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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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로 된 책을 읽는 건 처음이었다. 잘 읽혀질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더 잘 읽히고, 오히려 장면을 상상하게 되어 책을 읽는 속도나 내용을 이해하는 이해도가 훨씬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에는 시나리오, 평론, 작가인터뷰 이렇게 되어 있는데, 대본을 읽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작가의 의견을 듣는 구성이 좋았다.


1994년, 내가 12살 이었던 것 같다. 이 나이면 국민학생이었겠지. 이 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책 표지에는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이라고 되어 있을까? 먼 미래도 아닌데, 궁금했다.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주인공 은희는 평범한 중학생 여자아이다. 엄마가 해 준 감자전을 좋아하는. 그냥 일상이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쓰여져 있는데 읽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다. 주인공이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 뭔가 큰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다. 스토리가 극단으로 치우쳐 감정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많은 분포에 있는 평범한 우리들을 타겟으로 해서 더 마음이 아팠을지 모르겠다. 내가 은희인 것 같은 그런 느낌?


이 책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벌새와 묘하게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벌새의 후속작이 나온다면 82년생 김지영의 스토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p.136

학원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은희,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라고 은희가 묻자 선생님이 말한다.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내가 중학생 때 나는 저런 의문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 철이 안 들어서일까? 아니면 저런 대화를 할 상대가 없었던 것일까? 나를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이 부럽기도 했다.


p.232

영화에서는 수희가 공부를 못해서 강북으로 통학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강남 지역에 인구가 몰리면서 강남 학군의 학교만으로는 학생들은 전부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성수대교의 붕괴의 이면에 있었던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16번 버스에 탑승했다 사망한 무학여고 재학생들. 그 버스에 타게 된 이유. 이 책에서 은희의 언니도 무학여고를 다니고 있는데, 아빠의 잔소리를 듣다가 버스를 놓치고 만다. 그 놓친 버스가 성수대교와 함께 한강에 빠져 버렸다. 그 이후 은희의 언니는 미치도록 싫었던 아빠의 잔소리가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p.258

작가는 이 영화를 그저 그런 귀여운 성장담이라고 생각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중학생 여자아이가 어떻게 성장을 해가는지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한국에서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며 크며 은희가 우리들이 많이 닮아 있다는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화가 나는 부분도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서 겪어야 했던 그런 부분들. 학원선생님이 오빠에게 맞는다는 은희에게 맞을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고 그냥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는 은희에게 계속 때린다고 맞고만 있지 말라고 맞서서 같이 싸우라고 말해준다. 맞서 싸우라는 말이 왜 이리 낯선지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지내서 그런지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이 많았다. 나에게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는 건 누가 알려준 걸까?  


은희는 안 그럴 것 같다. 은희는 맞서 싸울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내 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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