이 빚어내는 희망의 열쇠



일본침몰/ 고마쓰 사쿄 / 범우사 / 20068(2)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무더위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處暑)도 지났건만 부산은 오늘 현재 연속 26일 열대야로 최악의 여름으로 꼽히는 2018년에 근접하고 있다. 그럼에도 올해 여름이 남은 생에서 가장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록될 거라는 어느 기상학자의 말이 섬뜩하다.


주변에서는 모처럼 휴가철을 맞아 가족끼리 가까운 일본이라도 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88일 규슈 남부 미야자키현(宮崎県)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고, 일본 정부는 난카이南海 대지진 임시 정보(거대 지진 주의)’를 발표했다. 폭염에, 지진에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 정부는 815일 대지진 주의보를 해제했지만, 810일 홋카이도 북동쪽 해역에서 6.8의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819일에는 이바라키현 앞바다에서도 5.1의 지진이 일어났다.


마침 Neflix, Wavve, Tving 등 국내 OTT에서 일본 지진을 소재로 한 9부작 일본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2021)을 방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Wavve에는 쿠사나기 츠요시,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동명의 영화 <일본침몰>(2006), Neflix에서는 애니메이션 <일본침몰 2020>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제작된 <일본침몰(日本沈沒)>1973년 고마츠 사쿄(小松佐京: 한국어판 책에는 고마쓰사쿄로 표기)가 쓴 동명의 소설에 기반하고 있다. 566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에 당시 출판사에서는 출판을 꺼리기도 했다. 초고의 제목은 <일본멸망(日本滅亡)>이었으나, 출판사에서 수정했다. 이 소설은 판수를 거듭하면서 총 400만 부가 넘게 판매되는 등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침몰>은 당시(1973)에도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되었고, 65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곧이어 라디오 드라마와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고마츠 사쿄가 1964년에 쓴 단편소설에서 이미 등장했었던 일본 국토의 소멸이라는 아이디어는 지리적 침몰을 넘어 일본 경제-정치의 위기, 일본 사회의 해체, 인류 미래의 불확실성 등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소설에서는 한 나라, 한 국가, 한 민족만의 위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맞닥뜨린 전대미문의 위기로 규정해 타국에 구호(救護)를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작자 고마츠 사쿄는 호시 신이치(星新一), 츠츠이 야스타카(筒井康隆)와 함께 일본 SF3대 거장으로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마츠 사쿄는 20113월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 후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든 기꺼이 죽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조금 더 살아서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지켜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으나, 그해 728일 폐렴으로 사망하고 만다.


193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고마츠 사쿄의 본명은 고마츠 미노루(小松実). 종전 당시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던 미노루는 교토대학 입학 후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좌파 기가 있는 교토대학생이라는 뜻으로 필명(筆名)을 사쿄(左京)로 정했다. 1945년 종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 징집되어 죽은, 자신과 동갑인 14세의 소년의 사연을 듣고,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고민하면서 SF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 일본공산당이 마오주의에 입각해 조직한 지하 준군사 전위조직인 야마무라 공작대(山村工作隊) 등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의 원폭개발과 공산당 활동방식에 의문을 품고 탈당한다.


초판이 발간된 1973년은 관동대지진(1923)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던 해였다. 저자의 모친도 19세에 관동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소설에서도 관동대지진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먼젓번 대지진 때도 한국인들의 폭동에 대한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한 것은 지진 이튿날 오후부터였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자경단(自警團)이 보름 동안에 천 명 이상의 한국인을 죽였지.”(263)


근대 최초의 간토 대지진이 있었어.도쿄는 무서운 대화재로 10만 명이라는 사람이 죽고 수천 명의 한국 사람이 유언비어로 민중에게 살해되고 또 평소부터 천황 정부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던 사회주의자가 암살되었지.군비확장에 의한 경기회복, 대륙침략과 만주획득에 의한 위기의 타개라는 식으로 저 불행한 전쟁을 향해 전전해 갔다네.”, “결국 제1차 간토 대지진이 이 나라의 파시즘화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303)



이 소설이 쓰여진 1973년 즈음에는 전공투 학생운동이 사그라드는 대신, 점차 시민운동, 정치운동, 노동운동 등이 일본 사회에서 확산되던 시기였다. 세계적으로는 오일쇼크가 닥쳤고, 국가-자본-노동의 타협에 기반한 포디즘(fordism) 자본주의 호황기가 저물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위안부강제징용문제에 대한 반성, 재일조선인(자이니치) 차별 철폐 운동이 시작되고, 일본 사회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고마츠 사쿄는 군국주의 일본이 상정하던 국가-국민이 일체화된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난 관계를 상상한다. “나라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라는 총리의 발언이 이를 나타낸다. 1973년의 영화 <일본침몰>에서는 천황과 황후가 거주하는 도쿄 황거(皇居, 고쿄)로 피난을 온 국민들을 막아선 경찰에게 문을 열어주세요. 비상사태 위원장인 총리의 명령입니다라며, 천황의 권위보다 국민의 대표인 총리의 권위가 상위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나 2006년의 영화 <일본침몰>은 고마츠 사쿄의 관점에서 완전히 이탈한다. 일본 잠수정 파일럿의 영웅적인 희생을 통해 일본 국토 일부를 건질 수 있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일본인은 죽음 직전에서 구출된다. (2021년 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도 홋카이도와 큐슈는 침몰 되지 않는 것으로 그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과 대만 등의 경제적 부상, 중국의 패권 강화 속에서 일본 사회는 급속하게 보수화되고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는 사관을 부정하는)역사수정주의가 득세한다. 일본 내셔널리즘을 충실하게 투영한 영화 <일본침몰>(2006년판)은 헐리우드 영웅주의와 결합하면서 원작 <일본침몰>에서 명백히 후퇴한다. 원작 <일본침몰>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란 무엇인가?’, ‘일본이란 무엇인가?’ 등을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물으면서 전쟁 전후 시대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아무튼 2차세계대전 패전과 간토대지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원작 소설, 1995년 한신-고베 대지진을 깔고 있는 2006년 영화 <일본침몰>,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배경으로 하는 2021년 드라마 <일본침몰-희망의 사람>, 침몰 후 8년 후까지 상정하는 <일본침몰 2020>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판본의 일본침몰은 미디어믹스(media mix)의 재미를 선사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서 봤듯이 일본침몰이 현실화 된다면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산재한 수백 기의 핵발전소들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해일이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일본침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멸망’, ‘지구궤멸로 귀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일본침몰>(1973) 첫 장면에는 일본 열도가 원래 이 지구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50년 전의 암시가 소름 끼치도록 두려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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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막노동 일지 -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나재필 지음 / 아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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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4년6월호 통권71호




책담(冊談)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양솔규 / 편집위원장

 


나의 막노동 일지/나재필/아를/202311/17,000

 

우리가 87년 세대라고 부르는 인구군은 기계적으로 자를 수는 없지만 대체로 50년대 후반생부터 60년대 중후반생들까지를 말한다. 이들은 보통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와 많이 겹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도 일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71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과 일정하게 겹쳐지기도 하는 60년대생들은 850만 명(전체 인구의 16%에 달한다)이다. 60년대생들이 곧 65세 이상 나이가 되어 법적 노인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2024년 연말이 되며 고령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19%)

 

이 세대들은 참으로 낀 세대가 아닐 수 없다.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에게 복종한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에게 순종한 첫 세대이다. 또한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 해서 마처 세대라고 부른다. 이 거대한 인구군이 그럼 노동시장에서 퇴출했느냐? 그렇지 않다. ‘마처 세대에서 표현되듯이 이중부양 의무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감히 은퇴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기에 생활에 있어 현금수입은 이전보다 훨씬 필수적으로 되었다. 본인이 본인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89% 응답)하지만, 정작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비율은 62%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60년대생들의 70%가 현재 수입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고,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 평균 퇴직 나이가 54세인데, 이 퇴직 나이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퇴직 후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을 받기 전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본인들이 적정 정년을 평균 65(법정 정년 만60)라고 답했으니, 은퇴하는 54세부터 노령연금 수령까지 8년에서 10년 정도가 소득 크레바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 수령나이는 61~64년생: 63, 65~68년생: 64, 69년생 이후: 65) 따라서 퇴직이 곧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퇴출, 자유의 시작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60년대생. 영화판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문학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지방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 전공을 살려 호구지책으로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27년 간 지방언론사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거쳤다. 그리고 어느 날 (느낌적 느낌은 있었으나) 예기치 않은 조기퇴직을 결심했다. 그래도 지역 언론사에 있으면서 어깨에 힘 주고 다녔으나 조직의 뒷배경이 사라지자 그저 60을 바라보는 무직자에 불과했다. 삼식이가 될 수는 없었고, 영식이(집에서 한 끼도 안 먹는 사람)가 마음 편하니,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한식조리자격증을 준비하다가 조리보조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2,000명의 설거지를 맡아 하다가 3달만에 발톱3, 손톱4개가 빠지고 손을 들었다.

이후 노가다를 시작했다. ‘막노동으로 인생 2막을 열게 된 저자는 막노동꾼으로 살았던 몇 번의 계절이 나에겐 더 값진 흔적으로 남았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훈장 같은 것이다. 마치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중년의 남자가 취업난을 이겨내고 삶의 팽팽한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다시 쓸모를 되찾은 느낌이다고 말한다. 일명 노가다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스스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술에 절어 대충 사는 막장 인생이 아니라 하루하루 피와 땀으로 미래를 다지는 불굴의 역군이라고 말이다.

 

60년대생들의 자녀들이 바로 미디어에서 말하는 MZ세대이다. 저자는 막노동판에서 만난 청년들에 대해 그들은 이기적이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으며,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이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신진욱의 주장을 빌어 계급, 교육, 성별, 지역 등에 따른 차이와 불평등을 지운 채 어떤 동질성을 공유하는 세대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의 가시고기 헌신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고, 그들 부모 세대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힘든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저자의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건설현장에서 저자가 겪은 생생한 노동의 기록을 모은 1나의 막노동 일지, 6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을 그린 2나의 시간은 낡지 않았다이다. 두 부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른바 젊은 노인, 늙은 청년인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일지는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87년 세대의 자화상 같아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건설현장에서 일 잘하고 빠른 사람들이 대개 조선소 출신들이 많다는 점(‘조선족이라고 부른단다.)이다. 그러나 죽음의 조선소출신들은 저임금에 위험하기까지 한 조선소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단다. 플랜트 등 건설 현장과 조선소 노동시장이 서로 제로섬 관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들어봤지만, 이를 초짜(?) 건설 현장 노동자의 글을 통해서 접하니 더욱 생생하다. 조선소처럼 물량팀이 임시적으로 투입되어 돌관작업을 하는 것도 똑같다.

허투루 쓴 책이 아니라 긴 시간 생각하며, 다듬은 글들이다. 이 글을 다듬으며 자기 마음도 다듬고 보듬고 했을 저자의 노고, 다듬고 보듬기 전에 가졌던 상처투성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 가족과 동료 등 주변을 아우르는 마음씀씀이를 보면 이 책이 아깝고 소중해진다. 단순히 기자 출신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이다. 인구구조 때문이든, 노동 강요사회 때문이든, 시장화 때문이든 간에 아무튼 대한민국은 현재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밖에없는 사회이다. 죽도록 일해서 일한 만큼 행복을 사라는 자유시장 논리가 팽배한 것이다. 저자가 분명하게 인식하듯이 쉼 없는 노동이란 궁극적으로 행복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계속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노동보다 쉼에 집중한다. “휴식은 일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일의 동력을 비축하는 행위이며, 충실한 노동을 위해선 충분한 휴식이 절실하다고 얘기한다. 아무리 현금이 필수불가결하다 하더라도, 자본의 논리처럼 , , !’ 외친다고 해서 충분의 선을 넘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삶의 관점을 바탕으로 집단적 힘을 통해 노동시간의 단축, 자유시간의 확대를 이루지 못하는 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요원한 일이다. 흔히들 은퇴를 앞두고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하고는 한다. ‘버킷리스트는 사람을 양동이(bucket 버킷) 위에 세우고 목에 올가미를 건 다음 양동이를 차버리면 목이 졸라 죽는다는 것에 빗대어 양동이(버킷)에 서기 전에(또는 서고 나서야) 생각나는 소원을 뜻하는 말이다. ‘kick the bucket’은 교수형으로 죽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우리 시대의 버킷리스트 원픽을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 남은 여생은 노동중독에 걸려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시대라면 더더욱 현명하게 일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1963년 노동절 프로그램을 위해 쓴 단편소설 <노동 윤리의 몰락에 관한 일화>는 저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서부 유럽 바닷가 항구에서 한 어부가 보트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길을 지나던 관광객이 어부에게 다가가 날씨가 좋은데 왜 고기를 잡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필요한 만큼 이미 충분히 잡았다고 답했다.

관광객은 답답해하며 당신이 두 번, 세 번, 아니 그 이상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며, “1년쯤 뒷면 모터보트를 살 수 있고, 나중에는 어선도 사고, 냉동 창고, 훈제생선 창고, 공장, 헬리콥터까지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부는 그런 다음은요?”라고 되물었다. 관광객은 그런 다음 이 항구에 앉아 햇살과 풍경을 즐기면 되지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어부가 답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지난 세대도, 우리 세대도, 후배 세대도, 어느 집단이든 서로의 노동을 응원해주되, 노동에 매물되지 말고, 서로의 노고를 치사(致詞)해주는 풍토야말로 노동연대의 생명력을 틔우는 소중한 첫걸음일 것이다. 나의, 당신의, 우리의 삶을 응원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노동 공식은 죽도록 일해서 일한 만큼 행복을 사라는 자유시장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는 근시안적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서 비롯됐다. 죽도록 일해본 적 없는 자칭 싱크탱크들이 모여서 노동자들만 죽도록 일하라고 만든 정책들이다. - P138

베이비부머는 호황기와 불황기를 모두 겪은 ‘낀 세대‘이자 ‘마처세대‘라고도 불린다. 마처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말한다.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1세대, 부모를 부양했지만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 가족에게 헌신했지만 가족에게 헌신짝 취급받는 세대, 뼈 빠지게 일하고도 구조조정된 세대다. - P169

내가 막노동 현장에서 만난 청춘들은 그런 mz세대가 아니었다.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의 가시고기 헌신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고, 그들 부모 세대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힘든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 부모와 자식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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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 - 부동산 광풍에 신음하는 부산의 길을 찾아간 현장 답사기
이준영 지음 / 호밀밭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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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다크 유랑길


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 이준영 / 호밀밭 / 2024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부산노동권익센터 기고문 2024.06.14


철판을 때리는 망치질 소리에 수레는 눈을 떴다. 새벽 두시였다. 깡깡! 리듬을 타는 힘차고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 선박 수리 조선소에서 새벽 교대조로 일하는 깡깡이 아줌마들의 첫 망치질 소리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낡은 2층 목조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영도 남항동 골목은 조용했다. 건너편 건물 다락방에서 아이가 깼는지 가늘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김언수, 물개여관중에서-

 

2020년 열린 부산 비엔날레는 11명의 소설가, 시인의 작품에 호응, 협업한 시각예술, 사운드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부산 출신 소설가 김언수는 물개여관이라는 작품을 통해 영도 남항동 특유의 분위기를 전달한 바 있다.

비린내, 요트, 선박수리, 마이스(MICE) 산업, 커피, 멸치잡이, 컨테이너 물류 거점 등 부산은 이질적이면서도 공통된 요소를 품은 용광로 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도 고무 신발산업부터, 조선업, 자동차산업, 영화산업까지 다양한 변천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돼지국밥, 재첩국, 복국, 완당, 꼼장어, 낙지볶음, 밀면, 구포국수, 파전, 간짜장 등 부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다양하고 독특한 음식문화는 입소문을 타고 이제 전국화되고 있다.

부산은 다양한 자연적 요소도 품고 있다. 해운대, 광안리, 송정, 다대포 등 해수욕장과, 온천천, 수영강, 낙동강 등 하수, 금정산, 백양산, 장산, 승학산, 구덕산, 달음산, 봉래산 등 산까지 갖춰 까도까도 계속 다양한 레이어를 선보이는 볼매 지역이다. (게다가 영도, 동백섬, 오륙도 등 섬까지!) 이러니 수도권을 비롯한 타지 사람들은 부산에 한 번 가보는 것이(게다가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이라는 심리적 거리감에서 비롯된) 로망 중의 로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부산 사람들에게 부산은 현재 어떤 도시로 인식되고 있을까? 첫 번째로 고령화된 도시라는 점이다.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남(24.7%), 경북(23%), 강원(22.3%)에 이어 21.3%4위이다. 2021년부터 20%를 넘어선, 전국 최초의 초고령화 도시이면서, 고령화 속도도 부산이 0.968%포인트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1인가구 비율은 35%에 달하며 특히 고령층 1인 가구가 많다. 반대로 2023년 작년 한 해에만 7,600여 명의 청년(25~34)들이 부산을 떠났다. 112백 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출되었다. 오죽하면 부산을 일컬어 노인과 바다라고 부른단다.

고령화와 청년인구유출, 자연인구감소는 자연스럽게 도시의 경관도 변모시킨다. 국토교통부 ‘2023년 전국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노후 주택 비율은 17개 시·도 중 가장 높다. 부산의 주거용 건축물은 236696동인데, 이 중 162633(68.7%)이 준공된 지 30년을 넘겼다. 전국 노후율 평균은 52%, 부산이 평균을 16.7%나 상회한다. 부산의 빈집은 5천 호가 넘어, 전국 광역, 특별시 중 가장 많다. 도시의 슬럼화 속도도 가장 빠르다.

 

이쯤 되면 부산의 외관은 다 허물어져 폐허가 되는 것은 아닌가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북쪽 노포동 넘어 양산 사송에서부터 남쪽 바닷가 남천동까지, 동쪽 기장에서부터, 서낙동강 에코델타까지 거대한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장전동에서 교대역까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보면 그야말로 초고층 아파트숲을 뚫고 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석양 노을을 보기 힘든 부산에서는 이제 금정산, 백양산 조차 보기 쉽지 않다. 여행책자에 소개되고 유튜브에 나오는 부산도 부산이지만, 허물고, 파괴하고, 새롭게 조성된 낯선 부산도 부산이다. 지금의 단추를 통해 역으로 되짚어가는 사색과 여정이 필요한 것이다.

 

부산일보 기자인 이준영 님이 쓴 책 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은 그런 책이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폐기된 옛 백 년 길을 찾자는 의도로 오 년 전 부산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 뒤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는 동안 거대한 아파트 광풍이 불어닥쳤고, 수많은 규제는 철폐되었다. 과거 자식들 찾아 상경한 촌로들의 목뼈를 꽤나 아프게 했던 여의도 63빌딩은 우습다. 50, 60층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도시가 5년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알아보는 시계열적인 탐색에는 공간적 탐색도 필수적이다. 꼼꼼히 돌아다니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표지에는 이 책을 부동산 광풍에 신음하는 부산의 길을 찾아간 현장 답사기로 소개하고 있다. 오죽하면 저자 이준영 걷고’·쓰다라고 했을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단지 걷고 쓴 것만이 아니라, 동네 토박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도 듣고’, 많이도 기억해놓기도 했다. 역시나 도시에는, 공간에는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일 터. 그래서 이 책은 부산에 대한 수많은 소개서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부산 소개 & 여행서들이 맛집투어, 경관투어라면 이 책은 부동산 광풍에 신음하는 다크투어라고나 할까? 아닌 게 아니라 그 흔한 해운대 해수욕장, 센텀 마린시티 등 부산하면 떠오르는 사진들이 이 책에는 단 한 장도 없다. 아파트에 가로막히고, 가림막에 가려지고, 미로 속에 방치된 골목 같은 답답한 사진들만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삭막한 흑백의 사진들은 조만간 과거를 소환하는 소중한 증표가 될 터이다.

세포가 수명을 다해 소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새살이 돋아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홍콩이나 타이페이에는 마천루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홍콩 누아르에서 많이 봐왔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오래되었다고, 경제적 효율성이 없다고 방치하거나, 또는 파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프랑스 파리는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그 거리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그 유서 깊은 도시를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도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하게 생로병사의 계기를 겪는다. 인구변동과 건축자재의 사회적, 자연적 감가상각 속에서 생로병사가 초래하는 변화는 숙명이다. 즉 시간은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마음대로 그 질서에 개입해 시간을 내달리게 한다. 시간의 가속화는 존재를 파괴하고, 본질을 거세한다. 빈집이 남아도는 데도 멀쩡한 산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메워 택지를 조성한다. 빈집을 철거하고 보상하기보다는 택지를 조성하는 것이 더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대나무는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키가 자라는데, 아파트는 돈을 차지하기 위해 치솟는다고. 사라진 부산의 백 년 길에는 권력이 깊숙이 스며들었다. 자본의 권력이다. 솟을 만큼 솟아버린 자본의 권력 아래 음지에는 이제 자본이 쪽 빨아먹고 쭉정이가 되어버린 고령의 인구들이 자신만큼 낡아 버린 주택에서 신음하고 있다. 열리지 않는 통창문으로도 180도 오션뷰와 짠내음을 맡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낮아서 원할 때마다 열지 못하는 창문을 가진 사람도 있다. 파도 소리를 듣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의 색깔을 감상하고, 강물의 유량을 파악하고, 일출과 노을을 감상하는 일은 부산 사람이라고 해서 서울 사람보다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거래되고, 소중한 가치들이 멀어질 때, 우리는 부산을 무엇을 통해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55년 전, 부산 영주동,충무동 사람들은 그렇게 삶의 터전을 쓸쓸히 떠났다. 영문도 모른 채 맞은 집단 이주였다. 부산시 당국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란 거창한 이름만 허상의 깃발로 나풀거렸다. - P166

한국 전쟁 때 그 회사(대한도기주식회사(에서 일한 피란 화가들의 이름을 <그릇으로 보는 부산의 근현대>에서 다시 찾아본다. 김은호, 변관식, 김환기, 전혁림, 이중섭 등 일반인의 귀에도 익숙한 거장들이 망라돼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화가들이 그린 도자기 그림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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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30만부 기념 특별 리커버)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70호 2023년 겨울호


 

책담(冊談)

 

회한 속에도 쌓이는 미완의 과제들

 

 

양솔규 편집위원장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창비/20229/15,000

 

87년 6월항쟁은 표현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던 군부독재의 지배방식에 일정한 파열구를 내었다비록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했고방송예술에 대한 직접적간접적 검열이 존재하기는 했지만예술 창작 소재가 그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넓어졌다. TV에선 금지곡이 된 이후 들어본 적이 없던 아침이슬이 흘러나왔고노찾사의 노래 사계는 MBC 퀴즈 아카데미의 오프닝송으로 쓰이기도 했다대대적인 탄압이 자행되기는 했지만 노동운동농민운동학생운동 등 대중운동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대응하는 군부독재 잔존세력의 반작용으로(여겼고감당할 만했다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었다그만큼 자신감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 88년 이태의 소설 남부군이 출간되었다그동안 들어본 적 없던 빨치산의 존재가 대중적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90년에는 이 소설을 가지고 정지영 감독이 영화남부군을 찍었다안성기최민수최진실 등 인기 절정의 배우들이 빨치산이 되었다. 91년에는 왜곡과 자극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MBC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 여순반란사건과 4.3항쟁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가 가능해졌다조정래의 태백산맥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1989-1991), 실록 정순덕(1989) 등 그 외 빨치산을 소재로 한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그 와중인 1990년 계간 실천문학에서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 연재되었고, 3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소설가 김남일은 월간 말》 913월호에서 빨치산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운동권 학생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떼지어 지리산으로 몰려들었는데……뱀사골장터목노고단 등지의 계곡 산장은 밤마다 그들이 불러대는 투쟁가로 들썩거렸다.……내 스스로 그런 증후군을 앓고 있으면서도 언제부턴가 가슴 한구석에 묘한 거부감을 키워내기 시작했다어딘가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러한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89년 여름고등학생이던 시절 친구 몇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힘들게 도착한 세석평전에 텐트를 치고 소주를 기울이던 밤세석평전엔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청년노동자들의 온갖 투쟁가가 합쳐졌다가 흩어졌다가 번갈아 가며 불리며 메아리쳤다. (당시에는 세석평전에서 캠핑과 취사행위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지리산의 빨치산이라는 존재는 과거의 잊혀진 그림자가 아니라미래의 등불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럼에도 소설가 김남일과 마찬가지로 빨치산 존재에 대한 열광’(?)에 묘한 거부감이 들기는 했다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을 완수하자는(?) 빨치산 정신을 NL 운동은 전면에 내세웠으나여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과 논리적 공백지점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거기에 대한 알리바이는 항상 미국’ 이라는 거악으로 귀결되곤 했다답이 정해져 있는 논리의 반복 속에서 질문은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북한 바로알기와 한국 현대사 바로 알기의 맥락’ 속에서 빨치산의 좌표는 정해졌고, ‘바로알기는 논리적 구조에 부합하는허용가능한 정도의 정보만을 제공할 따름이었다이후에 대중적으로는(?)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2004)가 80년대 말의 열기 속의 공백지점들을 메꿔준 듯하다.


1994년 5월 제2기 한총련은 신념의 강자’ 빨치산 전사들을 조선대에서 열린 출범식 무대에 세웠다조국통일운동에 앞장선 어린 학생 선봉대들의 모습에서 빨치산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투영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NL 주류의 과잉된 감정에 치우친 정세판단은 결국 몇 년 뒤 대중적인 파산을 선고받는다한총련 1~3기가 달성한 대중동원력의 절정 이면에는 발밑부터 무너지고 있던 현실·대중과의 괴리가 있었다아무튼한총련 지도부튼 빨치산 전사들을 통해 자신들의 반미자주애국투쟁이 역사적 정당성과 시대적 연속성북한과의 접점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세대가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79년 12.12 쿠데타를 마주하고 있다지금으로부터 44년 전 사건이다우리 대중운동이 한참 꽃피던 1990년의 44년 전은 해방공간(1946)이었다우리가 그 당시 해방공간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지금의 MZ세대가 12.12와 5.18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이 비슷할 것이다. 1990년 당시 1960년 4.19는 30년 전이었고지금으로부터 보자면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의 시작가 같다그러나 시간적 거리는 상대적이기도 하다사회적 맥락에 따라 압축되기도 하고이완되기도 한다아마도 NL운동 때문이기도 할텐데우리에게 해방공간과 빨치산은 시간적으로 더 가까운 60년 4.19보다 훨씬 익숙했었다북한과는 독립적으로 일어난 4.19 혁명은 NL이 득세하면서부터는 주목도가 떨어진 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 당시 나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을 읽지 않았다그리곤 정지아라는 소설가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물론 그의 다른 글들도 본 적이 없다따라서 소설가 정지아의 문체가 어떤지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어떤 작품활동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지냈다작년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지만,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제목과 유사한 이 소설책에 대해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그러다 아주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 대출할 만한 책이 워낙 없길래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시작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실제 소설가 정지아의 부친인 빨치산의 딸》 실존인물인 정운창씨는 2008년 51일 별세했다소설은 장례 후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의 고향이자 삶터였던 구례 곳곳에 뿌리면서 끝이 난다그 사이사이 상갓집에 조문을 오는 수많은 사람들(빨치산 전사들구례 등 친척가족들 등)과의 인연의 타래들을 풀어내는 것이 이 소설의 골자다이 소설에는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그 인연들에 대해서 풀고 있지만그 사회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아버지는 혁명운동 속에서 무엇을 고갱이로 보고 있는지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그 관점을 가지고 결국 그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하는지 등을 언뜻언뜻 이야기하고 있다작가의 아버지 故 정운창씨가 세상을 떠난지도 15년이 넘었다그런 시점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니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빨치산의 존재에 대한 재소환은 아닐 것이다아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빨치산’ 책이 아니다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의 능수능란한 속도감이 재미를 더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현재의 상황을 소환하게 된다누군가는 노동운동을누군가는 진보정당운동을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사를 소환하고 재해석하게 될 것이다굳이 여기서 그 유추의 실마리를 다 풀어낼 필요는 없을 듯하고.

다만 소설 속에서 주목할 만한 한 가지 대목이 있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44)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147)

 

이제 빨치산 전사들이 자신들의 젊은 날의 모습을 투영하며 기대해 마지않았던, (젊었던 왕년의노동운동가들이 은퇴를 하고노년에 접어들고 있으며부고 소식도 들린다신념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우리의 투쟁이 무의미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빨치산뿐만이 아니다역사를 허무주의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누차 의식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역사가 아닌 개인에게 회한이 없을 수는 없지 않겠나나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노동운동의 선배들이 느낄지도 모르는 그 회한을 헤아린다빨치산들의 죽음에 고령화된 노동운동가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한탄을 하기도 했다.” (196)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198)

 

그리하여 그 고통으로부터 아버지는 해방되었지만자식에게는 여전히 그 고통이과제가이어지는 것일까학살과고문차별과궁핍이라는 외부적 고통 외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이상과 꿈이 무너지고 멀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내부적실존적 고통이 있었다그 고통은 자본주의 속에서 여전히 대물림 되는 현실이다그 대물림을 끊기 위해 노동운동은 수십 년을 싸워 왔다그러나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날빨치산 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와 굳이 왜 고향 구례로 다시 돌아갔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미완의 과제들이 역사 속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가운데새롭게 되살아나는 과제들은 예전과 같지 않지만다르지도 않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 P224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P198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 P196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 P147

만에 하나 어머니가 월북했다면 자기 농사에 심혈을 기울이다 진작에 숙청당했을 거라고. 그것이 당신들이 믿는 사회주의의 실체라고. - P103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 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 P98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 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 P21

사상이란 저렇듯 느닷없이 타인을 포용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일까. 내 부모에게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 P23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 P27

"여호와의 증인들이 한 감방에 있었는디 갸들은 지 혼차 묵들 않애야. 사식 넣어주는 사램 한나 읎는 가난뱅이들헌티 다 노놔주드라. 단 한멩도 빠짐없이 글드랑게. 종교가 사상보담 한질 윈갑서야."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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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 노동이 답이다
안나 쿠트.에이단 하퍼.알피 스털링 지음, 이성철.장현정 옮김 / 호밀밭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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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2년 여름호(통권64호) 



책담(冊談)

 

긴축의 시대, 노동시간 단축을 지렛대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4일 노동이 답이다/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호밀밭/20225/15,000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 양대 선거가 모두 끝이 났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모두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분주한 거 같다. 더불어민주당이야 가지고 있는 파이가 크니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국민의힘이라고 시작

쉽겠는가. 모래알같은 당 조직의 결합력과 상실된 깃발이 아직 충분히 재건되지 않았다. 정의당은 파이가 작아 오히려 더 문제인 거 같다. 누구든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참담한 결과야 이미 예견된 바이고, 당연히 스스로 책임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위기를 정책의 위기로 진단하면서 승부수’(?)였던 4일제공약 등이 충성도가 떨어지는 공약이며, ‘졸속 공약이고, “1층을 안 짓고 2층을 짓겠다는 거라고 지적한다(장제우 작가). 이것이 정의당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인지 비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4일제공약이 졸속적인 공약이 맞다 하더라도 과연 졸속 공약때문에 정의당에 줄 표를 거둬드렸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4일제 공약을 포함한 정책들이 이슈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까지 비약시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선에서는 주4일제 복지국가나 신노동법이 주요한 슬로건이자 공약이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주4일제와 관련해서는 공공부문 시범 운영노동시간 단축 사업장 인센티브단 두 줄이 전부였다. 천번 양보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졸속적인 주4일제에 돌릴 수는 있겠지만, 과연 지방선거에서 대표공약도 아니었던 4일제를 심판장에 불러세우는 것은 4일제에게는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의당의 정책이론가 중 한 명인 장석준도 (지방선거가 아니라) 이번 대통령선거의 기본 구도로 인해 정의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구호를 내세웠더라도 지지를 확대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전제를 달기는 하지만, ‘4일제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4일제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에게 친숙한 노동시간 표현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4일제 복지국가구호는 정의당이 여전히 정규직, 화이트칼라를 주된 지지 집단으로 설정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당장의 일자리나 노동 안전 등이 관심사인 계층에게는 상당히 태평한 정치 세력으로 비췄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의 근저에는 4일제라는 슬로건이 다양한 노동시간단축 표현(주당 노동시간 단축 등)을 가둬버리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정의당 대선공약집에는 4일 근무제(32시간)’으로 표현되어 있는 바, 반드시 주4일제가 주3일의 휴무일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노동시간단축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변호를 해주고 싶다. 오히려 정의당의 실책은 4일제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적극 부합하면서, 그 속에 담긴 정책패키지들 예컨대 최소노동시간보장제생애주기별 노동시간 선택제’, ‘성별임금격차해소’, ‘국가일자리보장제’, ‘생활임금제등을 종합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대중들이 4일제에 호응한 것은 3일 휴무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을 청년층, 화이트칼라의 요구로 축소해서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산업특성과 근무방식에 따라 대중들이 어느 지점, 어떤 표현에 자신의 욕구를 투과해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장시간 노동체제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을 억누르는 조건에서 굳이 그렇게 짜게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코로나 19’ 시국 동안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유시간강제로경험하면서, 코로나 이전의 강제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비해 보고, 삶의 의미나 노동의 목적 등에 대해 좀 더 성찰적인 시간을 견뎠을 거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선 과정에서 4일제에 대해 일정한 호응(비록 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이 있었다면, 왜 그런 호응이 있었는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적극적으로 해석해 과제화 시키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뭘 혁신하고 어떤 비상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요컨대 정의당이 평소 다양한 세력, 현장과 연대해 왔다면 다양한 통로를 통해 (4일제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결론을 만들어 냈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부당하게 4일제가 주범인 것으로 낙인 찍지는 말자는 것이다.

 

4일 노동이 답이다는 그런 의미에서 논의의 시작점에 읽을 만한 책이다. 원제는 “The Case for a Four Day Week”이고 (4일 근무제 도입사례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거 같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연구위원들인 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이 저자이다. 신경제재단(NEF)은 로자룩셈부르크재단(브뤼셀사무소), 아탁(ATTAC), 루즈벨트 연합과 함께, “노동시간의 공정한 나눔을 위한 유럽 네트워크(the European Network for the Fair Sharing of Working Time)”를 구축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이 책은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 202251일에 출간되었다. 1886518시간 노동제 총파업과 연이은 학살들이 일어나자, 189051일 제2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한 국제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51일 메이데이의 기원에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출판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교육원의 이사이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이성철 선생님과, 부산의 호밀밭 출판사 발행인인 장현정 선생이 번역했다. 지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더구나 이런 돈 안되는’(?) 책을 번역출간까지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시간 중노동에 대한 게으른 고정관념은 반드시 깨야만 하는 일종의 질병이고 이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 호밀밭출판사도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856년 호주 멜버른 석공들이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해 쟁취했고, 1919년 설립된 ILO8시간(40시간제) 산업노동시간 협약을 제정해 전세계에 이 원칙이 확산되었다. 1926년 포드자동차는 임금 삭감 없이 주5, 40시간 노동을 도입했으며, 1930년대 켈로그 시리얼 회사는 8시간 3교대 근무를 6시간 4교대로 바꾸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이틀 동안의 주말과 주40시간 노동은 표준이 되었다.(한국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8시간 노동 규범에 갇혀버렸고, 케인스가 (1930년대에) 예측한 주당 15시간 표준은 아직도 요원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

 

노동시간 단축은 공식 육아와 비공식 육아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여성과 남성의 관계 등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돌봄21세기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사회적 돌봄은 디테일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 노동시간 단축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전제 조건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원분배의 전제 조건이다. 정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환경 보호, 생태발자국 줄이기에도 노동시간 단축은 강력한 동인이 된다. 장시간의 유급 노동과 고탄소 소비 패턴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저자들은 주당 노동시간 단축이 생태적 한계 내에서 인간의 번영과 사회적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실제 사례

 

프랑스는 1998년과 2001년 사이 표준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12.5%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속에서 조스팽 사회당 정부는 녹색당, 공산당과의 연정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브리1, 오브리2법이라 불리는 법안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재정적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들어선 사르코지 우파정부는 오드리법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주35시간 노동은 사실상 폐지되지 않았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노인 요양병원은 하루8시간 일하던 68명의 요양보호사의 노동시간을 급여 손실 없이 6시간 노동으로 전환했다. 17명이 추가로 고용되었고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감소, 건강 증진, 결근 감소 등이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결합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실업률을 낮춤으로써 높은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고, 더 생산적인 곳에 공적자금이 투여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단순한 노동시간 상한이 아니라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다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벨기에는 2002년 신용 시간제(time credit scheme)를 도입했다.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개인은 최대 1년 동안 아예 쉬거나, 2년 동안 절반만 일하거나, 나누어 쉬면서 최대 5년 동안 20%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독일 금속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계좌로 알려진 시간은행 제도가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유연한 근무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유연함을 누가 통제하는가이다. 연간노동시간 분배, 교대제, 안식년, 근무시간 가불제도 등에서 노동자들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끔 요구해야 한다.

 

제조업 등에서 임금 손실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작업의 질을 개선해서 생산성을 높여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포드나 켈로그의 경우에 그러했다.) 돌봄 노동 같은 다른 산업 같은 경우에 똑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추가로 직원을 채용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대신 정부는 실업률 감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감소로 투여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어느 계층에 한정될 때 계급 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시간 계좌-은행이나, 정의당의 최소노동시간보장제, 생활임금제 등이 노동시간 단축의 패키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장시간노동-저임금 / 실업-빈곤 / 장시간노동-고임금 / 단시간노동-고임금(고소득) 등으로 나뉜 계급 내(그리고 산업별) 임금과 시간의 불평등을 고쳐 나가야 한다.

 

시간은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사회적자산이다. 이를 확보하는 싸움이 운동의 토대를 결정 짓는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정상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8시간 노동제, 40시간 노동은 이제 새로운 정상의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느리게 일어날 수밖에 없고(그러나 이미 시작되었다.) 결과는 획일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임금, 산업 전략, 복지 국가 개혁, 기후 완화 등 진보적 구조변화 패키지의 일부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그린 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자동화의 압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산업 내 정상의 기준들을 주4일제(노동시간단축)로 채택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노동조합의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이 중요하며, 여유가 있는 부문의 경우 보다 많은 급여 인상보다 추가 휴가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영진의 리더십, 정부의 정책적 지원, 노동조합의 교섭, 세 가지 경로를 강제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의당에 대한 평가에서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4일제(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화두를 정의당이 던졌다면, 그 부족한 정책적 디테일과 사회적 압력은 노동조합이 맡아야 한다. 정의당은 지방선거 공약으로 노동시간 단축 위원회 설치 및 공공부문 시범 운영을 내세웠다. 이 공약은 노동조합이 받아 안을 수 있다. 1998IMF 사태 때를 돌이켜보면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단축과 사회적 안정망 확보를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지금의 정국은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긴축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 4차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를 맞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정책적 대응과 집단적 압력을 모을 수 있는 위원회를 총연맹과 지역 노동 차원에서 만들 수 있다. 또는 공공부문의 주4일제 시범 운영을 직접 단체교섭을 통해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다소 거칠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추동해야 할 것이다. 자본은 먼저 시작하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4일 근무시대/피에르 라루튀르,도미니크 메다/율리시즈/20183/15,000

금요일은 새로운 토요일-경제를 살릴 주4일 근무제/페드로 고메스/넥서스BIZ/20226/19,000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안나 쿠트, 앤드루 퍼시/클라우드나인/20217/15,000

8시간vs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벤저민 클라인 허니컷/이후/2011/18,000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새물결/200512/9,900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해 깊이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로 알려져 있다. - P94

네덜란드에서 노동자들은 아픈 친척, 광범위한 가족 구성원, 동거인이나 이웃 혹은 친구를 포함한 지인들을 돌보기 위해 법적으로 돌봄 휴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의 일환으로 고용주는 직원에게 통상 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최대 2주 동안 적어도 법정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 P93

진보적이 의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면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강력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유급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사람들에게 공동체 기반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역 그룹에 가입하고, 지역과 국가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도 시간이 걸린다. - P32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런 말로는 부족할 만큼 사실 훨씬 더 소중하다. 우리에게 돈은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은 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된 자원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이며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또 얼마만큼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최우선으로 중요한 일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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