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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가시 - 나는 조현병 환자다
이관형 지음 / 옥탑방프로덕션 / 2020년 2월
평점 :
당사자의 책이 좋다. 기꺼이 자신의 아픈 부분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쓴 책은 더 귀하다. 나는 조현병 환자라니..... 읽기도 전에 반가웠다. 같은 병을 가지고 치료하고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의지가 될까, 아직도 숨어있는 조현병을 어떤 방식이든 수면 위로 올리는 일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책에 들어 있는 책갈피에 이렇게 써 있다.
몸이 아프지만 마음이 아프지만 할일이 너무 많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힘들고 과거의 상처가 보이고 미래의 앞날이 보이지 않고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으로 괴롭고 나타났으면 하는 사람으로 외롭고 아침에는 오늘이 두렵고 새벽에는 내일이 걱정되지만 살아내세요. 살아내세요. p.23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이 짧은 시가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살아내세요.
그렇게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살인이 일어났다. 언제나 죽음과 죽임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지내야 했다. p.87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 내가 죽어야 할 것 같은 생각. 사실 인생을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는 시련이 오고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시련을 극복할수록 능력도 점점 높아진다.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은 이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상실되기도 한다. 혹은 병으로 인해 극복하기도 어렵지만 나락으로 더 떨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조현병이라는 걸 기회로 만들었다. 쉽지 않다. 나는 조현병을 치료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데, 저자처럼 잘 된 케이스를 거의 보지 못했다. 책에도 노력한 내용이 써 있지만 그 이외에 저자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불합격으로 인해 자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난 내 인생에 자부심이 있었다. 대학 시절 고통 가운데 자살 시도 한번 하지 않은 걸 스스로 기특히 여겼다. p.146
대학원 입학이 좌절되고 나서 저자가 썼던 내용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작은 일을 크게 생각해 우울해하거나, 의미없는 일을 의미가 큰 것처럼 받아들여 우울해하거나,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해 우울해하기도 한다. 물론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견디는 힘도 다르고 빠져나오는 시간도 다르다. 저자는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왜 좌절하지 않았겠나, 좌절을 하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저자의 힘이 나역시 부러웠다.
저자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하나님이 중심에 자리잡았던 건 아니지만, 종교만으로 조현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자는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위로받고 또 다시 일어났다. 과거에는 종교의 힘으로 정신질환을 고쳐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더 악화되었다. 저자도 이야기한다. 약을 먹어야 한다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이건 기본이다. 여기에 종교의 힘이 더 들어간다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나 역시도 많이 봐왔다. 물론 정신과적 증상에 따라 종교가 있다는 것이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죽음을 강요하는 종교는 없다. 다행히 불교, 기독교, 천주교는 자신의 삶을,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해준다. 신앙은 이런 점에서 유익하다.
조현병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는 것과 조현병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극복해 나가는 것은 한끗차이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 이 책을 보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나는 그래도 조금 더 낫지 않나, 더 열심히 해보자. 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 것도 좋겠다. 우리의 인생은 계속 힘들것이고 우린 그 힘듦에서 벗어나 앞으로 가야하니까 말이다. 저자는 내 응원이 없어도 나보다 더 잘 살아가겠지만, 응원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끝까지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