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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 - 부동산 광풍에 신음하는 부산의 길을 찾아간 현장 답사기
이준영 지음 / 호밀밭 / 2023년 8월
평점 :
부산 다크 유랑길
『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 / 이준영 / 호밀밭 / 2024년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부산노동권익센터 기고문 2024.06.14
“철판을 때리는 망치질 소리에 수레는 눈을 떴다. 새벽 두시였다. 깡깡! 리듬을 타는 힘차고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 선박 수리 조선소에서 새벽 교대조로 일하는 깡깡이 아줌마들의 첫 망치질 소리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낡은 2층 목조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영도 남항동 골목은 조용했다. 건너편 건물 다락방에서 아이가 깼는지 가늘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김언수, 〈물개여관〉 중에서-
2020년 열린 부산 비엔날레는 11명의 소설가, 시인의 작품에 호응, 협업한 시각예술, 사운드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부산 출신 소설가 김언수는 〈물개여관〉이라는 작품을 통해 영도 남항동 특유의 분위기를 전달한 바 있다.
비린내, 요트, 선박수리, 마이스(MICE) 산업, 커피, 멸치잡이, 컨테이너 물류 거점 등 부산은 이질적이면서도 공통된 요소를 품은 용광로 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도 고무 신발산업부터, 조선업, 자동차산업, 영화산업까지 다양한 변천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돼지국밥, 재첩국, 복국, 완당, 꼼장어, 낙지볶음, 밀면, 구포국수, 파전, 간짜장 등 부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다양하고 독특한 음식문화는 입소문을 타고 이제 전국화되고 있다.
부산은 다양한 자연적 요소도 품고 있다. 해운대, 광안리, 송정, 다대포 등 해수욕장과, 온천천, 수영강, 낙동강 등 하수, 금정산, 백양산, 장산, 승학산, 구덕산, 달음산, 봉래산 등 산까지 갖춰 까도까도 계속 다양한 레이어를 선보이는 볼매 지역이다. (게다가 영도, 동백섬, 오륙도 등 섬까지!) 이러니 수도권을 비롯한 타지 사람들은 부산에 한 번 가보는 것이(게다가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이라는 심리적 거리감에서 비롯된) 로망 중의 로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부산 사람들에게 부산은 현재 어떤 도시로 인식되고 있을까? 첫 번째로 고령화된 도시라는 점이다.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남(24.7%), 경북(23%), 강원(22.3%)에 이어 21.3%로 4위이다. 2021년부터 20%를 넘어선, 전국 최초의 ‘초고령화 도시이면서, 고령화 속도도 부산이 0.968%포인트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1인가구 비율은 35%에 달하며 특히 고령층 1인 가구가 많다. 반대로 2023년 작년 한 해에만 7,600여 명의 청년(25~34세)들이 부산을 떠났다. 1만1천2백 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출되었다. 오죽하면 부산을 일컬어 ’노인과 바다‘라고 부른단다.
고령화와 청년인구유출, 자연인구감소는 자연스럽게 도시의 경관도 변모시킨다. 국토교통부 ‘2023년 전국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노후 주택 비율은 17개 시·도 중 가장 높다. 부산의 주거용 건축물은 23만 6696동인데, 이 중 16만 2633동(68.7%)이 준공된 지 30년을 넘겼다. 전국 노후율 평균은 52%로, 부산이 평균을 16.7%나 상회한다. 부산의 빈집은 5천 호가 넘어, 전국 광역, 특별시 중 가장 많다. 도시의 슬럼화 속도도 가장 빠르다.
이쯤 되면 부산의 외관은 다 허물어져 폐허가 되는 것은 아닌가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북쪽 노포동 넘어 양산 사송에서부터 남쪽 바닷가 남천동까지, 동쪽 기장에서부터, 서낙동강 에코델타까지 거대한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장전동에서 교대역까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다보면 그야말로 초고층 아파트숲을 뚫고 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석양 노을을 보기 힘든 부산에서는 이제 금정산, 백양산 조차 보기 쉽지 않다. 여행책자에 소개되고 유튜브에 나오는 부산도 부산이지만, 허물고, 파괴하고, 새롭게 조성된 낯선 부산도 부산이다. 지금의 단추를 통해 역으로 되짚어가는 사색과 여정이 필요한 것이다.
부산일보 기자인 이준영 님이 쓴 책 『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 은 그런 책이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폐기된 옛 백 년 길을 찾자는 의도’로 오 년 전 부산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 뒤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는 동안 거대한 아파트 광풍이 불어닥쳤고, 수많은 규제는 철폐되었다. 과거 자식들 찾아 상경한 촌로들의 목뼈를 꽤나 아프게 했던 여의도 63빌딩은 우습다. 50층, 60층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도시가 5년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알아보는 시계열적인 탐색에는 공간적 탐색도 필수적이다. 꼼꼼히 돌아다니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표지에는 이 책을 ‘부동산 광풍에 신음하는 부산의 길을 찾아간 현장 답사기’로 소개하고 있다. 오죽하면 저자 “이준영 ‘걷고’·쓰다”라고 했을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단지 걷고 쓴 것만이 아니라, 동네 토박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도 ‘듣고’, 많이도 ‘기억해’ 놓기도 했다. 역시나 도시에는, 공간에는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일 터. 그래서 이 책은 부산에 대한 수많은 소개서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부산 소개 & 여행서들이 맛집투어, 경관투어라면 이 책은 부동산 광풍에 신음하는 다크투어라고나 할까? 아닌 게 아니라 그 흔한 해운대 해수욕장, 센텀 마린시티 등 부산하면 떠오르는 사진들이 이 책에는 단 한 장도 없다. 아파트에 가로막히고, 가림막에 가려지고, 미로 속에 방치된 골목 같은 답답한 사진들만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삭막한 흑백의 사진들은 조만간 과거를 소환하는 소중한 증표가 될 터이다.
세포가 수명을 다해 소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새살이 돋아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홍콩이나 타이페이에는 마천루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홍콩 누아르에서 많이 봐왔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오래되었다고, 경제적 효율성이 없다고 방치하거나, 또는 파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프랑스 파리는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그 거리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그 유서 깊은 도시를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도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하게 생로병사의 계기를 겪는다. 인구변동과 건축자재의 사회적, 자연적 감가상각 속에서 생로병사가 초래하는 변화는 숙명이다. 즉 시간은 질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마음대로 그 질서에 개입해 시간을 내달리게 한다. 시간의 가속화는 존재를 파괴하고, 본질을 거세한다. 빈집이 남아도는 데도 멀쩡한 산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메워 택지를 조성한다. 빈집을 철거하고 보상하기보다는 택지를 조성하는 것이 더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대나무는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키가 자라는데, 아파트는 돈을 차지하기 위해 치솟는다고. 사라진 부산의 백 년 길에는 권력이 깊숙이 스며들었다. 자본의 권력이다. 솟을 만큼 솟아버린 자본의 권력 아래 음지에는 이제 자본이 쪽 빨아먹고 쭉정이가 되어버린 고령의 인구들이 자신만큼 낡아 버린 주택에서 신음하고 있다. 열리지 않는 통창문으로도 180도 오션뷰와 짠내음을 맡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낮아서 원할 때마다 열지 못하는 창문을 가진 사람도 있다. 파도 소리를 듣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의 색깔을 감상하고, 강물의 유량을 파악하고, 일출과 노을을 감상하는 일은 부산 사람이라고 해서 서울 사람보다 더 쉽게 경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거래되고, 소중한 가치들이 멀어질 때, 우리는 부산을 무엇을 통해 기억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55년 전, 부산 영주동,충무동 사람들은 그렇게 삶의 터전을 쓸쓸히 떠났다. 영문도 모른 채 맞은 집단 이주였다. 부산시 당국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란 거창한 이름만 허상의 깃발로 나풀거렸다. - P166
한국 전쟁 때 그 회사(대한도기주식회사(에서 일한 피란 화가들의 이름을 <그릇으로 보는 부산의 근현대>에서 다시 찾아본다. 김은호, 변관식, 김환기, 전혁림, 이중섭 등 일반인의 귀에도 익숙한 거장들이 망라돼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화가들이 그린 도자기 그림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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