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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시점에 이 책을 꺼내들어 읽을 것인가. 나에게는 오직 그것이 문제였다.
숨쉴틈도 없었지만 숨을 쉬지 않기 위해 한문장을 여러번 거듭해 읽었다.
나는 확신한다. 김영하는 평행우주론과 불확정성의 원리를 정확히 꿰고 예술에 접목하려했다.
김영하는 오랫동안 천주교인었다고 고백해왔다. 신부님이나 천주교도가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 그가 불교를 꺼내들었다.
나는 이 책의 서두에 쓰인 금강경의 한구절(應無所住 而生基心)과 반야심경을 읽고, 이 책의 의도가 공과 점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거의 직감해버렸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때, 엄청난 강도의 숨이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아....김영하.....
여러해 김영하라는 소설가의 팬으로 살았지만, 그의 소설을 하나씩 덮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지만 그것이 두렵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불에 타버려야 실감하게 된다.
그것이 불과 같은 열기로 나를 덮어버렸다는 것.
대중들에게는 매우 흡인력있는 이야기로 보였을 소설,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재능에 대해 엄청난 시기를 느끼게 했을 소설.
모든 것이 공과 무로 어떻게 수렴해가는지 알려준,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
김영하의 최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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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꺼내온 문장들
오이디푸스는 무지에서 망각으로, 망각에서 파멸로 진행했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다. 파멸에서 망각으로, 망각에서 무지로, 순수한 무지의 상태로 이행할 것이다.
평행우주로 보내진 것 같다. 이 우주에서 박주태는 경찰이고 안형사는 없고 나는 은희의 살해범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바로 지금 내가 처벌받고 있다는 것을. 신은 이미 나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나는 망각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 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