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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소통의 정치를 논하다
박홍갑 외 지음 / 산처럼 / 2009년 11월
평점 :
조선은 기록의 사회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뒤지지 않는 또 하나의 기록이 승정원일기이다.
승정원은 국왕의 비서실. 이곳에서 매일 작성한 기록이 바로 승정원일기이다.
기록으로 따지면 승정원일기가 조선왕조실록보다 훨씬 더 대단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사관의 기록을 토대로 재편집하여 작성한 2차 기록물이라면
승정원일기는 모든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정조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이 상소를 올렸다.
그 유명한 만인상소문이다. 선비만명의 연명으로 사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한 상소문이다.
이걸 비교해보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러한 내용의 상소문이 올라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면 승정원일기에는 상소문 전문과 만명의 이름 전부를 다 기록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분량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 6400만자의 기록이라면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때 절반일 불타고
288년 분량만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3245책 2억5천만자로 조선왕조실록의 다섯배에 달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번역을 하고자 함에도 몇십년이 걸릴 양이라고 하니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럼 그 내용은 어떠한가
매일의 기록이다보니 날짜, 날씨, 기록자의 이름, 임금에게 올린 보고사항과 처리사항,
상소와 지방관의 장계, 임금의 행사, 그 외의 신하접견등등.
임금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다 기록했다고 한다.
그럼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되돌아보자.
노무현정부때의 기록물의 양은 825만3715건,
이명박정부때의 기록물의 양은 약 82만건이라고 한다.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얼마전 서울시에서 기록과 관련된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현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선시대 사관같은 제도를 운영중이라고 한다.
회의와 보고 등 서울시장의 업무내용을 문서로 기록하고 녹취하며 영상으로 촬영한다고 한다.
어느 국장급 간부가 시장의 지시에 반하는 내용으로 업무처리를 해놓고서는 시장에게 구두로 보고했고 시장이 승인했다고 했는데 모든 기록물을 뒤져본 결과 그런 일이 없어 국장이 시장을 속일려고 한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록이 많으면 많을수록 보다 청렴한 사회가 될 것은 분명하다.
오죽하면 연산군도 "오직 두려운 것은 역사뿐이다"라고 말을 했겠는가.
얼마전에는 80년 5월광주민주항쟁 당시 도청에 있었던 한 여고생의 일기가 국가의 중요기록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국가의 기록을 보충하기 위해 개인의 기록 또한 중요하게 대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기록도 중요하게 되었다.
일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웹상에 많은 기록이 난무하게 되었다.
SNS에 지금도 생성되고 있는 수많은 말과 글들.
지울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얼마전 1박2일에 출연했던 한 선생님은 과거에 썼던 글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오죽하면 이제는 과거에 썼던 글을 찾아 지워주는 사업까지 생겼을까.
기록을 뒤돌아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었던가 하기도 하고 또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에
민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워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 한발 한발 나서는게 두려워졌을 뿐.
서산대사의 踏雪夜中去는 한번 음미해볼만하다.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은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