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앨리스 세트 - 전2권 블랙 라벨 클럽 13
이지은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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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남자 주인공이 제 정신이 아닌 소설. 처음에는 상냥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끝도 없는 집착에 짙투에, 말 그대로 미친놈 마냥 여주만 바라보는 그런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주만 제정신이 아닌 줄 안다면 오산이다. 그거에 한 술 더 뜨는 것이 바로 여주니까. 걍... 핀트가 어긋나 보이는 둘의 사랑 이야기? 진짜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걸 보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가 싶을 정도로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
그나마 서브 주인공인 두 캐릭터들은 정상적이라서 다행.

라인은 완전 애정결핍에 질투, 자기기 좋아하는 것 외에는 신경도 안 쓰는 정말 대단한 마음가짐의 소유자.
시화는 주체성 결여에다가 좋게 말해서 이타성이라고 쳐도 너무 심하게 타인을 존중해대고, 이건 뭐 선택장애인가? 싶을 정도.

뒤표지에 나와있는 줄거리만 봐서는 마치 여주가 어딘가 모자라고 불쌍한 남주를 치유해주는 소설인 것 같지만 그냥 모자란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전부가 되어가는 내용이다.
솔직히 미친놈이네 뭐네 말은 해도 두 주인공 다 내 마음에 쏙 들었고(거의 후반부쯤에 두 민폐 주인공들 때문에 엄청 답답하고 열 받았던 것만 빼면) 내용 자체도 완전 내 취향이었다.

분위기 자체가 우아하고 고풍스러워서 마치19세기 로맨스를 읽는 기분이었고 라인이 시화한테 해대는 게(미치지 않았을 때) 어찌나 달달한 지 온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행복했다. 게다가 서브 커플도 정말 애정이 갔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의 환상을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소설이라는 거다. 라인이 남한테는 모질게 굴어도 시화에게만은 세상 누구보다 상냥한데다가, 끝도 없이 매달리고 구애하고, 소위 몇몇 여자들의 머릿속 이상형인,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 의 전형적인 남자. 라인은 다른 사람에게도 상냥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가면에 지나지 않으니까 뭐.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책을 느리게 읽는 나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단번에 숙숙 읽었다. 시간 죽이기 용으로도 손색이 없고 딱히 심각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었고 온 몸이 쭈그러들 정도로 달달한 소설을 원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다만, 표현력도 좋고 심리 묘사도, 분위기도 괜찮은 작가가 너무 과도하게 묘사를 한 나머지 조금 이상한 문장들이 종종 보인다. 그것만 아니라면 괜찮다.

마지막으로, 진짜 정말, 정말 재미있다. 선물처럼 쥐어 준 외전까지 마음에 쏙 든 소설이었다.

"모든 걸 다 가지고 싶은 거예요."
라인하르트는 시화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의 입술은 귀에 닿을 듯 말 듯 했고,
촉촉한 입김이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를
더 모호하게 했다.
"당신의 눈도, 코도, 입도, 마음도,
온전히 내 것이기를."
그렇게 기도하듯 속삭이며 라인하르트가
시화의 눈과, 코와, 입술에 입 맞추고,
그녀와 같아진 눈높이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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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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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몇 장 읽어보다가 포기한 책이다. 그 때는 재미없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나중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왜 이 책을 조금 더 빨리 만나지 못했는지... 아쉽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어서 우리나라가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시 독일인에게 고통과 핍박을 당했을 유태인과 여러 민족들을 떠올리면서 분노와 증오에 치를 떨었다.
이 책에는 고통 받는 유태인들만 나오지 않는다. 이들과 똑같이 전쟁 때문에 고통을 받는, 독일의 평범한 시민들도 나온다. 자신들의 지도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기에 무지한 우물 안 개구리들.

작가는 두 개의 사건 때문에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나는 뮌헨의 폭발 당시 붉은색으로 가득했다는 것, 또 하나는 한 소년이 유태인에게 빵을 주었다가 채찍을 맞은 사건. 그래서 이 두개의 사건이 조화를 이루며 책의 중심을 자처하게 되었다.

책 전체를 이루는 중심배경은 뮌헨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죽음의 신이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리젤이다.
죽음의 신은 리젤을 따라 다니며 때로는 리젤이 후에 남기는 책도둑이라는 책을 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잿빛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련하고 그립고 가슴 아프게.

어쩔 수 없이 정해진 미래가 뮌헨에 닥치게 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책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이미 나의 친구가 되어버린 그 사람들. 그 기억들 탓에 나는 책도둑의 표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릴 것 같다.

치열하게, 고통스럽게, 그럼에도 평범하게, 그 시대를 살아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한다.

소녀는 손등으로 첫번째 책꽂이를 쓰다듬으며,
손톱이 각 책의 척추를 가로질러 미끄러지며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치 악기 소리 같았다.
달려가는 발들이 내는 음들 같기도 했다.
리젤은 두 손을 다 사용했다.
경주하듯이 빨리 움직였다.
하나의 책꽂이가 다른 책꽂이와 경주했다.
리젤은 웃음을 터뜨렸다.
리젤의 목소리가 목구멍 높은 곳에서
밖으로 뻗어나갔다.
마침내 리젤이 발을 멈추고 방 한가운데 서서
책꽂이에서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책꽂이로 눈길을 돌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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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아이 창비청소년문학 50
공선옥 외 지음, 박숙경 엮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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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구병모 작가님 책을 한 번에 구입하면서 같이 산 책. 개인적으로 여러 작가 단편 소설을 같이 묶어 놓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책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전부 재미있으면 상관없는데 종종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소설들이 있더라. 다분히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얼마 전에 읽은 SF 단편집에서도 첫 번째 이야기가 너무 취향에 안 맞아서 지루한 걸 참고 읽었던 적이 있어서 걱정이었다. 그 걱정이 기우로 그칠 만큼 엄청 재미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책은 구병모 작가님 때문에 산 것였으나 오히려 다른 작가님들 소설이 더 눈에 띄었다. 구병모 작가님은 역시, 청소년 소설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다.

많은 작가들 중에서 특히 김려령 작가님이 쓰신 소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용도, 마지막에 언뜻 내비추는 반전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소설도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 느꼈다. 책에 나온 소설들이 제각각 다른 장르, 다른 분위기들을 풍기고 있어서 맛에 따라 색에 따라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청소년 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알아보기 위해 읽어도 좋을 책 같다. 말 그대로 장르, 배경, 분위기, 필체 등이 제각각이니까.

와작.
피망 씹는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와작.
마치 하늘이 갈라지듯 성스럽고
숭고하기까지 한 소리였다.
와작.
피망을 씹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지만,
그 소리로 인해 모두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피망의 맛과 식감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와작.
와작.
와작 와작 와작.
그때 식당에 나타난 소장님이
내 앞에 놓인 피망을 보고는
그만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작!
꼴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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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남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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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어딘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오르게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중간 중간 그런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이방인과 외로운 남자, 둘 다 부조리를 표명하고 있어서일까. 둘은 닮은 듯 안 닮은 듯 닮았다.

인간은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가. 이 세상은 옷갖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또한 그것을 감내하면서도 기어코 살아간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우리들은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심지어, 중간에 한 번쯤은 나왔는데 잊어버린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주인공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한다. 끝없는 무한에 대해서, 무의식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그는 생각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가고 살아 숨쉬는 인간들에게 회의감을 느끼며 소음으로 가득한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외로워지기를 원했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인간이니까.

지금까지 여러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한 적은 많았어도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한 적은 없었다. 그 책들에 나온 주인공은 나를 닮지 않았고 나 또한 그들과 같아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정을 하고 함께 웃고 슬퍼하면서도 마치 유리판을 사이에 끼운 것처럼 브라우저 너머로 그들을 관찰하듯 그렇게 지켜보기만 했다.
어떨 때는 그들과 내가 같지 않다는 것에 안도를 느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언젠가 찾아 올 죽음을 두려워한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이 작가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그 무한이라는 것을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궁금해졌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극복하지 못했을까. 한편, 나도 그럴까 두렵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시는 군요.
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거고요.
선생님은 인간들에게 겁을 먹고 있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그들에게 겁을 주고 있어요.
그들이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거지요.
선생님은 신경쇠약에 걸릴 거예요.
하지만 대단치 않죠. 나을 수 있어요.
자, 여기 두 잔째 코냑이 있어요.
의사를 만나러 가세요."
"의사들도 병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모두 죽으리란 걸 알고 있는데,
죽음을 생각하고 고민하면
의사들은 미쳤다고 말해요.
가둬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입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죠.
그들이 비정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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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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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이 두 번째로 접하는 보통의 책이다. 그마저도 ‘우리는 사랑일까’ 는 다 안 읽었지만. 아무래도 끝까지 안 읽은 모든 책들이 그러하듯 새로 눈에 밟힌 책을 읽느라 방치해 놓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때 첫문장에서부터 보통에게 사로잡혔다.
그, 철학적이면서 이지적인 문체.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그런 문체. 내가 사랑하고 또한 동경하는 문체로 보통은 말한다.

사촌 오빠의 집에 놀러갔다가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들어올린 것이 이 책이다. 나는 아는 사람의 집에서 익숙한 작가의, 익숙한 책을 발견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보통의 여행 책은 어떨까.
뭐, 이미 알랭 드 보통에서 예상한 거지만 사진보다 글이 많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펼치고 처음 떠오른 말은, 역시... 였다.

나는 원래 여행 책은 사진이 많은 걸 좋아한다. 그리고 ‘번지는...’ 시리즈처럼 감상적인 문체가 많은 것을 선호한다.

여행의 기술은 그런 나의 꽉 막힌 편견을 깨트리기 충분했다. 사진이 별로 없으니까 오히려 상상 속의 장면들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고 사진이라는 네모 박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여전히 틀에 박힌 편견에 따라 여행 에세이를 선택하겠지만 앞으로는 여행의 기술과 같은 책도 거리낌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여행의 기술을 읽는 즐거움은 보통 뿐 아니라 제각각 다른 시대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과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마치 그들에게 안내를 받듯 친근한 동행자를 만난 듯.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더 잘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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