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 노동이 답이다
안나 쿠트.에이단 하퍼.알피 스털링 지음, 이성철.장현정 옮김 / 호밀밭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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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2년 여름호(통권64호) 



책담(冊談)

 

긴축의 시대, 노동시간 단축을 지렛대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4일 노동이 답이다/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호밀밭/20225/15,000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 양대 선거가 모두 끝이 났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모두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분주한 거 같다. 더불어민주당이야 가지고 있는 파이가 크니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국민의힘이라고 시작

쉽겠는가. 모래알같은 당 조직의 결합력과 상실된 깃발이 아직 충분히 재건되지 않았다. 정의당은 파이가 작아 오히려 더 문제인 거 같다. 누구든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참담한 결과야 이미 예견된 바이고, 당연히 스스로 책임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위기를 정책의 위기로 진단하면서 승부수’(?)였던 4일제공약 등이 충성도가 떨어지는 공약이며, ‘졸속 공약이고, “1층을 안 짓고 2층을 짓겠다는 거라고 지적한다(장제우 작가). 이것이 정의당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인지 비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4일제공약이 졸속적인 공약이 맞다 하더라도 과연 졸속 공약때문에 정의당에 줄 표를 거둬드렸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4일제 공약을 포함한 정책들이 이슈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까지 비약시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선에서는 주4일제 복지국가나 신노동법이 주요한 슬로건이자 공약이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주4일제와 관련해서는 공공부문 시범 운영노동시간 단축 사업장 인센티브단 두 줄이 전부였다. 천번 양보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졸속적인 주4일제에 돌릴 수는 있겠지만, 과연 지방선거에서 대표공약도 아니었던 4일제를 심판장에 불러세우는 것은 4일제에게는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의당의 정책이론가 중 한 명인 장석준도 (지방선거가 아니라) 이번 대통령선거의 기본 구도로 인해 정의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구호를 내세웠더라도 지지를 확대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전제를 달기는 하지만, ‘4일제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4일제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에게 친숙한 노동시간 표현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4일제 복지국가구호는 정의당이 여전히 정규직, 화이트칼라를 주된 지지 집단으로 설정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당장의 일자리나 노동 안전 등이 관심사인 계층에게는 상당히 태평한 정치 세력으로 비췄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의 근저에는 4일제라는 슬로건이 다양한 노동시간단축 표현(주당 노동시간 단축 등)을 가둬버리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정의당 대선공약집에는 4일 근무제(32시간)’으로 표현되어 있는 바, 반드시 주4일제가 주3일의 휴무일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노동시간단축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변호를 해주고 싶다. 오히려 정의당의 실책은 4일제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적극 부합하면서, 그 속에 담긴 정책패키지들 예컨대 최소노동시간보장제생애주기별 노동시간 선택제’, ‘성별임금격차해소’, ‘국가일자리보장제’, ‘생활임금제등을 종합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대중들이 4일제에 호응한 것은 3일 휴무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을 청년층, 화이트칼라의 요구로 축소해서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산업특성과 근무방식에 따라 대중들이 어느 지점, 어떤 표현에 자신의 욕구를 투과해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장시간 노동체제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을 억누르는 조건에서 굳이 그렇게 짜게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코로나 19’ 시국 동안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유시간강제로경험하면서, 코로나 이전의 강제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비해 보고, 삶의 의미나 노동의 목적 등에 대해 좀 더 성찰적인 시간을 견뎠을 거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선 과정에서 4일제에 대해 일정한 호응(비록 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이 있었다면, 왜 그런 호응이 있었는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적극적으로 해석해 과제화 시키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뭘 혁신하고 어떤 비상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요컨대 정의당이 평소 다양한 세력, 현장과 연대해 왔다면 다양한 통로를 통해 (4일제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결론을 만들어 냈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부당하게 4일제가 주범인 것으로 낙인 찍지는 말자는 것이다.

 

4일 노동이 답이다는 그런 의미에서 논의의 시작점에 읽을 만한 책이다. 원제는 “The Case for a Four Day Week”이고 (4일 근무제 도입사례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거 같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연구위원들인 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이 저자이다. 신경제재단(NEF)은 로자룩셈부르크재단(브뤼셀사무소), 아탁(ATTAC), 루즈벨트 연합과 함께, “노동시간의 공정한 나눔을 위한 유럽 네트워크(the European Network for the Fair Sharing of Working Time)”를 구축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이 책은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 202251일에 출간되었다. 1886518시간 노동제 총파업과 연이은 학살들이 일어나자, 189051일 제2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한 국제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51일 메이데이의 기원에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출판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교육원의 이사이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이성철 선생님과, 부산의 호밀밭 출판사 발행인인 장현정 선생이 번역했다. 지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더구나 이런 돈 안되는’(?) 책을 번역출간까지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시간 중노동에 대한 게으른 고정관념은 반드시 깨야만 하는 일종의 질병이고 이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 호밀밭출판사도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856년 호주 멜버른 석공들이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해 쟁취했고, 1919년 설립된 ILO8시간(40시간제) 산업노동시간 협약을 제정해 전세계에 이 원칙이 확산되었다. 1926년 포드자동차는 임금 삭감 없이 주5, 40시간 노동을 도입했으며, 1930년대 켈로그 시리얼 회사는 8시간 3교대 근무를 6시간 4교대로 바꾸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이틀 동안의 주말과 주40시간 노동은 표준이 되었다.(한국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8시간 노동 규범에 갇혀버렸고, 케인스가 (1930년대에) 예측한 주당 15시간 표준은 아직도 요원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

 

노동시간 단축은 공식 육아와 비공식 육아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여성과 남성의 관계 등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돌봄21세기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사회적 돌봄은 디테일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 노동시간 단축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전제 조건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원분배의 전제 조건이다. 정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환경 보호, 생태발자국 줄이기에도 노동시간 단축은 강력한 동인이 된다. 장시간의 유급 노동과 고탄소 소비 패턴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저자들은 주당 노동시간 단축이 생태적 한계 내에서 인간의 번영과 사회적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실제 사례

 

프랑스는 1998년과 2001년 사이 표준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12.5%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속에서 조스팽 사회당 정부는 녹색당, 공산당과의 연정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브리1, 오브리2법이라 불리는 법안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재정적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들어선 사르코지 우파정부는 오드리법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주35시간 노동은 사실상 폐지되지 않았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노인 요양병원은 하루8시간 일하던 68명의 요양보호사의 노동시간을 급여 손실 없이 6시간 노동으로 전환했다. 17명이 추가로 고용되었고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감소, 건강 증진, 결근 감소 등이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결합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실업률을 낮춤으로써 높은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고, 더 생산적인 곳에 공적자금이 투여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단순한 노동시간 상한이 아니라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다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벨기에는 2002년 신용 시간제(time credit scheme)를 도입했다.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개인은 최대 1년 동안 아예 쉬거나, 2년 동안 절반만 일하거나, 나누어 쉬면서 최대 5년 동안 20%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독일 금속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계좌로 알려진 시간은행 제도가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유연한 근무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유연함을 누가 통제하는가이다. 연간노동시간 분배, 교대제, 안식년, 근무시간 가불제도 등에서 노동자들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끔 요구해야 한다.

 

제조업 등에서 임금 손실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작업의 질을 개선해서 생산성을 높여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포드나 켈로그의 경우에 그러했다.) 돌봄 노동 같은 다른 산업 같은 경우에 똑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추가로 직원을 채용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대신 정부는 실업률 감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감소로 투여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어느 계층에 한정될 때 계급 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시간 계좌-은행이나, 정의당의 최소노동시간보장제, 생활임금제 등이 노동시간 단축의 패키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장시간노동-저임금 / 실업-빈곤 / 장시간노동-고임금 / 단시간노동-고임금(고소득) 등으로 나뉜 계급 내(그리고 산업별) 임금과 시간의 불평등을 고쳐 나가야 한다.

 

시간은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사회적자산이다. 이를 확보하는 싸움이 운동의 토대를 결정 짓는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정상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8시간 노동제, 40시간 노동은 이제 새로운 정상의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느리게 일어날 수밖에 없고(그러나 이미 시작되었다.) 결과는 획일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임금, 산업 전략, 복지 국가 개혁, 기후 완화 등 진보적 구조변화 패키지의 일부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그린 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자동화의 압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산업 내 정상의 기준들을 주4일제(노동시간단축)로 채택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노동조합의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이 중요하며, 여유가 있는 부문의 경우 보다 많은 급여 인상보다 추가 휴가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영진의 리더십, 정부의 정책적 지원, 노동조합의 교섭, 세 가지 경로를 강제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의당에 대한 평가에서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4일제(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화두를 정의당이 던졌다면, 그 부족한 정책적 디테일과 사회적 압력은 노동조합이 맡아야 한다. 정의당은 지방선거 공약으로 노동시간 단축 위원회 설치 및 공공부문 시범 운영을 내세웠다. 이 공약은 노동조합이 받아 안을 수 있다. 1998IMF 사태 때를 돌이켜보면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단축과 사회적 안정망 확보를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지금의 정국은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긴축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 4차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를 맞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정책적 대응과 집단적 압력을 모을 수 있는 위원회를 총연맹과 지역 노동 차원에서 만들 수 있다. 또는 공공부문의 주4일제 시범 운영을 직접 단체교섭을 통해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다소 거칠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추동해야 할 것이다. 자본은 먼저 시작하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4일 근무시대/피에르 라루튀르,도미니크 메다/율리시즈/20183/15,000

금요일은 새로운 토요일-경제를 살릴 주4일 근무제/페드로 고메스/넥서스BIZ/20226/19,000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안나 쿠트, 앤드루 퍼시/클라우드나인/20217/15,000

8시간vs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벤저민 클라인 허니컷/이후/2011/18,000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새물결/200512/9,900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해 깊이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로 알려져 있다. - P94

네덜란드에서 노동자들은 아픈 친척, 광범위한 가족 구성원, 동거인이나 이웃 혹은 친구를 포함한 지인들을 돌보기 위해 법적으로 돌봄 휴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의 일환으로 고용주는 직원에게 통상 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최대 2주 동안 적어도 법정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 P93

진보적이 의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면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강력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유급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사람들에게 공동체 기반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역 그룹에 가입하고, 지역과 국가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도 시간이 걸린다. - P32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런 말로는 부족할 만큼 사실 훨씬 더 소중하다. 우리에게 돈은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은 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된 자원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이며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또 얼마만큼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최우선으로 중요한 일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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