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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온갖 혈투와 핏물이 낭자한 편혜영의 소설이 돌아왔다.
사육장 쪽으로는 사육장 '쪽으로'만 가고 있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란하고 즐기는 듯한 묘사로, 냉철하다못해 냉담한 시선으로 포착한 글이다.
다른 글들도 할말이 많겠지만, 우선 '사육장쪽으로'의 '사육장 <쪽으로>'가 이 책을 대변하고 있다니,
이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이 작품이면 이 책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다)
* 사육장과 집단화된 공동체사이의 비릿한 유대감
소설 속 '사육장'은 신락로에 난 마을의 옆에 어딘가 위치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부러 내기 위해 소설은 사육장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나는 개짖는 소리는 참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주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개의 존재란 '가족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게 없는'정도로만 여겨진다. 개들은 비좁은 철창안에서 같은 먹이를 먹고 비슷한 시간에 잠들었다가 깨어나고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팔리고 종내에는 처참하게 그슬려 죽을 존재로 (45) 만 그려지는 것이다. 사육장 속 사나운 개들과 신작로에 집단화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비릿한 유대감은 여기서 흘러나온다. 이미 작품 속에서 작가는 마을 사람들의 집을 형용하면서 '조립식 자재를 사용하여 거대한 레고블록을 쌓듯 모서리를 맞춰 나사를 조이고 자재를 끼워넣는' 일률화된 모습을 그려넣었다. (44) 혈투를 벌이며 싸우다가 도살되는지도 모르는, 엄청나게 사나운 사육장 개들을 묘사하던 작가는 공교롭게도 신작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나 일률적이고 천진난만하게 그려넣으며 비교한다. 신작로 마을의 사람들은 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비슷하게 살아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각도와 횟수로 손을 흔드는 일률화된 사람들이다. 사나운 개들은 그 안에서 혈투를 벌이다가 사육장을 빠져나와 그야말로 미친듯이 주인공의 아이를 물어뜯는다. 그런 면에서 일률화된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도 사육장 안의 개들이요, 어디있는지 알 수 없는 사육장은 공상화되었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유같은 것이다.
* 주변인으로서의 주인공
주인공이 태어난 곳이나 성장기를 지낸 곳, 결혼하여 살림을 낸 곳은 모두 도심 외곽의 변두리이다. 그런 주인공이 변두리에 집을 지은 것은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혹은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 그러나 단독주택마저도 도시에서 이사온 사람들이 꾸며낸 가공된 꿈의 표면일뿐이다. 진정한 도시인의 꿈으로서 단독주택을 사들인 주인공조차도 그것이 자신의 꿈이었는지 타인으로부터 각인된 꿈인지 잊어버렸을 정도다. 도시에 직장이 있는, 주변인으로서의 주인공은 파산날 지경에 이른 집안사정때문에 어느날 제 시간에 출근하지 못하고 지각을 했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천개의 퍼즐 중 한 조각이 빠졌다고 하여 누구든 그것을 쉽게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무단 지각을 해버린 주인공은 퍼즐처럼 박혀 도시의 생활을 하는 하루동안 집안에 있던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바쁘다'는 행위때문에 집안일따위는 자연스럽게 잊혀진다. 도시가 뿜어내는 아름다운 불빛의 포근함을 느끼며 집이 있는 신작로로 돌아서는 길에, 급기야 그는 도시를 떠난 것을 '후회한다'.
* 개와의 혈투, 아이의 죽음
어느 날 휴일, 지켜보는게 관심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식(54)이던 그에게 지켜볼수만은 없는 일이 생긴다. 사육장의 개들이 신작로 마을에 나타난 것이다. 부스럼 인 살갗에 뭉텅뭉텅 털이 빠져나간 사육장의 개가 주인공의 아이를 포위한다. 이빨을 아이의 몸에 박은 개들은 이번엔 아이의 가슴과 팔뚝의 살점을 뜯어버린다. 아이의 몰골을 본 부부는 급히 병원을 찾아나선다. 아이가 개들에게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던' 이웃들은 다급하지만 무심하게 사육장쪽으로 가면 병원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만 뱉어낸다. 그러나 한번도 사육장쪽으로 가본적이 없던 주인공, 사육장이 있다는 언덕을 넘지만 똑같은 모습의 마을만 발견할 뿐이다. 자신이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주인공, 분신같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차라리 개들이 짖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59)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이 찾는 것이 사육장인지, 아이를 치료할 병원인지, 아니면 아이를 물어뜯은 개인지 헛갈려한다. (59) 마지막 보루로, 그는 자신의 직장이 있는 익숙한 도시를 향해 차를 내몬다. 아이가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소시민인 그는 쉽게 속도를 내어 병원이 있는 도시를 찾지 못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앞서가는 트럭의 꽁무늬를 따라가는 것 뿐이다. 한편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가로등처럼 그를 인도한다. (61)
*사육장- 넘을 수 없는 공간에 갇힌 사람들
소설은 무섭도록 규격화된 도시인의 삶을 침착하게 그려낸다. 일상적인 소시민인 주인공의 삶을 통해 개인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보편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리얼리티는 상징화된다. 도시에서의 포근함이 불안으로 형상화되는 순간 작가는 사육장 너머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공포스러운 동시에 유일한 문제해결의 대상을 소설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그러나 소시민인 주인공의 눈에는 그 모든 불안해소의 요소들이 공포와 두려움을 낳는 신호체계로서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갈등요소들 덕분에 주인공은 극대화된 불안 속에서도 '트럭의 뒤꽁무늬를 쫓는'소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부각시키며 다시 편안해질 수 있는 도시로 회귀하려는 근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안개에 휩싸인 도시의 무거운 적막앞에 다시 좌절하고 만다. '사육장 쪽으로' 갈 수도, '도시를 찾아 나서는 여정'도 불안하기만 한 사람들. 불안의 근원을 찾고 진단하고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없는 사람들, 불안을 피해가며 하루를 사는 현대인들. 그 면면이 소설 속에 너무도 적나라하게 꼬집힌다.
불안한 소시민들의 삶,
작가 편혜영이 가지고 있는 주특기는
그것들을 적절히 오무린 듯 글 속에 냉담한 시선으로 처리하는 압축된 경멸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읽는 단편마다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