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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평점 :
책담(冊談)
가고픈 광남(光南)의 도시, 마산
양솔규 / 편집위원장

『마산』/김기창/민음사/2024년11월/18,000원
2006년 4월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제142호)에 ‘저무는 골목 안, 역사와 출구-마창 3부작’라는 제목의 서평을 실은 바 있다. 『마산 창원 역사읽기』(불휘, 2003), 마창노동자문학회 참글의 작품집 『출구』, 마산창원진해 문학교실과 르포문학 실기교실 수강생들과 김하경 선생 등이 만든 『저무는 골목에서 삶을 만나다』 등에 대한 서평이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50호에 나는 김대홍이 쓴 『마산·진해·창원』이라는 책에 대해 ‘공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서평을 실었다.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다. 그 사이 코로나가 있었고, 윤석열 계엄령이 있었으며, 대통령 선거를 두 번이나 치렀다.

이번엔 78년생 마산 출신의 소설가 김기창이 이야기를 통해 ‘마산’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한양대 사회학과 98학번인 저자는 3명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마산의 정치적, 산업적 변화들을 시계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수출자유지역의 젊은 공장 노동자 동미, 1999년의 대학생 준구, 2021년의 태웅과 은재를 묶는 키워드는 ‘광남(光南)’이다. 남쪽에서 빛나리! 전노협 결성을 주도했던 마창노련의 로고도 ‘광남’을 표현한 거 아니었나. ‘광남(光南)호텔’, ‘광남(光南)호(號)’등이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데, 인천 답동성당 신부가 지어준 이름이란다. 빛날 광(光)은 사람 인 빛날 광(光) 어진사람인(儿) 위에 불화(火)자가 붙으면 빛이 난다는 것. 소설 속 신부는 ‘빛은 하늘 위의 해가 아니라 어진 사람의 마음이 만드는 거라고, 빛나는 사람은 결국 어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쪽의 빛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마산으로 스며들었다. 소설 속 동미도 그러했고, 지금의 이주노동자들도 그러하다. 그러나 마산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마산은 20세기에 호출됐다가 21세기에 버림받은 도시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별처럼 반짝였다가 IMF 외환 위기 전후로 찾아온 정보화 시대에 스리슬쩍 퇴출당한 후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이름마저 잃은 도시였다.”

이러한 평가도 어쩌면 전성기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과거 세대들만의 평가일 수도 있다. 갈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회고만이 출구일지도 모른다. 도시는 하나의 용광로 같고, 저무는 골목이 있으면, 그 옆에 불이 켜지는 골목이 생기기 마련이다. 홍콩바는 없어졌지만, 30년만에 ‘잘피’가 돌아왔고, 광암해수욕장도 문을 열었다. 지금의 마산을 기반으로 희망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눈부신 영광보다도 현재의 작은 성과가 더 소중할 수도 있다. 은재와 태웅이 그러하다. 아버지가 세운 광남호텔이 위기에 처하고 빚이 불어나자 은재는 신장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둔 태웅과 함께 희망을 찾아 나선다. 다름아닌 돝섬. 돝섬은 70년대 인물 동미에게도, 90년대 인물 준구에게도, 2020년대 은재와 태웅에게도 변함없는 희망의 이정표 같은 곳이다. ‘광남(光南)’의 시각적 현현(顯現)이 돝섬인 것이다. 2010년대 시군 통폐합을 거치며 ‘마산(馬山)’이라는 지명은 사라졌지만, 개항기에도 코로나 시기에도 여전히 마산 앞바다에는 돝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마산의 장소들이 등장한다. 3·15 의거탑, 돝섬, 임항선, 북마산역, 홍콩빠, 만날고개, 해병대 진동리 참전전첩비, 경남대학교, 어시장, 시내버스 차고지(현 브라운핸즈 마산점) 등 마산에 실제 존재하는 장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또한 우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 부마항쟁 당사자이자 재야 사학자 박영주 선생, 경남대 배대화 교수, 허정도 건축가 등에 이 소설은 빚지고 있다고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IMF 직후인 1998년, 드라마 <야망의 전설>에는 주인공 이정태(최수종 분)가 마달수(조재현 분)과 함께 마산의 건달로 등장한다. 한때 전국 7대 도시 중 하나였던 마산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5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마산’의 존재를 전국적으로 각인시켰다. 마산 유지 출신 아버지가 조봉암을 지지하다가 진보당 사건으로 고초를 당하다가 자유당지지 사업가 박창식(한진희)에게 죽임을 당한다. 두 아들, 이정우(유동근), 이정태(최수종)가 이후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 5.16 쿠데타, 실미도 사건, 워커힐 호텔과 정경유착 등이 등장한다. 5.16 이후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전부 마산을 떠난다. 그리고 주요 무대는 서울 등으로 바뀐다. ‘연극(드라마’가 끝나고 만 것처럼, 관객들은 모두 마산을 잊어버리고 만 것일까? 소설의 끝에 준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나아지리란 희망이 사라지고, 또 다른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결국, 삶은 계속된다. 인천을 떠난 남편과 함께 마산을 떠나 브라질에 정착한 동미도, 결국 마산에 돌아와 손녀, 딸, 사위와 함께 삶을 이어간다. 떠날 때는 죽은 것처럼 보였던 도시가 살아나는 도시 같았다. 부디 그러기를.

<함께 보면 좋은 책>
『마산·진해·창원』/김대홍/가지출판사/2018년11월/16,000원
『마산 창원 역사읽기』/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불휘미디어/2003년10월/12,000원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남재우,김영철/글을읽다/2016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유장근 외/리아미디어/2011년
『마산번창기』/스와 부고츠(諏方武骨)/창원시정연구원/2021년
『마산 창원지역 연구』/경남대학교 경남지역문제연구원/경남대학교출판부/1996년10월/12,000원
『마산항지』/스와 시로/창원시정연구원/2021년
『한 도시 이야기』/허정도/불휘미디어/2024년/22,000원
『도시의 얼굴들』/허정도/지앤유/2018년11월/17,000원
저녁놀이 질 무렵이면 불길 같은 파도가 마산자유무역지역 제1공구 끝에 있는 폐공장 바로 앞까지 밀려왔다. 파도는 크리스마스트리용 장식품을 만들다 13년 전 문을 닫은 그곳을 긴 잠에서 깨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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