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망현 內望顯 - 의사와 기자 두 개의 눈으로 바라본 김철중의 메디컬 소시올로지
김철중 지음 / Mid(엠아이디)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늘 염려스럽지만 바쁜 일상을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잊게 되는 관계. 감기라도 걸려야 비로소 ‘내가 소홀히 다루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조깅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하는 그런 관계. 조깅도 요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루묵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험한 세상을 살며 지친 그에게 위안을 삼아주고 싶은 그런 관계.

 

 

내 몸과 나는 그런 관계에 있다.

 

 

‘몸을 사린다’는 말이 있다. 아프지 않으려고 미리 몸을 잘 보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 현대를 살면서 그러기가 쉬울까? 출퇴근이면 뾰족하고 높은 힐을 신고 지하철과 통근버스를 뛰어나니기 일쑤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스트레칭 한번 하기 귀찮아 한다. 점심 저녁은 늘 밖에서 짜게 먹곤 하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눈을 혹사시킨다.

 

 

이 책 ‘내망현’은 그런 현대인의 건강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책이다. ‘메디컬 소시올로지(medical sociology)라는 컨셉에 맞게 의학을 사회적인 상황에 맞추어 풀어보면, 재미있지만 섬뜩하다.

 

 

작가는 풍부한 사례와 통계학적 수치를 겸비한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의학적 사실을 보통의 독자에게 매우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고 있다. 거기다 위트 넘치는 수려한 문장들은 현대 사회의 세태를 풍자하면서도 통쾌하게 의료계의 사회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지만 간과하기 쉬운 문제들이 가득하다.

 

1. 지식을 쌓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이쪽 분야에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의학에 대한 지식을 쌓도록 도와준 지침서와 같은 역할을 도맡게 된다. 몰랐던 의학적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뇌의 무산소 손상으로 기억이 상실되면 최근 것, 저장 기간이 짧은 것부터 사라진다. 그러다 옛것부터 천천히 회복되는데, 의식을 잃고 쓰려져 기억이 상실된 사람에게 "대통령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처음에는 전두환이라고 했다가, 점차 상태가 좋아지면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순으로 올라온다.  p.32

 

2. 의료계에 대해 알다

 

의학적 사실 뿐 아니라 의료계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에서 온전히 맛볼 수 있는 기쁨. 응급실을 예로 든 부분,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실태같은 것들이 특히 그랬다.

 

외모에 관심 많은 젊은 환자에게는 또 다른 배려가 필요하다. 진료가 다소 지체되더라도 얼굴 외상은 성형외과 전문의를 불러줘야 한다.'용문신 조폭'들의 상처는 용 모습 그대로 맞춰 꿰매줘야 뒤탈이 없다... 응급실은 사회 구성원의 몸과 세상의 변화가 맨 처음 감지되는 곳이다. 응급실의 창을 보면, 질병은 단순히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복지, 보건 체계의 문제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p. 156

 

3. 사회의 트렌드를 읽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는 한번쯤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김철수외과의원’처럼 과거에는 의사들의 이름이 사용되던 병원 간판이, 왜 지금은 ‘린외과의원’, ‘토마토성형외과’와 같은 간판들로 변화하게 되었는지. 어째서 ‘MRI'를 찍는 환자수가 이렇게 많은건지.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응급의료실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하는지. 우리는 쉽고 재미있는 사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심지어는 정확한 대상에게 쏟아내는) 몇 가지 충고들과 제언을 통해 우리는 의료계에서 일어나는 현대사회의 씁쓸한 단면과 함께 사회의학에 대한 미래상을 제시하게 된다. 사례가 워낙 방대하고 깊이가 있어 관심있는 분야별로 다양한 생활의학비법을 만날 수 있으니,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주어지는 행운일게다.

 

 

챕터마다 예쁘게 삽입된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책의 마지막쯤 되면 이 챕터에는 어떤 그림이 삽입되어 있을까, 를 유추해보는 때가 있을거다. 훗. 그게 어디가 될지는 이 책의 다음 독자가 될 이에게 맡기기로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작가의 눈에서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깊이있는 사회의학적 분석. 개인의 차원에서부터 사회정책적 차원까지 사고의 범위를 넘나드는 재미를 보게 되는건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맛보는 특권일것이다.

 

내망현(內望顯): (비록 이 책 안에는 이 한자어에 대한 풀이는 없지만) 안과 바깥을 멀리 들여다보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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