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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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 책을 인류에게 바친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결실을 맺게 된걸까요?

 

작품은 크게 형제에게서 벌어지는 이야기, 브뤼노와 성도착증 그리고 정신병원/ 미셸과 물리학 그리고 과학적 성과(라는 표현이 우습지만 우선 크게 나눌때는 이 표현만큼 좋은 표현이 없을 것 같아 그냥 둡니다). 이렇게 두 개로 크게 갈려있습니다.

 

# 브뤼노, 세상의 모든 성행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강간

 

 

브뤼노는 이 세계(작게는 프랑스만 하겠습니다, 그러나 넓게는 미국사회와 소비욕에 불타는 현대인 모두를 꾸짖는 것 처럼 보입니다)를 심판하려고 작가가 전면에 배치한 인물입니다. 브뤼노가 <파리 마치>에 실린 기사를 소개하는 부분을 먼저 예로 들겠습니다. 입에도 담지 못할 범죄를 저지른 청년들에 대해 검사 다니엘 맥밀런은 말합니다. ‘중요한 건 인간 집단을 단죄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회 전체를 심판하는 일이다’라고 말입니다. 브뤼노의 말입니다.

 

‘다음 해에 맥밀런은 <육욕에서 살인까지: 어떤세대>라는 책을 발간했어. 프랑스에서는 <살인세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번역이 너무 엉성했지. 나는 그 책을 읽고 무척 놀랐어. 책을 읽기전에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흔해 빠진 주장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자료를 잘 활용해서 쓴 명쾌한 책이었어. 그는 방대한 조사 작업을 벌여 다비드의 행적을 낱낱이 밝히고 있었어.’

 

저는 이 부분에서 작가가 자신이 브뤼노의 행적을 일일이 밝힌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루스트에서 보들레르로 넘어가는 경위, 그러니까 불안, 죽음, 수치, 도취, 동경을 그린 방식이 ‘어느 것 하나 내(브뤼노)가 느끼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없었다’는 고백을 통해서 브뤼노는 그의 성 도착증적 행동을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브뤼노는 성적 행위들을 통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던져진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내세우고,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각인시키려고 하는 인간의 강박증같은 사랑에 그의 시선을 고도로 밀착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기존세대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미셸은 파리 11대학을 자진해서 입학했습니다. 파리의 1대학이 극우파이고, 12대학이 극좌파입니다. 1대학 출신이 가장 오른편에 앉고, 12대학출신이 가장 왼쪽에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극좌-극우의 개념입니다. 우엘벡은 형제를 통해 68세대의 좌파적 사고방식을 그냥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좌파의 무기력함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죠.

 

 

브뤼노는 온갖 성적 행동을 합니다. 온갖 상황에서의 마스터베이션, 매춘은 기본이고, 스와핑까지. 그런데 규칙이 있습니다. 그는 강간은 하지 않고, (학생 강간 직전까지 갔다가 마스터베이션을 하죠) 자신이 즐깁니다. 포인트가 여기 있습니다. ‘자율적인 성’, 자신의 쾌락에서 개별성을 찾는다는 사실. 브뤼노는 이런 ‘개별성’에 사회해체주의적 사고방식이 묻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쾌락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 쾌락에 엄격한 시선을 보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르세양 (나체) 해수욕장의 모래언덕은 누구에게나 아주 인간적인 장소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아무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고 각자의 쾌락을 최대화하자는 휴머니즘적 제안에 딱 들어맞는 장소이다. 237.

 

기존 사회와 기존 세대에 대한 심판. 그리하여 젊은 세대의 방황과 갈등, 무기력을 ‘성적’ 안간힘을 써서 그려냅니다. 그러기 위해 작가가 들여온 또 다른 재료는, 그렇습니다. ‘이론 물리학’입니다.

 

 

 

# 미셸, 형이상학적 혁명을 세상에 남길 이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의존하기만할 뿐, 사회에는 거의 쓸모가 없어.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낡아빠진 문화적 대상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생산하는 것 뿐이야. 그런데도 나는 봉급을 받아. 그것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짭짤한 봉급을 받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 동생 뿐이야. 219.

 

작품의 마지막에서 미셸이라는 인물은 거의 전설에 가깝습니다. ‘지구 표면의 도처에서 지칠대로 지친 인류가 자기들 자신과 자기들의 역사에 회의를 품은 채로 그럭저럭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들어갈 채비를 하는’때에 미셸이 한 연구의 과학적 성과는 미래의 인류에게 과학이 답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려고 하죠. 미셸의 연구는 작품 전반에 ‘매우’ 진지하게 진행됩니다.

 

브뤼노의 동생 미셸은 세월이 흐른 뒤에, 인간의 행동을 초유동 상태의 헬륨의 운동과 비교한 짤막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인간의 뇌 내부에서 뉴런과 시냅스 사이에 전자가 교환되는 것은 원자 수준의 아주 미묘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원칙적으로 말해서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뉴런은 작은 차이들을 통계적으로 무효화시킴으로써 인간의 행동에 결정론적인 성격들을 부여한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은 다른 모든 자연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게 된다. 100.

 

미셸은 확신하고 있었다. 뉴런과 시냅스의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끌개(어트랙터)의 구조와 성격을 알아내는 것이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설명하는 일의 열쇠라는 것을. 244

 

공(空)의 형태로 비어있는 우리의 세포 속에 존재하는 소립자. 그 안의 원자... 우리는 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작은 차이에 의해 우리의 생김이 달라집니다. 반대로 말하면 너무 많은 세포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신경세포는 미묘한 것들을 무효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결정론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생김을 하고 인간의 사회를 꾸리며 인간이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간이 아닌 것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러니까, 브뤼노의 경우 말입니다.) 아버지가 다른 아들 둘을 끌어다 놓고 하나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지배받는 이론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하나는 성도착증으로 자신의 불안함을 온몸을 다해 꺼내놓는 인물을 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은 경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따라 흘러간다. 인간은 거의 모든 행위에서 자기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진로 변경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91.

 

작가는 브뤼노를 통해 한 사회를 만들고 집단의 규칙을 세웠고 그 세대를 이끌었던 과거세대를, 그리고 인간전체를 사실 뒤집어보게 만들었고, 동생 미셸을 통해서는 미래 세대의 인간복제 가능성에 대해서 탐구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방법이 매우 희극적입니다. 클론으로 번식하는 변종들이 성적인 방식으로 번식하는 변종보다 빠르다는 둥, 과학이 도달한 곳에는 인류가 없고 인류를 대체한 새로운 종이 있을 뿐이라는 둥.

 

중요한 것은 DNA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체를 하나의 자기 복제 시스템으로 총체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294.

 

저는 마지막 3부를 읽으면서 작가가 미셸을 통해 ‘과학이 세상에 빛을 줄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 자체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풍자적으로 (미셸의 후임이라고 하는) 허브체작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복제 등에 대해 학문적 대성공을 거둔 듯 보이도록 장치를 꾸려두었지만, 그것은 미셸의 의도와 달랐다는 것을 끝에서 밝히고 있는 점이 그렇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간들이 자신들의 소멸을 그토록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그들이 은근히 안도감을 느끼며 자기들의 소멸에 동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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