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설의 기술 ㅣ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표지가, '정말로' 예쁜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 개정판.
들고 다니는 시간에 기분이 좋을만큼 예쁜 책.
소설의 기술에 대한 에세이, 대담을 묶어 만든 책인데 밀란쿤데라 소설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강의듣는 기분으로 읽었다.
소설을 쓰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느라, 다른 어떤 이론적 상황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다시 말하면, 소설을 '쓸' 때가 아니라 (적어도 나에게는) 작품을 구성할 때, 이 모든 것들이 작품을 쓰기 전에 뼈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소설이 무엇인가'와 같은 이야기를 해도 좋은 그런 시간이다.
소설의 정신은 복잡함의 정신이다. 모든 소설은 독자들에게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라고 말한다. 33.
이 문장에 감명을 받아, 나는 방정맞게 별표를 쳐두었다.
자아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 그렇지만 절대로 답을 알 수 없는 과정. 나는 그것이 소설의 본질이자 삶을 통찰하는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이 사유하고 넘어가지 않는 부분. 철학자들이 이론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부분. 소설가는 유희와 이야기를 섞어 그것을 맹렬하게 비난하거나 동감시키거나 무심한듯 던져놓는다. 그것이 소설이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사람들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비합리적인 체계가 이성적인 생각보다 얼마나 더 우리 태도를 좌우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어항 속 물고기에 대한 애착으로 내 신경을 건드리고, 어제 나에게 끔찍한 불행을 가져다준 사람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불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95.
요새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불신과 배신에 대한 경험을 소설은 유희스럽게 녹여넣는다. 그 '키치'가 꾸며진 것이라 하더라도. -비록 이것이 순수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없더라고 하더라도 김영하적 발상에서의 키치는 한국 문학사에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고 여긴다-
-우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즉 소설의 몸으로 들어오면 성찰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소설 바깥에서 사람들은 확인의 영역에 있죠.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말에 확신합니다. 경찰이건 철학자건 수위건 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놀이와 가설의 영역이거든요. 그러니까 소설적 성찰이란 본질적으로 의문적이고 가설적인 겁니다. 116.
확인하지 않는 상태에서 (왜냐하면 확인할 필요가 없으므로) 소설은 자유를 얻는다.
사람들의 생각이란, 얼마나 복잡하고 이기적이고 감상적일 수 있는가. 그 사람들이 얽혀있는 세상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만큼이나 소설은 복잡하다.
현실에 대한 환상을 통해 환기되어서 우리는 전혀 그럴듯하지 않기는 하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138.
쿤데라는 스물다섯까지 문학보다 음악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많은 음악가들과 그 정서가 자신의 글에 영향을 주었다고. 무엇이든 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소설가의 일생이 그의 글에 녹아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쿤데라가 '작가'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소설가'라는 단어를 고집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는 늘 자신의 작품 뒤로 숨어있는 작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악장의 길이가 거의 다 같다면 전체적인 통일성은 깨져 버릴 거예요. 135.
이 책 역시 통일성이 깨지지 않는 (모든 장의 길이가 다른)데, 6부에는 쿤데라 소설에서 사용된 단어를 낱말로 풀어주고 있다. 그 중 몇가지 고찰이 매우 독특한데, 옮기면 다음과 같다.
죽음 노학자는 시끌벅적한젊은이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 강당에서 자유의 특권을 지닌 이는 자신뿐이며 그것은자신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사람이 자기 무리의 의견을, 대중과 미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이 들었을 때뿐이다. 나이 든 사람은 이제 가까이 다가온 죽음과 더불어 혼자이며, 죽음에는 눈도 귀도 없으며 그러니 죽음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 삶은 다른 곳에 중.
획일성 오늘날 획일성을 지니지 않은 인간이란 이미 그 사실만으로도 이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주게 된다. (-하이데거,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어떤 현상이 일반화되고 일상화되어 도처에 있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을 식별할 수 없게 된다. 획일적인 삶의 행복감에 도취된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걸친 제복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 211.
소설을 쓰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역시 '사유'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단어에 대해, 인물과 공간과 시간과 사건에 대해 고찰하는 것. 그러한 사유가 녹아든 글이 바로 소설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뿐 아니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소설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바로 이 책, (다시한번 말하지만 표지가 아주 예쁜) '소설의 기술 (밀란쿤데라)'이다.
아래는 소설 기법에 관련된 인용구
저는 주제와 모티브를 구분합니다. 모티프라는 것은 주제나 이야기의 한 요소로서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항상 다른 맥락 속에서 여러차례 반복되죠. 무거움이나 키치같은 주제를 가로질러 가기도 합니다. 123.
-소설을 구성하는 것도 여러 다른 정서에 공간을 배열하는 것이라는 것, 제 생각에 이것이야 말로 소설가의 가장 섬세한 기술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