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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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챙겨보는 예능이 '어쩌다 사장'이다. 처음엔 조인성이 나온다고 해서 봤는데 시골 구멍가게에서 일을 하는 포맷에 점점 빠져들었다. 시골, 구멍가게 모두 나에게 잘 맞아 떨어졌다.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던 건 아니어서 시골의 구멍가게를 경험하면서 컸던 건 아니지만 방학 때 할머니집에 가게 되면 구멍가게에 가서 사촌들과 과자를 사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에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너무 끌렸는데, 책을 받는 순간 헉, 너무 두꺼웠다.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운 내용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후르르 넘겨보니 거의 보고서급 내용인 것 같았다. 재미는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은 쓸데없었다는, 술술 재미있게 읽었다.

이렇게 하게 된 것은 이 작은 구멍가게가 마을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열 두번씩 벌어지는 술자리인가 하면, 마을 우편물과 택배 보관소이기도 하고, 현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급전을 융통해주는 간이은행이기도 했다. 한때는 소화제와 반창고 등 간단한 구급약품까지 구비하고 있어서 간이약국으로 통하기도 했단다.

p.168

시골의 구멍가게의 역할은 너무나 다양했다. 단순히 물건을 가져다 놓고 판매하는 것을 떠나 마을의 일상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건 다 관계로 통했다. '어쩌다 사장'에서 사장님도 이 작은 구멍가게 하나를 마음대로 닫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읍내로 나가는 차표도 팔고 있기 때문에 구멍가게가 문을 닫으면 읍내로 나갈 버스표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참으로 희안한 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느껴지는 끈끈함

구판장이 연쇄점이 되고 연쇄점이 하나로마트가 되는 과정은 근 사십 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p.184

구멍가게보다 주로 재래시장과 경쟁해야 했던 슈퍼마켓은 1970년대 중반까지는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1974년에야 소비자들이 슈퍼마켓 이용에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수지 균형을 맞추게 되었다고 한다.

p.199

시골에 하나로마트의 등장은 구멍가게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가격이 싼 곳으로 이동하고, 많은 구멍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석구석 들어선 프랜차이즈 편의점도 구멍가게에 심각한 위기다. 어딘가를 놀러가게 되면 그 근처에 하나로마트가 있는지부터 찾게 된다. 살고 있는 곳에서 장을 봐서 가기도 하지만 숙소 근처에서 장을 보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어쩔 수 없는 변화이고, 구멍가게에서 살 수 없는 품목이 있다고 주장해보지만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하나로마트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살아 남은, 살아 남았다고 보여지는 구멍가게들도 있다. 그간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까

아스팔트가 깔리니 그토록 말썽 많던 먼지가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비 오는 날을 기다리는 심사도 사라졌다..... 먼지가 사라진 만큼 삶의 애환도 구멍가게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우리의 "곁"이 또 하나 사라져가고 있다.

p.464

구멍가게 사장님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구멍가게를 시작하게 된 사정, 구멍가게를 그만두게 된 사정, 구멍가게를 계속 해야만 하는 사정..... 구멍가게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너무나 이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지켜야 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들이 시대와 상황에 맞춰 없어지는 게 너무나 아쉽다. '어쩌다 사장'을 보니 구멍가게는 단순하게 이익을 추구해서는 절대 운영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이 다 도시로 옮겨지고 남겨진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어른들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아이들은 과자를 사러가는 전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이 바로 구멍가게이다.

2년에 걸쳐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답사를 다니고 정보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하고.....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이 두 저자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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