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막노동 일지 -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나재필 지음 / 아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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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4년6월호 통권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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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솔규 / 편집위원장

 


나의 막노동 일지/나재필/아를/202311/17,000

 

우리가 87년 세대라고 부르는 인구군은 기계적으로 자를 수는 없지만 대체로 50년대 후반생부터 60년대 중후반생들까지를 말한다. 이들은 보통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와 많이 겹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생)도 일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71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과 일정하게 겹쳐지기도 하는 60년대생들은 850만 명(전체 인구의 16%에 달한다)이다. 60년대생들이 곧 65세 이상 나이가 되어 법적 노인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된다. 2024년 연말이 되며 고령인구 비율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19%)

 

이 세대들은 참으로 낀 세대가 아닐 수 없다.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에게 복종한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에게 순종한 첫 세대이다. 또한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 해서 마처 세대라고 부른다. 이 거대한 인구군이 그럼 노동시장에서 퇴출했느냐? 그렇지 않다. ‘마처 세대에서 표현되듯이 이중부양 의무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감히 은퇴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사회 모든 영역에서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기에 생활에 있어 현금수입은 이전보다 훨씬 필수적으로 되었다. 본인이 본인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89% 응답)하지만, 정작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 비율은 62%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60년대생들의 70%가 현재 수입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고,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 평균 퇴직 나이가 54세인데, 이 퇴직 나이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퇴직 후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을 받기 전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본인들이 적정 정년을 평균 65(법정 정년 만60)라고 답했으니, 은퇴하는 54세부터 노령연금 수령까지 8년에서 10년 정도가 소득 크레바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 수령나이는 61~64년생: 63, 65~68년생: 64, 69년생 이후: 65) 따라서 퇴직이 곧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퇴출, 자유의 시작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60년대생. 영화판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문학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지방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해 전공을 살려 호구지책으로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27년 간 지방언론사 등에서 기자,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거쳤다. 그리고 어느 날 (느낌적 느낌은 있었으나) 예기치 않은 조기퇴직을 결심했다. 그래도 지역 언론사에 있으면서 어깨에 힘 주고 다녔으나 조직의 뒷배경이 사라지자 그저 60을 바라보는 무직자에 불과했다. 삼식이가 될 수는 없었고, 영식이(집에서 한 끼도 안 먹는 사람)가 마음 편하니,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한식조리자격증을 준비하다가 조리보조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2,000명의 설거지를 맡아 하다가 3달만에 발톱3, 손톱4개가 빠지고 손을 들었다.

이후 노가다를 시작했다. ‘막노동으로 인생 2막을 열게 된 저자는 막노동꾼으로 살았던 몇 번의 계절이 나에겐 더 값진 흔적으로 남았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훈장 같은 것이다. 마치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중년의 남자가 취업난을 이겨내고 삶의 팽팽한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다시 쓸모를 되찾은 느낌이다고 말한다. 일명 노가다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스스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술에 절어 대충 사는 막장 인생이 아니라 하루하루 피와 땀으로 미래를 다지는 불굴의 역군이라고 말이다.

 

60년대생들의 자녀들이 바로 미디어에서 말하는 MZ세대이다. 저자는 막노동판에서 만난 청년들에 대해 그들은 이기적이지도 무기력하지도 않으며,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이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신진욱의 주장을 빌어 계급, 교육, 성별, 지역 등에 따른 차이와 불평등을 지운 채 어떤 동질성을 공유하는 세대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의 가시고기 헌신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고, 그들 부모 세대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힘든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저자의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건설현장에서 저자가 겪은 생생한 노동의 기록을 모은 1나의 막노동 일지, 60년대생,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을 그린 2나의 시간은 낡지 않았다이다. 두 부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른바 젊은 노인, 늙은 청년인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일지는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87년 세대의 자화상 같아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건설현장에서 일 잘하고 빠른 사람들이 대개 조선소 출신들이 많다는 점(‘조선족이라고 부른단다.)이다. 그러나 죽음의 조선소출신들은 저임금에 위험하기까지 한 조선소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단다. 플랜트 등 건설 현장과 조선소 노동시장이 서로 제로섬 관계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들어봤지만, 이를 초짜(?) 건설 현장 노동자의 글을 통해서 접하니 더욱 생생하다. 조선소처럼 물량팀이 임시적으로 투입되어 돌관작업을 하는 것도 똑같다.

허투루 쓴 책이 아니라 긴 시간 생각하며, 다듬은 글들이다. 이 글을 다듬으며 자기 마음도 다듬고 보듬고 했을 저자의 노고, 다듬고 보듬기 전에 가졌던 상처투성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 가족과 동료 등 주변을 아우르는 마음씀씀이를 보면 이 책이 아깝고 소중해진다. 단순히 기자 출신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이다. 인구구조 때문이든, 노동 강요사회 때문이든, 시장화 때문이든 간에 아무튼 대한민국은 현재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밖에없는 사회이다. 죽도록 일해서 일한 만큼 행복을 사라는 자유시장 논리가 팽배한 것이다. 저자가 분명하게 인식하듯이 쉼 없는 노동이란 궁극적으로 행복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계속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는 노동보다 쉼에 집중한다. “휴식은 일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일의 동력을 비축하는 행위이며, 충실한 노동을 위해선 충분한 휴식이 절실하다고 얘기한다. 아무리 현금이 필수불가결하다 하더라도, 자본의 논리처럼 , , !’ 외친다고 해서 충분의 선을 넘을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삶의 관점을 바탕으로 집단적 힘을 통해 노동시간의 단축, 자유시간의 확대를 이루지 못하는 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요원한 일이다. 흔히들 은퇴를 앞두고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하고는 한다. ‘버킷리스트는 사람을 양동이(bucket 버킷) 위에 세우고 목에 올가미를 건 다음 양동이를 차버리면 목이 졸라 죽는다는 것에 빗대어 양동이(버킷)에 서기 전에(또는 서고 나서야) 생각나는 소원을 뜻하는 말이다. ‘kick the bucket’은 교수형으로 죽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우리 시대의 버킷리스트 원픽을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 남은 여생은 노동중독에 걸려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행한 시대라면 더더욱 현명하게 일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1963년 노동절 프로그램을 위해 쓴 단편소설 <노동 윤리의 몰락에 관한 일화>는 저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서부 유럽 바닷가 항구에서 한 어부가 보트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길을 지나던 관광객이 어부에게 다가가 날씨가 좋은데 왜 고기를 잡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필요한 만큼 이미 충분히 잡았다고 답했다.

관광객은 답답해하며 당신이 두 번, 세 번, 아니 그 이상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며, “1년쯤 뒷면 모터보트를 살 수 있고, 나중에는 어선도 사고, 냉동 창고, 훈제생선 창고, 공장, 헬리콥터까지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부는 그런 다음은요?”라고 되물었다. 관광객은 그런 다음 이 항구에 앉아 햇살과 풍경을 즐기면 되지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어부가 답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지난 세대도, 우리 세대도, 후배 세대도, 어느 집단이든 서로의 노동을 응원해주되, 노동에 매물되지 말고, 서로의 노고를 치사(致詞)해주는 풍토야말로 노동연대의 생명력을 틔우는 소중한 첫걸음일 것이다. 나의, 당신의, 우리의 삶을 응원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노동 공식은 죽도록 일해서 일한 만큼 행복을 사라는 자유시장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는 근시안적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서 비롯됐다. 죽도록 일해본 적 없는 자칭 싱크탱크들이 모여서 노동자들만 죽도록 일하라고 만든 정책들이다. - P138

베이비부머는 호황기와 불황기를 모두 겪은 ‘낀 세대‘이자 ‘마처세대‘라고도 불린다. 마처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말한다.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1세대, 부모를 부양했지만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 가족에게 헌신했지만 가족에게 헌신짝 취급받는 세대, 뼈 빠지게 일하고도 구조조정된 세대다. - P169

내가 막노동 현장에서 만난 청춘들은 그런 mz세대가 아니었다.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의 가시고기 헌신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고, 그들 부모 세대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힘든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 부모와 자식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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