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은 심리치료사의 내면 일기
노라 마리 엘러마이어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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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하게 유럽은 우리나라와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문화, 제도, 법, 생활 모든 면에서 유럽이라고 하면 복지도 잘 되어 있을 것 같고, 사회안전망도 잘 되어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저자는 독일 사람이다. 심리치료사이고. 우울증에 걸렸다. 우리나라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읽고 싶었다.


독일도 치열하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니면 저자가 특별하거나. 아이를 4명이나 낳으면서 미친듯이 공부한다. 남편의 도움과 배려도 있었지만 자신의 확고한 결심 없이는 하지 못할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고민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건 우리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에게는 추진력이나 뚝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브레이크가 걸리고 만다.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지금까지 우울증 환자의 심리를 치료하면서 자신이 우울증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 중간 중간에 나온다. 허를 찔린 것 같은 그런 느낌


우울증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 안에도 수많은 양상이 있다. 그리고 우울증의 깊이도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렵다. 단순히 개인의 의지의 문제는 아니다. 저자는 어떤 정도의 우울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울증의 진단을 받았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사실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하고, 자살시도를 할 정도의 깊은 우울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건 아마도, 내 자신을 돌보라는 것이 아닐까?


p.94

우울증은 주고받기의 균형이 깨진 비상상태이다. 그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연락을 취하라는 주문은 지나친 요구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주세요. 너무 힘들면 연락주세요. 결정해야 할 게 있으면 연락주세요. 이런 말을 많이 했었는데, 순간 힘들어 밖에도 못 나오고, 힘들어 일도 못하고, 힘들어 대인관계도 어려운 사람에게 이게 할 말인가? 뭔가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p.111

여기 오기 전에는 기대가 컸다.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투자하여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슷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과 만나 좋은 정보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저자는 결국 입원을 선택한다. 정신과에 입원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저자는 심리치료사였다. 가능하면 집과 먼 곳을 선택한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는 심리치료사를 만나는 것이 싫어서이다. 그리고 다른 여러 조건들도 가능하면 자신의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정한다. 이성적으로는 자신은 환자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정신과적 상담을 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인해 치료에 100% 몰입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열심히 한다. 그 과정은 우리가 읽기에도 동떨어져있지 않고, 특히 [물통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 [누구이게나 통하는 치료법은 없다] 에서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실제적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잘 써 놓고 있다.


번아웃이라는 말은 이젠 일반 사람들도 많이 아는 단어다. 지쳤다. 소진되었다. 이런 의미인데. 번아웃은 정신과적 문제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번아웃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소확행, 정시퇴근, 퇴근 후 여가, 저녁이 있는 삶 이런 것들이 트랜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타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신과 치료 수준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하고, 그 이후에 외래를 다니는 것들을 봤을 때 우리나라와 특별히 다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또한 심리치료사가 되는 과정도 비슷한 것 같았다.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심리치료사는 실보다 득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 때문에 저자를 제외시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저자의 그 경험이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상담은 항상 이야기하지만 공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겪어 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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