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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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구성된 짜임에 놀라워 한번,

전혀 무관심한듯 버려진 제목 덕분에 다시 한번,

그렇게 두 번 이 소설을 지나보았다.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인생을 두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p.384

 

소설은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 하나에 수만가지 곁가지가 붙어, 누군가의 입에서 누군가의 스토리(또다른 S의 관념으로서 스토리)가 전해지는 액자의 액자, 또 다시 액자가 순서없이 얽히는 험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치밀하게 구조화된 이 이야기들이 얽힌 장면들은 흡사, 이야기와 이야기, 또 그 이야기가 만나 혼돈한 지금 이 시간을 혼재해 드러내는 교묘한 작전을 눈치없이 들이민다.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두 번의 인생이 있으니까. 그 두 가지 인생이란 소설에서 꼬집듯, 처음에는 실제했던 인생, 두번째는 회고되는 인생인 것이다.

 

 

내가 모두 기록하리라는 생각에 작심하고 그날 밤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리라. 물론 나는 그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이야기들 덕분에 강시우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p. 387

 

작가는 이 두가지 인생을 빌미 삼아 강시우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가끔 독자들이 느끼는 삶에의 고단함과 복잡함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단 말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숱한 인생의 고비를 겪고 지금의 강시우로 살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 '작심하고' 그날 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강시우의 이야기도, 강시우의 과거도, 너의 모습도, 나의 모습도, 아니다. 그저 이야기로 남아버린 잔상이,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도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 -p.254. 상희

 

어쩌면 결국 자살한 상희는, 강시우의 전 모습이던 이길용을 외롭지 않도록 해 준 은인이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해도 아깝지 않을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이다. 그런 이유로 상희가 길용에게 했던 그 이야기-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라고 했던-가 길용에게 한계로 다가왔을 즈음, 길용은 다시 강시우로 태어난다. 그리고 강시우가 우연히 고문 집행자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상희가 자살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상희는 그가 꿈꾸던 세상의 전부로 상징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1901년 마르코니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넘어 s라는 문자를 무선으로 보내는데 성공하자,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언어에 날개를 달아 내보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마르코니는 변압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짧게 세 번 '톡톡톡' 두들기면 되는 모스부호 's'로 실험했다. 다시말하자면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수 많은 이야기(story), 또한 그러하므로 이 세상에 그만큼 많은 나(self)가 존재한다는 애절한 신호(signal)-p.82

 

결국, 외로운 이들의 회고담을 이어줄 수 있던 것이 그들 사이의 신호signal로 인한 소통이었다면, 과연 그들은 스스로self를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이야기story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을까. 작가가 잡아 낸 섬등같은 비유가, 독자로 하여금 여기 이곳에 나로 존재하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회고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회고담을 통해서가 아닌 진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가면을 쓴 듯 자기의 회고담에 취해 있는 건 아닐까. 

 

외로운 사람들의 회고담. 

김연수는 쉽지 않게 80년대를 빌어, 지금의 우리를 여기저기 심어두었다. 

숨바꼭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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