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시선 -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
김민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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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강사에 대한 처우는 뉴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라는 책을 썼다고 하는데, 경계인의 시선까지 제목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으로 시작되는 제목의 책은 저자도 책에서 썼듯이 고백을 바탕으로 하니까, 더 솔직하고 현실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의 민낯을 고발했다고 하는데 잘 살아 남았는지도 궁금했다. 내부고발자의 처우는 일반적으로 좋지 않으니까.


대학교 다닐 때 대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의 등급(?)이 나뉘어져 있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눈에는 다 교수님이었고, 선생님이었으니까.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교수도 등급이 있고, 시간강사라는 교수도 있다는 것, 처우도 천차만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뉴스를 보면서도 대학교 졸업을 했으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대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불법아닌 편번들에 대해서 쓰여 있다. 대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는 곳에서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서 실감하게 되었고, 나 또한 근로장학생이라는 명분으로 정규직의 자리를 대신해서 앉아 있었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장학금을 주니까, 용돈을 벌 수 있으니까, 남는 시간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였다. 그 이면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었는지는 전혀 모른 채 말이다.


p.27

을과 을의 새로운 전쟁을 부추기고서 자신들은 뒤로 빠졌다. 비상식과 비합리를 목도하고 문제를 제기한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책임을 묻는다. '너희가 조용히 있었다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괜히 나서서 모두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 제기자에게 손가락질하기를 멈추고, 잘못된 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 내용은 왜 읽기만 해도 마음이 쿵 내려앉는지 모르겠다. 기억나진 않지만 내 인생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을과 을이 싸우는 전쟁이라니, 너무 슬프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인 것을. 조교 장학금을 받으면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불합리함을 문제 제기하고 나서 달라지는 환경 때문에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반론이 부딪히는 것이다.


p.82

사실 제대로 사과만 해도 좋은 어른으로 대접받는다. 그만큼 자기 세대를 성찰하고 사과를 잘하는 이들이 드물다.

p.85

경계의 자리에서 마주한 균열을 '기억'하는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주변과 시대를 바꾸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추억'하는 이들은 시곗바늘을 멈추고 모든 것을 사유화하려 한다.


요즘 어른들의 꼰대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도 나도 누군가에게 꼰대였을 순간을 반성한다. 요즘 이런 글을 읽으면 자꾸 꼰대 짓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지곤 한다. 정말 입보다는 귀를 열어야 할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기억과 추억의 의미가 이렇게 다를 줄이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저 두 문장만 봐도 어떤 것이 다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p.127

대학원생 시절에 조교 업무의 부조리함에 대해 말하던 이들이, 시간강사 시절에 강사 처우의 불합리함에 대해 말하던 이들이, 그 단계를 막 벗어나자마자 그 서사에서는 혼자 빠져나간다.


우리는 이걸 경계해야 한다. 그 단계를 막 벗어나는 그 순간을 말이다. 내가 속해있는 것과 내가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차이도 크지만 내가 속해있는 것과 속했던 것과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정말 저렇게 되지 않도록 무단히 노력해야 한다.


p.178

분노는 증오와 결이 다르다. 분노는 증오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증오가 병적으로 적을 찾아다니며, 그 적이라는 대상에 집착하며 쾌락에 중독되는 것이라면, 분노는 정확하게 문제의 본직을 겨냥하는 것이다.


저자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고 임세원 교수의 사건, 김용균 사건을 통해 분노와 증오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우리는 분노를 해야 한다. 분노를 통해 사회를 바꿔야 한다. 바뀌지 않더라도 증오로 사회가 병적으로 가는 길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피해자의 가족들은 증오를 분노로 바꾸기가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해낸 이들이 있다. 꼭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 갑과 을의 경계에 있다. 갑이 될 수도, 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때문에 연대해야 한다고 한다. 강력하게 연대하지 않아도 된다. 느슨하게 연결만 되어 있어도 된다. 여기에 있다. 지키고 있다. 보고 있다.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서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하지만 나 또한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잃지는 말아야겠다. 누구나에게 올 수 있다. 그런 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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