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 - 쩨쩨한 어른이 될 바에는
손화신 지음 / 웨일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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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보니 목차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이라는 주제로 주체, 하루, 가치, 자유, 고통, 당당, 상상, 믿음, 본능, 웃음, 시도, 놀이, 경탄, 욕심, 생각, 시간, 자아, 엉뚱, 전진, 호의, 목적, 마법이라는 소주제가, 2부는 우리가 마음껏 아이였을 때 라는 주제로 망각, 사랑, 단순, 재미, 초월, 타인, 충만, 유대, 개인, 미완, 기쁨, 과정, 회복, 감정, 감시, 소심, 비움, 편견, 통제, 일탈, 불안, 직관 이라는 소주제가 있다. 주제를 먼저 정하고 글을 썼는지, 글을 먼저 쓰고 주제를 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단어들이 주는 즐거운과 추억 그리고 고민들이 있었다.


아이처럼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순수함, 철없음 이라고 대표될 수 있는 아이였을 때가 어른이 된 지금 너무나 가지고 싶은 것이 되어 버렸다. 아이였을 때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요즘 어른과 어린이를 합친 어른이 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모든 어른은 어른이가 될 수 있을까? 너무 꾹꾹 누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4살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제 아이와 대화라는 것이 된다. 이 책에서는 각 주제에 따른 본인의 상황이나 생각 그리고 아이였을 때, 아이라면 어땠을 것 같다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맞아, 내 아이도 그랬어. 라고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p.27 (가치)

어른 세계에서 '가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지금 자신의 형펀과 생활 패턴에 딱 맞는 건 경차인데도 절대 경차는 타지 않으려는 사람. 그를 보고 "저 사람에겐 실용성보다는 멋이라는 가치가 더 소중한가 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니 그 이유가 단지 '허세' 때문이라면? 그는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살다보니 점점 허세가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단점으로는 자기를 꾸미지 않고 너무 심플하게 살게 되서(요즘 트랜드인 미니멀라이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버리고 또 버려서) 아주 가끔 격식을 차려할 때에 입고 나갈 옷과 신을 신발이 없다는 것. 루이비통 가방과 구찌 가방은 옷장에 쳐 박아 놓고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30대 후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펴보고 내 삶을 펼쳐놓기도 하지만. 아이는 더 자유롭다. 따지고 재는 일이 없다. 그냥 자신이 좋으면 좋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 된다. 4살 딸은 요즘 나뭇가지와 솔방울을 모으는 것에 취미가 있다. 아주 귀중한 것을 다루듯 한다. 나뭇가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혹시라도 떨어뜨리게 되면 다이아몬드를 떨어뜨린 것 처럼 막 달려가서 다시 주워온다.

p.88 (경탄)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이렇듯 매사에 처음이라서, 경탄할 것들 천지다. 바닥의 금을 보는 아이의 두 눈은 마치 괴물이 지나간 흔적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이 문장은 참으로 정답이다. 4살 딸 아이는 우와, 우와를 입에 달고 산다. 위험한지도 모르고 뛰어들거나, 맘껏 뛰어들어 만끽하기도 한다. 바닥의 금은 정말로 밤에 잠자는 사이에 공룡이 지나갔다고 믿는다. 공룡들이 사람들이 다 자는 밤에 나와 뛰어 놀아서 생긴 거라고. 나무가 신기하고, 돌이 신기하고, 고양이도 신기하고 정말 모든 게 신기하다. 30대 후반 나는 어떤가. 신기한 게 별로 없다. 지금 내가 경탄할 수 있는 건 새로운 여행지에 가서 멋있는 풍경을 봤을 때, 그 정도? 나 또한 모든 것을 경험한 건 아니지만 왜 그리 경탄할 것이 없어졌을까? 감각을 좀 더 깨워야 하는 이유이다.


p.103 (시간)

발을 구르며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좀 억울하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벌써 이 나이란 말이냐. 억울해 할수록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또 의식하게 됐다. 분하게도, 시간을 의식한다는 게 바로 내가 어리지 않다는 증거였다.


30대 후반,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는 나이. 살아갈 날이 더 많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할 일도 많아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잠을 자지 않는 미련한 방법을 써서라도 시간을 늘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막상 그 다음 날 늦게 일어나면 어차피 남아있는 시간은 똑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어른. 아이에게는 시간이 있을까? 우리집 4살 딸은 아침과 저녁만 아는 듯 하다. 환해지면 아침, 깜깜해지면 밤이다. 놀 때는 시간 자체가 없이 덤벼들어 온 몸의 에너지를 다 쓰고야 멈춘다. 시간을 재고, 돈을 재고, 생각을 재고, 상황을 재는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p.126 (호의)

남한테 피해 주면 안 된다는 생각과 신세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돌아보면 그다지 어른스럽고 성숙한 생각은 아닌 듯싶다. 최대한 빚지지 않고 살아가려는 어른들 심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배려보다는 배척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너한테 안 줄 테니까 너도 내게 피해 주지 말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고, 생각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난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이 싫고, 다른 사람에게 뭘 받으면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일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내가 갈등했던 포인트는 빚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그렇게 하기까지의 수고로움, 나를 도울 그 순간에 본인도 힘들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이 너무나 귀하고, 그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고,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갚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엄마 품에 안겨 외출한 아기가 모르는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듯 내게 다가오는 모르는 호의들을 모두 받아도 괜찮은 일이라고 말한다. 슬프지만 그렇게 하기엔 머리가 너무 커버린 듯 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너무나 경직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루에 몇 번을 소리내어 웃을까? 하루에 몇 번을 아이같은 생각을 할까?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린 나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아이 세포를 깨워보자고 생각했다.


순수해지고 싶은 어른, 세상의 때가 묻었다고 생각하는 어른, 4-5살 정도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철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어른 등등 모든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우리, 아이로 돌아가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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