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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 온 뒤를 걷는다 - 눅눅한 마음을 대하는 정신과 의사의 시선
이효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평점 :
정신병원에서 일을 했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약 8년을. 그리고 정신병원을 나와 아직도 정신질환자를 만나고 있다. 정신과는 일을 하면 할수록 오묘하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듯이 같은 진단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저자가 이책에서 이야기하듯 정신질환을 가지게 되는 것도 랜덤이고, 정신질환의 증상도 랜덤인 듯 하다. 같은 조현병인데 담당자 말을 엄청 잘 듣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폭력성이 두드러진 사람도 있으니까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는 독보적인 존재다. 환자에 대해서 치료계획을 세울 때 팀으로 같이 일을 하긴 했지만 정신과 의사와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된 적이 없었다. 나이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잘 따랐고. 이 책을 읽으면 정신과 의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고 해서 모든 정신과 의사가 따뜻한 건 아니었다. 그건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다른 전문직도 마찬가지지만. 정신병원에 다닐 때 나는 운이 좋게도 정신과 의사가 많은 병원에서 근무를 했었고, 우스갯소리로 내가 만약 정신병에 걸린다면 난 우리 병원 의사 중에 누굴 주치의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환자를 보는 성실한 태도였던 것 같다.
정신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신과 의사인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거쳐갔던 정신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예상 외로 빗나갔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레지던트 1년 차 때 의국에서 하는 첫 증례토론회 때 와장창 깨지는 이야기는 나 또한 그 자리에 있어봐서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가 말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정신병원에 8년을 있었으니 적어도 그 불편한 자리에 8번 이상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레지던트 4년차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성장해 있더라.
정신과 환자를 보는 일은 저자가 말했듯이 어쩌면 재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 나 또한 이런 이유에서 정신병원을 나오게 되었지만 나와서 보니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저자는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잘 맞는 모양이다.
정신과 의사에 대해, 정신병원에 대해, 정신과 환자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정신병원에 어떤 형태로든 있었던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