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 이태원 참사 가족들이 길 위에 새겨온 730일의 이야기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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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연대, 희망의 연대

 

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 29 (2025.10.)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 아몬드 / 20231029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 20231029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 20241029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 용산FM 기획 / 플레이아데스 / 20241029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가을을 맞아 가족과 연화리에 나들이 갔다. 맛있는 해산물도 먹고, 회도 먹었다. 오랜만에 간 연화리에는 못보던 건물도 많았고, 새로 생긴 카페와 음식점도 많았다. 고즈넉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연화리의 모습은 퇴색되고 있었다. 어느샌가 부산의 관광명소로 연화리가 알려지게 되었고,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소개되곤 했다. 마치 변해버린 제주도 함덕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해변가 밤산책에 나서자 더욱 변해버린 연화리가 뚜렷해졌다. 연화리 해변 가운데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해변의 조망권을 장악했다. 상가에는 스타셰프’(현수막에 본인을 스스로 스타셰프라고 칭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입주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해변을 따라 더 가자 멀리 숙박시설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아난티 호텔 건물 끄트머리가 얼핏 보였다. 거의 완공된 듯해 보이는 정체불명의 거대 건물이 왜 영업을 안하고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지도앱을 열어 검색해보니, 아뿔싸. 지난 2월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질식사로 죽고, 27명이 부상을 입은 그 반얀트리 해운대 호텔 참사의 현장이었다. 불과 8개월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참사의 현장이 연화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우린 일상에 찌들며 많은 것을 잊고 산다.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고, 망각(忘却) 역시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잊지 않기 위해, 아니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서사와 가치도 있는 법이다.

2016년 뜨거웠던 겨울,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촛불혁명’(?)이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세월호 유가족이 있었다. 벚꽃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기대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날 동안 문재인 정부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일부 진전도 있었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도 제정되었고, 2024년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1장 총칙 제1)에 한정된 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관련 54건의 권고사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리고 평행이론처럼 2024년 겨울 또다시 뜨거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에 대한 계엄령에 맞선 시민들의 빛의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저항의 중심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있었다. 다시 대선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것은 기만과 폭력, 정치화와 사기뿐이었다. 극우 유튜버들의 극악무도한 유가족에 대한 테러와 조롱은 도를 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방조하는 것을 넘어 부추겼으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박근혜는 진도체육관에 모습이라도 드러냈지만, 윤석열은 유가족의 만남 요청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 당시 해수부장관이었던 이주영은 여러차례 사의를 표명하고 결국 그해 12월에 물러났지만,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최장수 장관으로 군림하며 윤석열 내란까지 함께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온갖 비난과 탄압과 무관심을 버텨 온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 오직 진상규명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성찰과 준비이다. 과연 이재명 정부는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3일 앞둔 현재, 김민석 총리는 2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시민 추모대회에 참석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공적 책임과 공적 안전망의 붕괴가 불러온 참담한 재난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1023일에는 정부가 경찰청과 서울시청, 용산구청에 대한 합동감사 결과 62명을 징계조치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태원 참사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하면서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가 대통령실 인근 경비에 우선순위를 두고 인력을 운용한 것이 영향을 줬다고 확인했다. 참사 당일 대통령실에는 인근 집회 관리를 위한 경비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됐으나 이태원 일대에는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 지휘부 역시 이 점을 알면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게 국무조정실 설명이다.


촛불혁명이니 빛의혁명이니 이런 과도한 의미부여가 정말로 의미를 득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송참사도 세월호도 이태원참사때도 독립적인 상설 재난 조사기구가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생명안전기본법도 무산되었다.

20245,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913일 특조위가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특조위의 본격적인 조사는 20256월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특조위 공식 활동기한은 20266월까지이며, 필요시 3개월, 보고서 작성을 위해 3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특조위의 활동과 결과 발표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생존자 김초롱이 쓴 책이다. 생존자 김초롱은 생존 이후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느꼈다. 이후 인터넷과 신문에 심리 상담기를 연재하기도 했고, 살기 위해 연대하고 붙투하는 과정을 에세이로 발표했다. 모든 참사가 피해자에 초점을 먼저 맞추기는 하지만, 관심이 생존자와 희생자를 넘어서는 넓은 의미의 피해자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지난 8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30, 40대 소방관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도 참사 생존자인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참사 이후 1212일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이 기록한 이태원 참사 가족들,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친구들, 생존자, 이태원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이 책을 준비한 작가기록단이 없었다면, 과연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역시 용산FM이 기획하고, 이태원 주민부터, 핼러윈 축제 참가자, 드랙 아티스트, 이태원 클럽 DJ, 경리단길 이주민 등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이태원과 핼러윈,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건의 정치적 지형과 묘하게 중첩되면서 이태원 참사를 정치화하고, 편가르기, 왜곡하는 다양한 양태를 경험했다. 이에 대해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가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김승섭 작가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일주일 남은 10월달을 눈물 어린 책을 보며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하기 위함이다.


올해 고() 신애진씨의 어머니, 아버지도 책을 냈다. 이 책도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김남희),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신정섭) 이 책도 일독을 권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이태원 참사 - 한국의 재난관리를 논하다/ 이동규 / 윤성사 / 2023416

정부가 없다 -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정혜승 / 메디치미디어 / 20231029

문화과학 113-애도와 책임, 10·29 이태원참사: 2023년봄호/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 문화과학사 / 202337

슬픔의 위안/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 현암사 / 20193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 푸른숲 / 20216

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 창비 / 20259

애도와 투쟁/ 더글라스 크림프 / 현실문화 / 20214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 / 펜타그램 / 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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