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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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사실 좀 많이 궁금했었다.

오래전 태백산맥을 읽은 후에 살아남은 빨치산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빨치산 중 대부분은 지리산에서 총에 맞아죽고 얼어죽고 굶어죽었다는데 그 중에 살아남아 체포된 사람들은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은 감옥살이를 하였을테고 전향을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게다.

장기수라는 이름으로 길게는 30여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예전에 신춘문예가 한창 잘나갔을 때 해마다 신년에는 신문에 자기 신문사에서 당선된 신춘문예를 실었더랬다.

기억에 남는 소설 한편이 빨치산의 아들이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 사실을 알고 매주 지리산을 등산하며 뭐 어쨌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빨치산을 조금씩 빨갱이로 매도하던 시선에서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되었 시기였을 테다.

물론 신문에서 그 소설을 읽었던 나는 아마 청소년시기여서 빨치산이라는 존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였을테지만 뭔가 아들과 아버지가 화해의 길을 걷는 내용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소설은 빨치산의 딸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와 또다른 아버지를 알아가고 아버지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말로 마무리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 아버지 같은 분이 꼭 한분씩은 계신 것 같다.

가족에게는 무심하지만 동네일에는 발벗고 나서시는 분들.

연좌제 때문에 조카는 육사 지원했다 떨어지고(모래시계 박태수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은 평생을 형을 원망하며 술만 마시면 집에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피우고는 돌아갔다.

가족들은 당신에게 무심함을 원망하고 화를 내지만 주위분들은 늘 고마워하고 힘든일이 있으면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분.

아버지 고상욱님도 그런 분이셨다.

농사는 잼병이지만(문자 농사라 일컫는 <새농사>잡지에서 말하는 대로 농사짓는)종교에 빠진 조카도 다른 가족들에게 인정받도록 해주시고, 암내가 심해 결혼은 힘들겠다는 친구딸도 수술시켜 좋은 가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어머니가 한탄을 늘어놓으면 모두가 민중이라며 당신은 사회주의를 왜 했냐며 꾸지람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자주 보지 않았던가? 친구에게 보증을 섰다 빚을 잔뜩 떠 안았다던가, 속아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온다던가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은 가족에게만 있지는 않았다.

딸이 장례식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와 여러 인연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장례식장 황사장, 민노당원 박동식씨, 학수오빠, 순경이었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분등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니러 왔다.

빨치산의 동료들과 출옥 이후에 만난 이들, 민노당원과 가톨릭농민회 회원분들도 그렇다.

빨치산으로 살아오셨지만 가장 친한 친구는 직업군인이었다가 교련선생으로 평생을 조선일보만 읽는 국민학교 동기동창. 왜 만나냐는 물음에 사람이 제일로 낫다고 대답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매일 만나 서로 욕을 해대지만 쏘주한잔 같이 걸치는 박선생.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빨치산 분들은 아마도 저렇게 살아오셨을 테다.

가족은 경제난으로 힘들고 친지들은 연좌제로 출세길이 막혔지만 본인의 사상과 생각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이땅의 진보와 통일을 위해 힘써 살아오신 분들.

누구는 그들을 여전히 빨갱이라고 하고 누구는 진보인사라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아버지와 박선생, 작은아버지 그리고 베트남전 상이용사 사이처럼 서로 화해하고 지내는 법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19484월 제주에서의 민주항쟁이 있은 이후 제주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나의 아버지와 삼촌을 죽인 사람이 저쪽 마을 누구인 걸 분명히 알고 있고, 나의 아버지가 죽인 사람의 자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누구인 줄 뻔히 서로 알고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내었을까?

제주도만이 그러지는 않았을게다. 14연대가 있었던 여수, 순천이 그러했을테고 지리산 인근 구례, 하동, 남원, 산청 등 많은 동네가 같은 삶을 지내왔을거다. 거기에는 구상욱씨도 있을테고 큰집오빠도 작은아버지도 베트남전 상이용사도 박선생도 살고 있을테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삶은 다들 비슷하겠지.

시간이 세월이 약이 된 것일까?

소설 태백산맥을 불온서적이라 판금해야 한다던 게 20년이 조금 넘었다.

이제 살아계신 빨치산들은 거의 없을테지만 우리는 이렇게 산을 내려온 빨치산들이 이렇게 살아왔을거라는 걸 이렇게 책으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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