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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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에는 주인공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의 상대역이 있고, 그들을 보조하고 있는 보조 출연자가 있습니다. 어떤 매우 상업적인 영화를 보다가 언젠가 저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아닌 모든 출연자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법인데, 주인공은 마치 주인공의 삶이 모든 사람의 삶을 주무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고 있군, 하고 말이죠. 그 영화를 보고 얼마후에 회사 선배에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자기 삶의 나레이션을 갖고 있는거니까. 선배의 삶에도 나레이션이 있는 것이고요'. 그때 제 선배가 대답했습니다. 그런게 어딨어, 다 똑같이 사는거지.

 

'다 똑같이 사는거지'라뇨. 저는 그 이야기를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글은 한자 한자를 써서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단락이 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노트에 다른 글자를, 문장을, 단락을 쓰게 됩니다. 같은 탄소로 만들어졌지만,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다른 형체를 갖고 있지 않은가요? 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요. 모든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고.

 

미겔 스트리트는 그런 저에게 엄청난 웃음을 주면서 뇌를 자극시킵니다. 거봐, 이 거리에서 달리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어느 날은 A가 주인공이고, 어떤 날은 B가 주인공인거지. 그러니까 모두는 자기 삶의 주인인거고. 저는 '사람은 다 똑같다'고 말했던 그 선배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지만, 아마 그는 그런 말을 했던 사실조차 잊었을 것이므로 그런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특별하게 마음이 갔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개된 챕터는 책장을 깊게 접어두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직업>의 엘리아스, <B. 워즈워스>의 시인 워즈워스, <꽃불전문가>의 모건, <모성의 본능>의 로라, <기계의 천재>의 바쿠가 아니라 바쿠부인, <경계심>의 볼로. 그 밖에도 수없이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 미겔스트리트, 그곳은.

 

미겔 스트리트는 최하위층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1달러 2달러가 큰 돈인 곳이죠. 1959년에 발표되었으니 화폐가격이 떨어졌다고 치면, 지금의 20-30불 정도라고 생각해도 이해가 됩니다. 가장 가난한 거리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고민과 생존법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옴니버스식으로 이야기가 꾸려져 있기 때문에, 마치 현미경으로 한쪽면을 보다가 다시 다른 쪽 면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 처럼 독자는 미겔스트리트 곳곳과 인물 각각을 면면히 들여다 보게 되는 효과를 얻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로도 전혀 손색이 없고, 그 이야기를 모두 모아 놓으면 전체 줄기 속에서 모두가 통일되는 독특한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 삶에 녹아든 희극성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문장에 스며든 유머스러움. 그것은 이 어려운 환경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기도 하고, 독자로하여금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연민을 웃음으로 승화시켜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도 느끼게 합니다.

 

<꽃불전문가>. 특히 그런 모순적인 상황이 잘 연출되었던 챕터입니다. 진지하게 꽃불을 만들다가 웃음거리가 된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저 사람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데도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보이려고 애를 쓰다니 참으로 꼴사납지 뭐야"-해트의 말) 사람들에게 바보짓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데도 모건은 진지하게 꽃불 실험을 계속합니다. 그의 진지함 (아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장면 역시.)은 사람들에게 우스움을 사지만, 그의 진지함은 그냥 웃음만 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안타까운 눈으로 연민을 갖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모건의 집에 불이 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멋지고 아름다웠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심지어 나는 그 밤 모건의 집에서 본 그 꽃불이 생애 최고의 꽃불이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후 모건은 더이상 꽃불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해트는 말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무엇을 갖고자 해서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기만 하면 결국 얻을 수야 있지. 그러나 일단 그것을 얻게 되면 그걸 좋아하지 않게 되는 법이야'. 아. 가슴 시린 이야기. 누구에게는 웃음거리이고, 누구에게는 지나갈 이야기일 수 있지만, 꽃불 전문가 모건에게는 너무나 진지한 삶의 욕망과 꿈이 담긴 이야기.

 

또 하나 마음아픈 이야기. <모성의 본능>의 로라는 여덟명의 자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라에게 웃음거리 같은 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웃음거리로 술안주 삼듯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맏딸 로나가 엄마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때, 로라는 엄청나게 울게 됩니다.

 

그 울음 소리를 듣고 나는 이 세상이야말로 바보스럽고 슬픈 곳이라고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만 로라를 따라 울어버릴 뻔했다. 147.

로나가 아이를 데려왔을때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그 사실을 농담거리 삼지 않습니다. 진짜 바보에게는 바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들은 이게 진짜 삶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던 겁니다. 저도 울어버릴뻔 했습니다. 손에 잡힐듯한 슬픔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 그것이 미겔스트리트의 이야기를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죽었어. 자꾸만 해엄쳐 나가는 거야. 그러다 보면 결국은 지쳐서 더 헤엄칠 수가 없게돼. 149.

# 캐릭터가 이야기를 절로 만든다?

 

작품 '미겔 스트리트'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매우 개성있는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캐릭터들 하나하나가 반짝반짝 거립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가면 이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 저 문장을 입에서 뱉어냈을지 상상이 갈 정도입니다. 시트콤 한 시즌은 마련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캐릭터가 이야기를 절로 만드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가 유영하도록 하는 인물들이 특히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기계의 천재> 바쿠입니다.

 

기계에 엄청난 집착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기계든 해체시키고 다시 고쳐야 직성이 풀립니다. 멀쩡한 기계도 다시 풀어 조립했다가 고장나게 만듭니다. 이런 인물덕분에 이야기는 흘러가고 멀쩡한 기계가 인물을 통해 오히려 고장나는 것을 읽으며 오히려 머릿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바쿠가 고장내놓은 기계를 고치러온 진짜) 기계공은 더럽고 성난 얼굴을 엔진으로부터 처들더니 말했다. "백인들이 그들 손으로 직접 만든 엔진인데 당신네들 같은 온갖 무식쟁이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면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니겠어요?"

바쿠는 내게 눈을 껌뻑해 보였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카뷰레터(가 고장난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한참 뒤에 기계공이 와서 바쿠에게 대고 말합니다.

 

제기랄. 사려거든 롤스로이스 차나 살 것이지. 그 회사에서는 엔진을 뜯어보지 못하게 봉한 채 자동차를 출하하니까.

아 정말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니겠어요. 권력과, 권력의 구조와, 식민지라는 사회적 환경 속에 처한 인물이라는 것을 모두 차치하고도, 저는 한참이나 이 인물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옆에서 애가 터져 죽는 바쿠의 아내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온 연민을 다해 전하며.

 

 

# 역자에 대한 반항심

 

번역본은 매우 깔끔합니다. 그것을 이야기 하려고 저런 소주제를 쓴 것은 아닙니다. 책을 다 읽고 역자의 글을 펴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예속 생활을 해오는 동안 열등감을 느껴왔고 그에 따른 자기 멸시의 습성에 깊이 젖어버렸다'는 이야기에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습니다.

 

일제의 다스림을 받은 한국인이 흔히 "우리 한국사람들은 이래서 못쓴단 말이야. 일본인들 같은면 이렇지 않을거야." 라는 말을 별 저항감없이 뇌까리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는데 이와 꼭 같은 사고 방식이 트리니다드 주민들에게는 더욱 깊이 심어져 있었다. 298

자기 자신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멸시, 그것이 이런 해학성을 낳게 했다는데에는 공감이 되었습니다. 미국문화나 일본문화에 '그대로' 젖어 정신적인 예속상태를 자초해버렸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인물(미국에 대한 찬양으로 미국식 악센트로 말하고 미국인식 옷을 차려입은 해트의 동생 에드워드)을 보며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두번째로 사람들의 권태와 도덕적 타락상태가 편집광적 증세를 보이는 인물이나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인물을 형성했다는 것에도 깊이 공감했습니다. 정상인이 비정상인으로 보일정도로 미겔스트리트의 사람들은 어딘가 독특한 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이든, 허구이든, 그건 우선 소설속으로 들어와 버린 이상 논할 가치를 잃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면이 사회적 결정론에 의해, 그러니까 사회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일어난 결과라고 하는 것에도 수긍을 했습니다. 식민지 사회의 타락적 환경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운명, 혹은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실패, 좌절을 낳게 했다고 하겠습니다. 

 

반항을 하고 싶은 부분은 나이폴이 미겔스트리스에 갖고 있던 태도같은 것입니다. 역자는 역자의 말에, 마지막 에피소드가 감동적이라고 말하며, 결국 떠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려고 열여섯편의 단편을 끌어왔다는 것이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이웃들과의 클럽이 해체되고 나는 공부를 하러 영국으로 떠나죠. 물론 단편으로서 손색없는 각각의 글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저는 이런 해석이 과연 완벽히 맞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폴도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나이폴이 이 곳에 애증을 한껏 심어놓은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정이 없었다면 과연 그곳에 대해 이렇게 해학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애정을 담아 인물들을 표현해 낼 수 있었을까요? 꽃불에 미쳐있든 기계에 미쳐있든 그들의 그런 광적인 행동마저 이토록 연민과 애정을 담아 쓸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직도 나이폴이 미겔스트리트에 자신의 일부를 떼어놓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마지막 문장을 읽은 오늘 아침에 더 깊이 각인 되었습니다.

 

해트가 감옥에 가던 날 나의 일부가 죽어버렸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가 된다고 일러준 나이폴. 그의 글에서 보이는 희극성과, 희극을 통해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탐났던 작품이었습니다.

 

-리뷰를 쓰면서 느끼는 언어적 한계:

저는 요즘 매우 복잡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고, 별로 하고 싶은 말도 없습니다. 이 리뷰를 쓰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는가 한참을 스스로에게 되물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의 반도 이 글에 담지 못했습니다. 저는 죽어가고 있을까요, 살려고 발버둥치는 걸까요. 아마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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