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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리커버 특별판)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이 책의 장르는 무엇일까?
신화인가? 성장소설인가? 로멘스인가? 그것도 아니면 페미니즘일까?
어떤 하나로 개념짓기에는 너무 복합적이다.
오랜만에 정말 너무너무 좋은 책을 만났다.
이렇게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던 적이 언제적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와 천사와 악마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책소개에 나오는 여러 추천인들의 찬사를 믿지 않는 편이다..
누구와 누구가 극찬을 했다, 무슨 상을 받았다 등의 말들을 출판사에서 내놓는
마케팅용 립서비스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의 추천사을 책 소개에 전면으로 내세우면 오히려 책을 선택함에 있어 주저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다. 충분히 추천받을만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할거다.
서론이 구질구질하게 너무 길었다.
이제 책으로 들어가보자.
책을 읽기전에 그리스신화에 기본적인 지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무난하지만
그리스신화를 어느정도 알고 있으면 훨씬 재미있을 거라는 건 의심할 바 없다.
우선 키르케라는 인물(?)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부터 알아보자.
그리스신화 또는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잠깐 나오는 아이아아에섬에 사는 마녀다.
태양신인 헬리오스와 바다의 요정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페르페스, 파시파에, 아이에테스와 남매간이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가 마침 아이아이에에 들렀다가 키르케의 마법으로 모두 돼지가 되어버렸다. 오디에우스는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마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며, 키르케를 제압해 부하들을 모두 원래대로 돌아오게 했다. 그러하는 과정에서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와 일행들을 1년여간 섬에 붙잡아 두었다.
결국 오디세우스를 보낼 때가 오자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와의 사이에 텔레고노스라는 아들을 두었다.
이 정도가 키르케가 신화에서의 내용이라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책의 줄거리를 잠깐만 요약해보자.
키르케는 헬리오스와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여신으로의 능력도 외모적인 능력도 거의 없어 사랑받지는 못했으나 미움받지도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캐릭터였다.
글라우고스 라는 어부를 사랑하여 그를 신으로 만들어주었으나 배신을 당했다.
몇가지 사건을 일으킨 후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후 아이아에섬에 유배를 당한다.
이때부터 스스로 성장하여 마녀로서의 능력을 갖게 되며 몇몇 사건을 거치며 살아가다 섬에 찾아온 오디세우스를 만나게 된다.
여차저차하여 오디세우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그를 고향 이타케로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보내준다.
이후 아들 텔레고노스를 낳아 열심히 키운다.
장성한 아들 텔레고노스가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보고 싶어하여 끝까지 반대할 수 없어 이타케로 보내주지만 어떤 사건으로 텔레고노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죽이게 된다.
아이아이에섬으로 돌아온 텔레고노스는 혼자서가 아니라 오디에우스의 부인 페넬로스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데리고 온다.
그들과 긴장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숨어있던 사실들을 알게되며 관계는 돈독해지고 몇가지 모험과 사건들을 거치며 마침내 키르케는 텔레마코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인간이 되는 마법을 본인에게 부리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 짓는다.
이거 너무 스포일러인가?
결말은 약간 열린결말이기도 하다.
인간이 된 키르케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그 삶이 궁금하기도 하다.
자 그러면 내가 왜 이 책의 장르를 여러가지라고 했는지 보겠다.
왜 페미니즘이라고 했을까? 페미니즘이며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키르케는 작은 괴로움은 있었으나 큰 어려움없는 삶을 살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와 부딪치게 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위엄에 겁을 먹고 물러서고 용서를 빌었으나 “아버지 생각이 틀렸어요” 라고 내뱉는다.
이 말은 책의 마케팅에서도 많이 쓰지만 키르케가 각성하게 되는 큰 변곡점이다.
키르케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라난다.
어릴때는 부모님이 대단해보이지만 어느새-보통은 사춘기를 거치면서-부모님과 대립하고 또 극복하면서 성장을 해나간다.
키르케가 아이아이에섬에서 그러했듯이 모든 자식들은 부모님의 도움없이 혼자 서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깨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어느새 부모님과는 멀어지지만 그건 자식들의 착각,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부모님의 지혜를 찾는 시기가 찾아오고 부모님과 화해를 하게 된다.
키르케 역시 먼 훗날 아버지 헬리오스를 다시 찾지만 키르케는 달랐다.
아버지와 대립하며 동등한 입장에 서고자 했으며 본인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였다.
그게 이 책이 페미니즘이며 성장소설이라는 이유다.
물론 다른 면도 있다.
키르케가 텔레고노스를 낳고 키우며 겪었던 많은 어려움과 고난들.
내가 남자라서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이건 작가가 그만큼 글을 잘 썼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고(신중의 최고라 할 수 있는 아테나와 대립하고 신들도 두려워하는 트리곤을 만나러 가는등) 엄청난 모성애를 보여준다.
자신의 품을 떠나려는 아들 때문에 힘들고 괴로워하지만 끝내 아들을 이길 수는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번째 로멘스인가?
신화의 내용을 걷어내고 나면 이건 한 여인의 사랑과 인생이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남자 글라우코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으나 자신이 원하는 곳을 모두 얻어낸 글라우코스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막장드라마에서 자주보는 사랑과 배신이야기.
헤르메스와 사랑없는 육체적 관계만을 가지다 그 관계마저 틀어졌고, 또 사랑을 주었던 남자 오디세우스(이 남자는 고향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 유부남이다)는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보내주어야만 했다. 그냥 보내주기만 하는게 아니라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 써주었다.
그리고 키르케에게 찾아온 마지막 남자 텔레마코스
키르케는 텔레마코스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한다.
아!!진짜 위대한 사랑의 힘이여~
사람들은 소설을 왜 읽을까?
소설을 읽는게 언뜻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인간을,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소설만큰 좋은 게 없다.
신문 사회면의 짧은 기사를 보면 어처구니 없는 사건과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소설은 독자들에게 ‘개연성’을 제공해준다. 키르케가 왜 선원들을 돼지로 만들었는지 신화에는 없지만 이 책에는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 때 ‘나라면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랬을 때 주인공이 스스로의 선택 때문에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되는지 보면서, 내가 한 선택의 결말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소설을 읽으며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 애쓰고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의 삶을 연장시키고 새롭게 되돌아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소설이다.
사족 1
그리스 신화에서는 키르케가 글라우코스를 만나기 전에 남자가 한번 등장한다.
라티움의왕 피쿠스이다. 젊은 미남인 피쿠스를 보고 한눈에 반해 가짜 멧돼지를 만들어
피쿠스를 유인해 고백했지만 자신의 요정 아내 카넨스가 더 예쁘다는 피쿠스의 발언에
꼭지가 돌아 그대로 피쿠스를 딱따구리로 변신시켜 버린다.
사족 2
오디세이아의 해피엔딩 이후를 다루는 텔레고네이아(오디세우스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
들 텔레고노스가 주인공인 )라는 신화를 보면 텔레고노스는 이타케에서 아버지인 줄 모르고 오
디세우스를 죽이게 된다.
텔레고노스는 아테나의 명령으로 이복형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를 아이아
이에섬으로 데려와 장사를 치렀는데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닮은 텔레마코스에게 반해 그와
결혼하고 짝을 맞추기 위해 페넬로페와 텔레고노스를 결혼시킨다. 즉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
의 부인이 었다가 며느리가 되어버린 막장엔딩이다. 패륜임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함께 키르케
에게 불로불사를 받고 축복받은 땅에서 영생을 보낸다. 때문에 텔레고네이아를 신화로 인정하
지 않는 사람도 많다.
사족3
이동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책의 삼분의 이쯤을 펼쳐 읽어서 책이 좋으면 전체가 다 좋다라
고 했다. 왜냐하면 책을 쓰다보면 이때 쯤에서 힘이 떨어져 내용이 조금 부실해지는 면이 있다
고 하는데 (온전히 이동진 작가의 개인 견해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면을 느낄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아이아이에섬을 떠난 후 부터가 조금 늘어진다는 개인적은 느낌을 가지고 있지
만 그래도 내용은 계속 흥미진진할 수 밖에 없었다.
사족4
아이아에섬은 이탈리아의 폰자(ponza)
섬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족5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인 매들린 밀러의 첫번째 소설인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읽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키르케가 오디세우스를 만났을 때 책을 덮고 도서관에 가서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찾아서 읽
기 시작했으나 키르케를 먼저 빨리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마저 읽었다. 완전 갈팡
질팡했고 이제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구매하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