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 편지 왔습니다, 조선에서!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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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지금의 현재도 먼 훗날에는 역사이겠지만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역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접하는 방법은 대부분 역사교과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역사교과서와 위인전이 대부분이지요.

물론 요즘은 정보를 접하는 방법이 많아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보고는 합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세계사나 벌거벗은 한국사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도 만들어졌겠죠.

사실 벌거벗은 한국사는 좀 실망이 큽니다.

저 정도는 사극드라마만 좀 열심히 봤다면 다 아는 내용이죠.

그래서 저는 통사 위주의 역사보다는 좀더 세밀한 역사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대단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저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해주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았던 편지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부부간에 , 부모와 자식간에, 연인들이 주고 받았던 편지들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조선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것이 전부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교과서나 사극에서 접하는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가령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는 노비가 말을 듣지 않아 속상하다는 내용이라던지

어떤 노비는 소작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배째라 라고 버티어서 할 수 없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노비는 상전에게 꼼짝도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고 꾸짖는 편지에서는 과거나 현재나 똑같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죠.

사람 사는게 다 거기거 거기인가보다 라고 생각됩니다.

지방관으로 발령받은 자식이 모친에게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흔히 삼정문란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의 시대상에서 고을의 수령들도 말 못할 고충이 많구나 느껴집니다.

조금만 가혹하게 하면 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고을백성의 눈치를 살핀다는 내용을 보면

가혹한 가렴주구는 남의 나라 일인 것만 같습니다.

양반집이 다 넉넉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네요.

자식이 과거를 보러갔는데 돈이 모자라 이곳저곳에서 빌려야 하는 일도 다반사구요

이렇게 저렇게 겨우겨우 가사를 꾸려나가는 집 안주인의 고충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가문이 몰락한 양반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명문가라는게 더욱 재미가 있습니다.

기생을 사모하여 연서를 보낸 사람과 그 고백을 모멸차게 거절하는 기생의 답장도 재미가 있어요.

저자는 딴지일보에 역사, 사회, 정치, 문화등의 조잡한 글을 올리다 여기까지 왔다고 하네요.

책은 독자들이 읽기 쉽게 한문이나 중세국어로 되어 있는 원문을 현대어로 옮겨 적어놓았어요.

조선사람들의 편지는 세가지 형태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개인문집, 두번째가 가문에서 전해져 온 편지들, 세번째가 무덤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은진송씨 가문 간찰', '현풍곽씨언간'등이 있지요.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자식과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이기도 합니다.

'안동 의성김씨 천전파 종택 간찰' '대전 안동권씨 유회당가 한글 간찰', '안동 고성이씨 팔회당 종택 간찰'등

명문가에는 조상님의 편지를 잘 보관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옛사람들의 삶을 엿볼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네요.

모든 가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렇다 보니 이 저자의 다음책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도 무척이나 궁금해졌어요.

ps. 이 책을 읽다보니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펴낸 [실용서로 읽는 조선]이라는 책에서 편지 쓰는 법에 대한 내용이 생각나서 덧붙여봅니다.

제가 어릴때 학교에서 배웠던 편지쓰기의 순서는 받는사람, 첫인사, 쓸내용, 끝인사, 날짜였던 것 같은데

편지쓰기의 형식이 요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더군요.

조선시대에는 편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형식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했나봅니다.

하긴 예송논쟁 까지 벌일 정도이니 예의는 아주 중요했겠죠.

하지만 예에 맞춰 편지를 쓰는게 학식이 높은 양반들도 어려웠나봅니다.

그래서 [간식유편]이라는 편지쓰기 메뉴얼집이 발간되었네요.

간식유편이 어떤 책인가는 떼어놓고 책에 있는 편지쓰는 법만 살펴볼게요.

편지에는 왕서식(往書式)과 답서식(答書式) 두 종류가 있구요.

글이 너무 길어지니 왕서식만 보겠습니다.

왕서식은 간활류 -> 첨양류 -> 즉일류 -> 시령류 -> 복유류 -> 기거류 -> 흔희류 -> 자서용 -> 소품류(혹은 입사류) -> 임서류 -> 보중류 -> 결미류 -> 기량류 로 이루어 집니다.

(1) 간활류 :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소식이 소원했다는 문구를 표현한다.

(2) 첨양류 : 상대방을 몹시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심정을 표현한다.

(3) 즉일류 : 편지를 보내는 시점을 표현한다.

(4) 시령류 : 1월부터 12월까지의 절기를 말한다.

(5) 복유류 : 보내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처음 편지를 보내기에 상대방의 안부가 어던지 모르므로 상대방에개 묻건데 라는 문구를 쓴다.

(6) 기거류 : 받는 사람의 안후를 묻는 말을 표현한다.

(7) 흔희류 : 보내는 이가 상대방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심정을 표현한다.

(1)부터 (7)까지는 받는 사람과 관련된 부분이다.

(8) 자서용 : 보내는 사람이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대목이다.

(9) 소품류 또는 입사류 : 앞의 내용을 구만두고 화제를 돌리거나 편지를 쓰게된 본격적인 사연으로 들어가는 부분이다.

(10) 임서류 : 사연을 매듭짓고 자신이 쓴 편지를 보면서 한 번 더 상대방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든다는 표현을 한다.

(11) 보중류 : 상대방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인사드리는 대목이다.

(12) 결미류 : 요즘 표현으로 이만 줄인다 는 뜻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13) 기량류 : 자신이 쓴 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잘 살펴달라는 표현을 쓰는 곳이다.

답서식은 왕서식에서 욕승류(뜻밖에 상대방이 보내 준 편지를 받았다는 표현), 심지류(상대방이 보내준 편지를 통해서 이미 상대방의 안부를 들어 알고 있다는 표현), 인편류(상대방에게 가는 인편이 있어서 몇 글자 써서 부친다는 표현)정도만 다르다고 합니다.

예로 실려있는 편지 한통을 보겠습니다.

<뜻밖에 만나 뵌 것이 이미 여러 날 흘렀습니다.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집니다. 근래 추위가 점점 누그러져 완연한 봄이 되었습니다. 요즘 건강은 편안하십니까? 그리워하는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아무개는 염려 덕분에 근근이 지내고 있어서 달리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에 평소 사랑해주심을 믿고 감히 아무개 일로 아룁니다. 편지에 임해서 죄송한 마음 지극합니다. 항상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머지는 다 갖추지 않겠습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모월 모일 아무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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