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철학 - 패션에 대한 철학의 대답
라르스 스벤젠 지음, 도승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반세기동안, 패션은 엄청난 문화적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단순히 입는 행위를 위한 기능 뿐 아니라, 문화와 가치가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예술은 문화가, 문화는 예술이 되기도(6장.패션과 예술) 했다. 상업시장에서 매우 큰 상품이 되었으며, 디자이너들은 예술과 산업을 오가며 활동한다. 마치 대중문화와 예술 사이의 선을 넘나들듯 패션산업은 번성해왔다. 현대는 조율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사람들은 혼란을 겪게 되었다. 무엇이 올바른지 알지 못하고,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없이, 사람들은 그저 '소비'하게 되었다. 이 급박한 사회속에서, 패션의 철학을 논해야 하는 가치있는 발언은 '느림의 미학'에 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와,
속도의 정도는 망각의 정도와
정확하게 비례한다. 

-밀란 쿤데라

 

철학은 '일상의 용어'로 해석될 수 있다. 왜, 철학은 삶과 인간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 일상의 모든 부분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없다고 생각하니, 패션철학이라는 주제를 봤을때도 크게 낯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을 때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패션을 어떻게 철학으로 풀어가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책 전체를 통틀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보인다. 패션은 '기능적이고' '표피적인' 면에서 발달해왔으며, 패션은 그것을 분출시키는 계기였다는 것이다.

 

패션 이론가인 캐롤라인 에반스 Caroline Evans가 말했듯이 "패션은 문화 내부에 순환하고 있는 중요한 관심사들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 말로 세계의 불편한 진실들의 노선이다"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진실을 말하는가? 우리가 표피적 차원에만 공을 들이고 점차적으로 기능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가 가진 정체성의 일관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과 관계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패션은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을 실현한 추동력이었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302.

* 패션과 소비

 

이 책에서는 패션을 몇가지 구분으로 철학과 연결시켜 사유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들어왔던 것이 바로 '패션과 소비'이다. 단연 철학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을 소비문화에 젖어든 현대인의 소비의 습성과 가치관. 소비가 습관이 된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맥을 짚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언제나 새로운 물건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포스트모던 상품이 가지는 가장 매력적인 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태도가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가? 당연히 비합리적이다. 소비 사회는 비합리적인 개인을 전제로 하는 사회라는 점에서 이 소비 사회의 합리성은 사회 구성원들을 비합리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수준에서 작동할 뿐이다. ........ 아무리 소비한다 해도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분주하게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그런 의미에서 이성적인 행위자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겸비해야만 한다. 246.

낡은 것을 버리는 것이 습성화된 우리네 사람들. 지금까지 부르디외의 계급론에 대해 부르짖으며, 사회의 계급이 개인의 성향을 만든다고 주장하던 저자는, 정작 패션의 영역으로 돌아오자 역설적으로 현대의 소비는 계급의 정체성이 아닌 '개인적 정체성'과 관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소비자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소비는 정체성의 형성을 침해하는 순간에 주목하는 소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환경이 계급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 베블린이 주장하는 시대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속한 계급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다. 누군가의 정체성이 그들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혹은 사물들이 가진 상징적인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 정체성은 상징적 가치만큼이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36)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짐멜(Georg Gimmel)의 '패션과 소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자.

 

자기는 자기 세계 안의 사물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존재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호 작용의 풍부한 기회를 소비가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비야말로 자기의 고양을 위한 특권화된 영역이라고 본다......근대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한 사회라는 점에서 솝자들은 상품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소비를 통한 조절에 실패하게 된다. 상품의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상품의 소비를 통해 자기 삶의 지향과 조화로운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문화의 변화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21.

더 심각하게 현대사회와 소비를 꿰뚫는 문장은 사회연구자 롭 쉴즈(Rob Schields)에서 나온다: 방향성의 상실을 통해 모든 통제력을 상실한 현대인들은 그저 쇼핑센터를 수동적으로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219. 패션과 소비에 대한 사회학자, 철학자들의 담론을 듣고 있노라면 '소비하는 행위'가 그저 즐거운 '오락거리'로 전락했다는 생각마저든다. 소비야말로 현대인의 권태를 없앨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수단이 되었기(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n, 211)때문이다.

 

*패션과 예술

 

패션은 소비의 영역도 있지만, 패션 자체가 예술이 되는 문화적 영역을 배제할 수 없다. 예술은 일단 자신의 세계에 관심을 집중해왔고, 패션은 자신을 예술적 연구를 위한 하나의 재료로서 기회를 제공해왔다. (178)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상류층의 소유물이던 패션은 대중 산업으로 발전했고, 서둘러 대중복의 흐름을 쫓은 신사복은 그렇지 않았던 숙녀복보다 더 발달하게 되는 기염을 토했다. 패션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패션이 되는 과정은 기이했다.

 

어떤 대상에 상징적 가치를 덧붙이기 원한다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징적 가치를 가진 대상의 옆에 평범한 대상을 나란히 놓기만 하면된다. (174)

*패션과 육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전적으로 사회적 기준의 내재화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50.

 

우리 시대에는 시대의 요구와는 맞지 않는 외모, 혹은 다른 시대에 숭상될만한 외모를 가진 불행한 영혼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과거의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기회를 갖는다. 146. 모든 시대마다 각양각색의 얼굴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오직 한 종류의 얼굴에만 아름답고 행복한 이상적 이미지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성형이 아무렇지 않게 된 대한민국, 외모지상주의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좋은게 좋은 것'이고 '예쁜게 예쁜 것'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이 사회에서 패션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패션은 '스타일'이라고 일컬어진다. 외모를 커버해주는 것이 '패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예쁜'사람보다 '패셔너블'한 사람을 개성있다고 말하는 사회, 아마 모두가 이즈음이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패션은 새로운 대상이 언젠가는 잉여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견고한 흐름을 필요조건으로 하여 전개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 나올 것이 이전의 것보다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어떤 목적 의식없이 그저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을 대체한다는 쉼없는 지속만 지향해왔다. (57)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일관성'은 더 깊이 들여다 봐야 할 내용인데,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만 한 부분이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에 느림의 미학에 대해 설명한 밀란 쿤데라의 문장이 나왔던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본다. 패션은 변화해왔고, 그 '변화'에는 일관성이 있었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일관성이 패션을 완성해왔다. 바로 그 지점, 패션에 대한 철학이 가치있게 빛나는 점을 이 책은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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