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설 -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 / 교양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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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을 역사적인 고리로 엮어 낸 훌륭한 사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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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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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결실을 맺게 된걸까요?

 

작품은 크게 형제에게서 벌어지는 이야기, 브뤼노와 성도착증 그리고 정신병원/ 미셸과 물리학 그리고 과학적 성과(라는 표현이 우습지만 우선 크게 나눌때는 이 표현만큼 좋은 표현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둡니다). 이렇게 두 개로 크게 갈려있습니다.

 

# 브뤼노, 세상의 모든 성행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강간

 

 

브뤼노는 이 세계(작게는 프랑스만 하겠습니다, 그러나 넓게는 미국사회와 소비욕에 불타는 현대인 모두를 꾸짖는 것 처럼 보입니다)를 심판하려고 작가가 전면에 배치한 인물입니다. 브뤼노가 <파리 마치>에 실린 기사를 소개하는 부분을 먼저 예로 들겠습니다. 입에도 담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청년들에 대해 검사 다니엘 맥밀런은 말합니다. ‘중요한 건 인간 집단을 단죄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회 전체를 심판하는 일이다’라고 말입니다. 브뤼노의 말입니다.

 

‘다음 해에 맥밀런은 <육욕에서 살인까지: 어떤세대>라는 책을 발간했어. 프랑스에서는 <살인세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번역이 너무 엉성했지. 나는 그 책을 읽고 무척 놀랐어. 책을 읽기전에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흔해 빠진 주장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자료를 잘 활용해서 쓴 명쾌한 책이었어. 그는 방대한 조사 작업을 벌여 다비드의 행적을 낱낱이 밝히고 있었어.’

 

저는 이 부분에서 작가가 자신이 브뤼노의 행적을 일일이 밝힌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루스트에서 보들레르로 넘어가는 경위, 그러니까 불안, 죽음, 수치, 도취, 동경을 그린 방식이 ‘어느 것 하나 내(브뤼노)가 느끼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없었다’는 고백을 통해서 브뤼노는 그의 성 도착증적 행동을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브뤼노는 성적 행위들을 통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던져진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내세우고,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각인시키려고 하는 인간의 강박증같은 사랑에 그의 시선을 고도로 밀착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기존세대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미셸은 파리 11대학을 자진해서 입학했습니다. 파리의 1대학이 극우파이고, 12대학이 극좌파입니다. 1대학 출신이 가장 오른편에 앉고, 12대학출신이 가장 왼쪽에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극좌-극우의 개념입니다. 우엘벡은 형제를 통해 68세대의 좌파적 사고방식을 그냥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좌파의 무기력함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죠.

 

 

브뤼노는 온갖 성적 행동을 합니다. 온갖 상황에서의 마스터베이션, 매춘은 기본이고, 스와핑까지. 그런데 규칙이 있습니다. 그는 강간은 하지 않고, (학생 강간 직전까지 갔다가 마스터베이션을 하죠) 자신이 즐깁니다. 포인트가 여기 있습니다. ‘자율적인 성’, 자신의 쾌락에서 개별성을 찾는다는 사실. 브뤼노는 이런 ‘개별성’에 사회해체주의적 사고방식이 묻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쾌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 쾌락에 엄격한 시선을 보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르세양 (나체) 해수욕장의 모래언덕은 누구에게나 아주 인간적인 장소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아무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고 각자의 쾌락을 최대화하자는 휴머니즘적 제안에 딱 들어맞는 장소이다. 237.

 

기존 사회와 기존 세대에 대한 심판. 그리하여 젊은 세대의 방황과 갈등, 무기력을 ‘성적’ 안간힘을 써서 그려냅니다. 그러기 위해 작가가 들여온 또 다른 재료는, 그렇습니다. ‘이론 물리학’입니다.

 

 

 

# 미셸, 형이상학적 혁명을 세상에 남길 이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의존하기만할 뿐, 사회에는 거의 쓸모가 없어.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낡아빠진 문화적 대상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생산하는 것 뿐이야. 그런데도 나는 봉급을 받아. 그것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짭짤한 봉급을 받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 동생 뿐이야. 219.

 

작품의 마지막에서 미셸이라는 인물은 거의 전설에 가깝습니다. ‘지구 표면의 도처에서 지칠대로 지친 인류가 자기들 자신과 자기들의 역사에 회의를 품은 채로 그럭저럭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는’때에 미셸이 한 연구의 과학적 성과는 미래의 인류에게 과학이 답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려고 하죠. 미셸의 연구는 작품 전반에 ‘매우’ 진지하게 진행됩니다.

 

브뤼노의 동생 미셸은 세월이 흐른 뒤에, 인간의 행동을 초유동 상태의 헬륨의 운동과 비교한 짤막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인간의 뇌 내부에서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 전자가 교환되는 것은 원자 수준의 아주 미묘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원칙적으로 말해서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뉴런은 작은 차이들을 통계적으로 무효화시킴으로써 인간의 행동에 결정론적인 성격들을 부여한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은 다른 모든 자연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게 된다. 100.

 

미셸은 확신하고 있었다. 뉴런과 시냅스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끌개(어트랙터)의 구조와 성격을 알아내는 것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설명하는 일의 열쇠라는 것을. 244

 

공(空)의 형태로 비어있는 우리의 세포 속에 존재하는 소립자. 그 안의 원자... 우리는 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작은 차이에 의해 우리의 생김이 달라집니다. 반대로 말하면 너무 많은 세포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신경세포는 미묘한 것들을 무효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결정론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생김을 하고 인간의 사회를 꾸리며 인간이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러니까, 브뤼노의 경우 말입니다.) 아버지가 다른 아들 둘을 끌어다 놓고 하나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지배받는 이론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하나는 성도착증으로 자신의 불안함을 온몸을 다해 꺼내놓는 인물을 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은 경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따라 흘러간다. 인간은 거의 모든 행위에서 자기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진로 변경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91.

 

작가는 브뤼노를 통해 한 사회를 만들고 집단의 규칙을 세웠고 그 세대를 이끌었던 과거세대를, 그리고 인간전체를 사실 뒤집어보게 만들었고, 동생 미셸을 통해서는 미래 세대의 인간복제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방법이 매우 희극적입니다. 클론으로 번식하는 변종들이 성적인 방식으로 번식하는 변종보다 빠르다는 둥, 과학이 도달한 곳에는 인류가 없고 인류를 대체한 새로운 종이 있을 뿐이라는 둥.

 

중요한 것은 DNA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체를 하나의 자기 복제 시스템으로 총체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294.

 

저는 마지막 3부를 읽으면서 작가가 미셸을 통해 ‘과학이 세상에 빛을 줄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 자체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풍자적으로 (미셸의 후임이라고 하는) 허브체작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복제 등에 대해 학문적 대성공을 거둔 듯 보이도록 장치를 꾸려두었지만, 그것은 미셸의 의도와 달랐다는 것을 끝에서 밝히고 있는 점이 그렇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간들이 자신들의 소멸을 그토록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그들이 은근히 안도감을 느끼며 자기들의 소멸에 동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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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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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철학의 지점, 프랑스 진보와 그것을 마주한 세대의 갈등과 대안이 그대로 녹아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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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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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콜롬보의 해부학적 발견을 매우 섬세한 상상력으로 꿰매놓은 작품. 반양장인지 양장인지 그냥 샀는데 의외로 양장이 들고다니면서 읽기 편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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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밀란 쿤데라는 '어떤 사람도 하나의 책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사회학 책을 읽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한다. 한 사람 사상의 집약, 그것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비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것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우연히 이 책을 알게되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퇴근길에 우연히 만난 대학원적 교수님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사두고 한참을 리스트에 올려만 두었던 이 책을 시작할 즈음, 나는 논문을 하나 읽었다. 아프리카 지도자는 과연 개발에 대해 어떤 사고를 갖고 있을까, 그리고 공여국들은 순수한 목적으로만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이 담긴 한국외대 조원호 교수님의 논문이었다. 이 또한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했다. 모든 것은 이렇게 우연히 내 앞에 발견되기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던 식민역사과 개발의 역사, 내 미약한 지식으로는 얼기설기 되었던 것을 단번에 정리시켜주었다. 물론 공여를 해주는 입장이나 수혜를 받는 입장이나 각국마다의 성격과 배경과 차이점은 있다. 그렇지만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놀랍게 정리시켜주는 책이었다. 원제는 'development and social change' -개발과 사회개혁 이다. 작가는 1940년부터 현재까지, 개발이 사회개혁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어왔고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논술한다.

 

요점만 말하면 이렇다: 개발 프로젝트는 강대국 경제이익을 위해 식민의 역사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구촌 프로젝트로 변형되어 발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매우 격렬한 주장이지만 담담한 논조로 작가는 세대가 지나쳐온 역사를 읊기 시작한다.

 

개발의 역사와 정치:

 

개발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우선 개발의 이론과 친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발의 이론에 밑받침이 된 가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이 책이 시작된다.

 

Michael Cowan과 Robert Shenton이 개발을 두가지로 구분한 것을 생각해보라. 즉각적이거나 보편화된 사회적 과정으로서 개발, 그리고 정치적 개입으로서 개발.첫째, 19세기만 해도 개발은 인류의 향상이라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해석되었다. 둘째,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당시 등장하던 국민국가를 사회적으로 설계하고 운용하기 위해 개발을 실용적으로 해석하였다. 32. 

사람들은 '겉보기에 숭고한 과업처럼 보이도록' 개발에 영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White man's burden. 백인이 져야 할 짐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개발은 마치 선진국이 개도국을 도의적인 목적에 의해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며졌다. 게다가, '식민지배 시기의 인종적 경멸이 떠난 자리를 식민지배 이후의 경제적 멸시가 차지했다'. 개도국이 문명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주장이 크게 작용했다. '신생 독립국들이 추구한 개발 프로그램, 즉 독립속의 ‘의존’(dependence in independence)은 식민지배 이후 시대의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개도국은 이 멸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선진국은 이런 개도국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수출과 투자의 이득)과 정치적 이익(지배욕)을 채우고 싶었다. '개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공동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공리주의 철학'이 교묘히 이용되었다. 개발이 국가의 공식적인 프로젝트로 자리잡은 것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많은 국가들이 '어쩔 수 없이' 개발시켜주겠다는 선진국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속삭임은 훌륭했다. 우리는 너희들을 지원해줄께, 너희는 그냥 우리가 하는대로 따라와. 형님이 해주겠다는데, 개도국들은 발전된 그들의 문명을 욕심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발은 일종의 권력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했다. '산업화가 영국과 이집트 내부에서 각각 새로운 계급 불평등을 창출하였다면, 식민주의는 인종적으로 계층화된 국제적 불평등을 만들어냈다'.   

    

인도의 민족주의는 인도국민회의라는 정당과 그 정당의 진보적 민주사회주의자였던 자와할랄 네루를 중심으로 해서 권력 장악의 길로 나아갔다. “현대 세계에서, 한 나라가 고도의 산업화를 이미 달성했고 자체적으로 자원을 완전히 동원할 수 있지 않는 한, 그 어떤 나라도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수는 없다.”  

'길버트 리스트(Gilbert Rist)는 식민지배 시대 이후의 신생 국가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들은 자기 규정권(right to self-definition)을 포기하는 대신 자기 결정권(right to self-determination)을 얻었다. 이 말은 신생 독립국들이 서구 중심적인 개발이 표준이 된 미래 세계를 선택함으로써 개발의 비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런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령, 

  

간디는 자기 이익을 강조하다보면 공동체에 기반을 둔 윤리가 침해된다고 보았고, 사회적 권력의 분산을 지지하고 풀뿌리 자립 의식을 호소했다.

 

  용어정리 하나만 하고 지나가자.  

 

전 세계 국가들을 나누는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고 다방면에 걸친 과제이며, 분류의 목적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1952년에 프랑스의 인구학자 알프레드 소비(Alfred S며표)dml 기본적 분류는 세계를 삼등분하는 방식이었다. 제1세계(The first world)는 서구와 일본을 합한 자본주의권이었고, 제2세계(The second world)는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진영이었으며, 그 외의 모든 지역은 제3세계(The third world)로 여겼는데 주로 서구의 구식민지들로 이루어진 블록이었다. 제 3세계 내에서도 핵심부는 제1세계와 제2세계 사이에서 독자 노선을 도모하려는 비동맹 국가들이 차지했는데 특히 중국, 이집트, 가나,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유고슬라비아 같은 나라들이었다. 1980년대에는 주변화된 극빈국들을 따로 호칭하기 위해 제4세계(The Fourth world)라는 말까지 생겼다.

 

    

개발 프로젝트의 기원 

  

3세계의 지도자들은 개발프로젝트를 반대하지 않는다. 엘리트의 담합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치 경제적 엘리트들이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국가의 국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소련이라고 그러지 않을까? 자본주의에 농락당하는 것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주의 체제 속에 있는 국민들만이 아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Iosif Stalin)은 1930년대에 이미 이런 교의를 설파한적이 있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50년 아니 100년쯤 뒤떨어져 있다. 10년내로 이 간격을 없애야 한다. 우리가 이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들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스탈린의 결의는 적대적인 세계에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압력에서 나온 것이다. 소련은 값싼 먹을거리를 통해 도시 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농촌을 ‘쥐어짜서’ 한 세대안에 산업화를 달성했다. 냉전의 양진영을 가리지 않고 산업화는 성공의 상징이 되었다. 동서 양진영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산업 발전을 열심히 추구했다. 발전은 그저 목표가 아니라 일종의 통치방식이었던 것이다. 108  

개발 프로젝트의 국제적 틀

 

미국이 경제적 목적(수출)과 정치적목적(우방국가 탈환)을 염두하고 슈퍼국가로서 몸집을 불려나가는 사이, 세계는 미국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원조를 받고, 미국의 사고가 주입되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지켜봤고, 세상은 점차 시장경제 친화적인, 자유주의로 변화해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기업은 최대의 수혜자였다. 그들은 개도국 정치 엘리트들과 담합했고, 개도국 사람들은 미국의 기업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화는 가속화되었다. 세계의 정치자들은 함께 모여 공동체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들은 함께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 퇴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미국 정부는 1945년부터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처분하기 위해 공법 480호 프로그램(PL-480, Public Law 480 Program)을 시행했다. 이 공법 프로그램은 세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농산물을 현지 통화로 저렴한 가격에 상업용으로 제공한다. 둘째, 기근 구호용 농산물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셋째, 현지의 전략적 원자재와 미국산 농산물을 물물교환한다. ..잉여 농산물 관리는 식품 가격 안정을 이루었고, 이것은 다시 개발 프로젝트의 두 상호보완적 핵심요소인 미국의 농업 경제와 제 3세계 정부의 산업화 육성계획을 안정시켰다. 137 

 

제 3세계 정치 엘리트들은 민족주의적 주제를 표현한 거대한 공공개발 프로젝트를 벌여 자기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군대를 강화하고, 대출에서 발생한 수익성 높은 사업 계약을 후견 네트워크에 제공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1964년부터 1985년 사이에 집권한 군부 통치자들이 연이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국가주의 모델에 따른 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196, 개발의 전 세계적 확산  

 

지구화 프로젝트의 정치학

 

작가는 ‘지구화 프로젝트가 개발 프로젝트를 승계했다. 205.’고 말한다. 지구화의 물질적 혜택이 결국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2만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지구화(globalization)가 아니라 ‘프로젝트’라는 말을 붙인 ‘지구화 프로젝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개발프로젝트가 지구화 프로젝트로 변형되었다는 말은 어찌보면 억지 같은데, 한편으로는 앞서 작가가 주장했던 대로 개발 프로젝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정치경제적 관점의 지구촌화가 일어났다면 가능한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논리가 치밀하다. 그리고 결국 ‘전 지구적 경제가 개발의 단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함에 따라 작가가 말하는 지구화 프로젝트와 개발의 연계라는 주장은 힘을 얻는다. 

 

조금 과격한 면이 없지않지만, 작가는 새로운 전 지구적 조절 시스템이 국민국가를 대체한 시장국가(market states)로 대체되었다(5장. 지구화 프로젝트의 정치학)고 보고, 표준화된 자유화 정책이 세계의 모든 지역과 장소를 시장의 메커니즘에 의해 재조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로인해 취약한 산업 인프라를 갖고 있는 개도국은 초국가 기업들의 유연한 침략 전략으로 불안정해지기에 이르고, 사회적 보호는 커녕 생존의 위기에 맞닥들였다는 것이다.

 

지구화 프로젝트의 위기

 

그렇다면 대안으로 활용되는 지속가능성은 어떠한가. 세계은행을 비롯한 굵직한 국제기구와 거대국가들이 이야기하는 지속가능성, 그것이 개발의 대안인가에 대한 질문도 이 책은 품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 sustainable development 는 1987년에 <인류 공통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브룬틀란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 개념을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미래 세대의 욕구 충족 능력을 해치치 않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이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 보고서는 환경 악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의 해석을 놓고 벌어진 논쟁-인류 공통의 미래가 위협받는 상황이 빈곤에서 비롯되는지 또는 풍요에서 비롯되는지-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327 

대안은 없는가  

 

1. 대안으로서의 개별성  

 

내 석사 논문은 획일성을 배격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통과를 하긴 했지만, 수없이 다양화의 구체적 방안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가능한 논리인가. 한국사회만 봐도 수없이 획일화되어가는 것들이 너무나 산적해있는데, 권력으로서의 획일성을 과연 벗어날 수 있는가. 답은 의외의 장소에서 나왔다. 브랜드를 달지 않은 카페들. 권력이 시작했던 역사라도 각자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해주면 획일성은 사라진다. 획일화가 사라진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지배욕'을 사라지게 만들어버린다와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대안으로 삼은 것도 권력으로서의 획일화를 제지하려는 다양성과개별성에 대한 움직임들이다.

 

세계주의 운동은 전 지구적 개발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획일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대안적 문화전통- 문화 존중과 전 지구적 생존의 문제로서-을 보존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계주의 운동은 폭넓은 맥락에서 인권과 민주 권리를 보존하거나 강조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을 포괄한다. 또한 이 운동은 세계주의 운동의 병행 개념인 세계주의적 민주주의 cosmopolitan democracy를 제창한다. 355

  2. 가치의 전향 

 

사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개별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전향시키라. 세계화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물질적 욕구에서도 자유로우며 지배욕구에 의해 자기 삶을 농락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고 개별적인 다양성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런 비슷한 관점이 보이는 곳도 있다.

 

무토지 농업노동자운동은 저소득 계층 소비자를 위한 주식용 곡물 생산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으므로, 2003년 룰라정부는 전국적 기아퇴치 Zero Hunger 캠페인의 하나로서 정착촌에서 재배한 곡물을 직접 구매하기로 했다.

'이러한 집단적 사업들을 보면 왜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이 국제적 공정 무역 운동의 선두주자인지 알 수 있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은 기업의 지구화에 대항하여 진정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수익창출보다 공동체의 가치와 환경보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 협동조합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거래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367.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실 말 안해도 잘 알고 있다. '자본'에 함락당한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어리석지만, 그만큼이나 사람들을 혹하기도 쉽다. 사람들은, 그러니까 대중의 한사람으로서, 어리석게도 자본이라는 것에 의존할만큼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기가 어리석은지 모르는 것이다.

 

 

3. 지속이 정말로 가능한 프로젝트: 공정무역이라는 말을 잊은 공정무역, 생태계보존이라는 단어를 잊은 생태학적 농법.

 

스타벅스 한켠에 공정무역 커피를 판지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스타벅스는 공정무역 커피를 활용한다고 써붙였다. 조금 비싸다. 사람들은 호의를 갖고 사기시작했다. 엄브렐라 NGO인 국제공정무역상표기구 FLO, Fairtrade Labeling Organizations International 이 생겼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들은 '기존의 국제 무역 관행이 생산자에게 끼치던 부정적 영향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소비자의 구매력을 이용해 생산자가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공정무역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투명한 거래 조건, 노동 조건을 인식시킨 상태에서의 소비욕구자극. 이것은 공정무역을 대안적인 소비법으로 제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단, 이 책에서 강조하는 NGO에 대한 굉장한 긍정적 시각은 보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NGO는 하나의 대안이지, 그것이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국민국가가 존재하고, 여전히 국제기구는 광역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NGO가 하나의 그룹으로 커나가지 않고 지역적 색을 살리면서 연대하는 것은 충분히 의의가 있다.

 

이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지속가능 프로젝트는 국제기구가 포함된 거대담론으로서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농업 생태학을 위해 소개하고 있는 <개발을 위한 농업 과학과 기술의 국제적 평가 IAASTD,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gricultural Science and Technology for Development> 는 400명 이상의 개별 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 개발 전문가 등이 집필에 참여하고, 식품레짐이 소농들에게 끼칠 불리한 영향을 열거하고, 가난한 소비자와 소농들의 욕구와 세계무역기구의 개방화 정책사이에서 존재하는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국가 정책을 운용하라고 주장한다. 457. 또한 농업의 다기능성을 보장하고 환경을 거스르는 기업/사회적 관점에서의 농업을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보건과학자들과 현지농민, 정부, 시민단체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해답이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대의 대안이라고 나도 동감한다. 사회학적 고려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본능이 작용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세계화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개별로서의 자각이 미래를 열어가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친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한사람의 힘은 크다. 그것을 잊은 대중으로서는 우매한 이도,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면, 세상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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