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국선변호사에 대한 환상이 있다. 남편은 국선변호사는 그냥 대충대충 한다는 이미지가 있다고 했고, 나는 뭔가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선의의 직업 이미지가 있었다. 국선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이렇게 상반될 줄이야.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수많은 직업 중에 국선변호사라는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 알기 위해 읽게 되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쓴 책을 선호한다. 왜냐면 모든 직업을 다 해볼 수는 없고, 내가 했던 일은, 그리고 곧 다시 하게 될 일은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을 국선변호사도 많이 만난다는 것을)


국선변호사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변론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런 기준은 없었다. 돈이 있는 사람도 여러 가지 사정 혹은 이유로 인해 국선변호사의 변론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변호사를 알아봐야 할 사건이 죽기 전까지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니까. 문제가 생긴다면 이 변호사를 찾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국선변호사인 저자가 사건을 맡고,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가 담백하게 쓰여져 있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면에는 성격이 이상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정신과적 증상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하고 겹쳐지는 부분이다. 실제 조현병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에서는 증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변론할까? 라고 생각을 했는데,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일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읽다가 순간 정말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든데,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발로 뛰어야 하는 순간도 생길 것이고, 어디까지 이 사람을 변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선을 긋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수임료를 많이 받고 하는 변론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해서 더 바쁠까? 꼭 이겨야 해서 더 압박감이 클까? 책을 읽어도 이 부분은 아리송하다.


p.157

중독이란 그런 것 같았다. 너무 멀쩡함과 결코 멀쩡하지 않음의 완벽한 공존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성적인 중독, 사기치는 중독 등 요즘 사회에는 중독도 매우 다양해졌다. 그런 사람들이 일으키는 범죄들, 예전에는 정신과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감형도 많이 되었다고는 하나, 요즘엔 정신과적 문제를 이유로 감형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다. 감형을 받기 위해 이런 걸 이용하기도 하고, 정신과의 문턱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져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증거를 제출하기도 쉬워졌다.


p.188

몇 주 후 선고 결과를 확인하니 벌금 100만원이었다. 나는 단호하고 야무졌던, 그러나 지쳐 보였던 딸을 생각했다. 재판은 끝났지만 그녀의 일은 끝나지 않았을 거다.


청각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해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보호자인 딸을 만난 이야기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은 서로를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아버지가 음란행위를 해서 경찰서에 가게 되면 보호자인 딸에게 전화가 갈 거고, 딸은 그 전화를 받고 청각장애인 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피해자에게 선처를 호소해야 하고, 재판일에도 휴가를 쓰고 나와야 하고, 벌금이 나오면 월급에서 벌금을 내야 하고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까. 재판은 끝났지만 그녀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고 한 거겠지.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너무 많은 걸 책임지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족의 연도 끊어지게 되는 거겠지.


1년 8개월을 쉬는 중에 이 책을 읽으니 전에 했던 일이 생각이 많이 났다. 보이진 않지만, 드러나진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직은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더 나은 세상일 될 거라고 잘 마무리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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