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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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두 페이지 정도로 사람을 울리고 웃길 수도 있다는 걸, 이 소설을 읽고 알았다. 5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소설들이어서 잠깐 시간을 내서 읽기도 편하고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읽어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적다.
참 신기했던 것이 그 짧은 내용 안에서 모든 것이 다 벌어진다는 점. 감정을 소모하게 만든다기보다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들을 가지고 공감 섞인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점.
처음에는 이게 뭐야. 하면서 웃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속에 잔잔한 잔물결이 일게 만들었다.

내 책장들 중, 침대 맡에 있는 책장에는 재미있다기보다는 읽으면 행복해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책들이 꽂혀 있다(물론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책도 다 읽은 뒤, 아니 읽는 내내 이미 그 책장의 한 쪽에 고이 꽂혀 있었다.

가끔씩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일 년에 한 두 번씩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오는 날, 비가 내려 마음속이 침침할 때, 무서움에 잠 못 드는 날. 그런 날 읽으면 참 위로가 되는 책.
친구처럼 친근하고 위로와 같은 상냥함을 품은 책을 만나는 것은 언제든 행복하다.

선생은 어머님께 얼마만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여기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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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6-05-2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끌리는 리뷰네요.
인용문장도 와닿습니다
 
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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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깨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꿈을 꾼다. 그럴 때면 꿈에서 깨어난 현실은 어찌나 비정하고도 날카로운지. 계속해서 잠들어 있고 싶지만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는 현실이 자못 원망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그리고 그 달콤함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면 그제야 차가운 현실이 눈앞에 들이닥친다.

누구나 경험해본 이런 것들을, 작가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소년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자가 되어야 했던 소년.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하며 행복에 젖어 있던 소년. 소년이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이 결코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자각을 하는 순간, 결국 꿈에서 깨어나고 만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한낱 실오라기보다도 작은 희망을 갖고 추리를 시작한다.
끝에는 모두의 앞에 달콤함이 아니라 차가움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채.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난 뒤에는, 단지 씁쓸함만이 입 안에 맴돌았다. 책의 제목처럼, 어떤 달콤함이나 차가움이 아닌 그저 씁쓸함. 안타까움일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는 그렇게 발버둥을 치는 걸까. 현실은 우리에게 자비를 주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어쩌면 그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서일까.

베개에 등을 대고 기대어 있던 나는
신혜의 머리를 감싸 안고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불 밑은 그녀의 몸속처럼 부드럽고 안온했다.
나는 껍질을 벗긴 사과 알같이
달고 차가운 입술에 오래 입 맞췄다.
너무 달아서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과즙처럼 다디단 침을 빨아 먹다가,
어두운 이불 속에서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더듬었다.
"우리 같이, 따뜻한 곳으로 달아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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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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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해리 홀레 시리즈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고 참 읽고 싶었지만 이 출판사가 해리 홀레 시리즈를 순서대로 내주지 않는다는 악명 또한 들어왔기에 다소 망설여졌다.

딱 남들만큼 존재하는 내 강박증은, 책이든 만화든 영화든 스토리가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시리즈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뇌에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가락만 빨다가 해리 홀레의 탄생과도 같은 소설인 박쥐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른 구매했다.

잔뜩 기대감에 젖어 두근두근.

일단은, 주인공인 해리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서 반은 먹고 들어갔다. 애초에 주인공 때문에 소설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인공의 매력도에 집착을 하는지라, 캐릭터 50, 스토리 30, 나머지 20 정도로 일찌감치 측정을 해버린다. 스토리가 좀 별로라도 읽다가 소각장에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엉망이 아니라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해버린다.

해리 홀레 다른 시리즈는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박쥐는, 등장인물도 스토리도 가히 최고였다.

내가 느끼기에는 다소 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지만 원래 외국 소설이 다 그런 걸 뭐.

​해리와 함께 매의 눈으로 범인을 찾아다니다가, 혹시…… 혹시…… 저 사람이, 라고 의심을 했는데 나중에 정말로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고 난 뒤에, 어쩐지 기쁨 보다 씁쓸함이 더 컸다.

아무래도 해리보다는 아니지만 내심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라서 그럴 거다.

또 해리만큼이나 좋아했던 캐릭터의 죽음이 날 충격과 경악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시리즈 내내 나와 주기를 바랐는데. 그 사람이 죽고 난 뒤 해리가 느낀 상실감이 내가 느낀 상실감과 비교해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거다. 그 부분만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으니까.

뒷부분에라도 사실은 거짓말이었지롱! 살아있었어! 라고 해주길 원했는데 역시 그건 너무 큰 바람이었나보다.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헤리는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 조국으로 돌아가게 됐고 그가 원하던 원치 않던 딱 그 만큼의 성장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해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완벽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한심해 하면서도 충고를 해주고 싶어 하면서도, 함께 공감하고 웃고 사랑스러워 하는 것이다.

다음 편인 바퀴가 6월 달에 나오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해리와는 잠정적 이별을 해야겠지만 영원한 이별은 아닐 테니.

얼른 바퀴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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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언덕의 안개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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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재미있어서 계속 읽기는 했지만 주인공이 내가 안 좋아하는 부류의 캐릭터라서 좀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소설과 병행하며 읽느라 좀 긴 시간동안 내 주변에 자리했다. 결코 좋아해서 옆에 오래 놔둔 것이 아니란 점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연작 추리소설은 온다 리쿠 작가님의 「코끼리와 귀울음」이 후 오랜만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단편으로 이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주인공이 연이어 나오는 스타일의 소설은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 주인공이 설령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실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 속에 나오는 카페 죄와 벌의 여사장이 좋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

미모의 중년 여성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의 향연. 좋지 않은가.

게다가 마지막 편에서는 이 이야기는 이걸로 완전히 끝! 이라는 듯 엔딩을 처리해서 다소 아쉬웠다. 그 결말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로맨틱한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느껴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주인공의 딸이었을지도 모를 어떤 여인의 이야기였다. 결국 그녀가 진짜 그의 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딸이지 않을까. 문득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가 떠올랐다.

전체적으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 느낌을 받는 소설들과 주인공이 좋아하기 때문에 자꾸 등장하는 와인 `도망간 여자` 때문에 어둡게 내리깔린 구름을 벗 삼아 진한 레드 와인을 마시고 싶게 만드는 소설.

하드보일드한 소설이라서 읽는 사람 또한 하드보일드 하게 만든다면서 머쓱하게 웃어버리면 그 뿐이다.

2007년 8월에 살라메 살해 현장이었던
그 길을 걸어가다가
28년 전 내가 일했던 펍 `블랙로즈` 앞에
앉아 있을 때
느닷없이 몰려왔던 안개,
암살 코스 답사의 마지막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그곳의 안개,
악마의 입김이 만들어낸,
사람과 차를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런던의 치명적인 안개를 생각하자 나는 그만
형체도 없이 안개 속에 녹아버리는 것 같았고,
그래서 밤늦게까지 달맞이언덕의
또 다른 안개 속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칠리아 산 와인인 `도망간 여자`만
마셔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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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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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이 책을 본 순간 제목에서부터 어떤 강렬한 끌림을 받았다.

게다가 스토리까지 취향 저격인데 안 살 수가 없지 않은가. 표지의 앨리스는 말할 필요도 없이 예쁘고.

사실, 처음에는 다소 불쾌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정말로 좋아하는 책에 관해서는 자비가 없어지는 법이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앨리스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것은 용서를 해줄 수 있지만 앨리스의 이상함까지 가져온 것을 알았을 때는 어쩐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어딘가 다소 오버스러워 보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더욱 심란한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점점 진행될수록, 「앨리스 죽이기」만의 이상함에 매료되어 점점 그런 기분은 잊혔다.

루이스 캐럴에게 미안할 정도로. 하지만 이렇게 멋있는 이야기라면 루이스 캐럴도 자신을 잊은 것을 눈감아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이상한 나라에서 험프티 덤프티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사람 목 자르기 좋아하는 여왕은 앨리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앨리스는 도망친다. 앨리스는 친구인 도마뱀 빌과 함께 진범을 찾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현실 세계의 나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서로의 공간을 오가며 단서를 찾아 범인을 좇는 이야기인데 단서를 찾을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앨리스와 빌은 단서를 추적해 범인을 찾는 데 성공하고 누구도 알지 못했던 충격적 진실에 다다른다.

이 충격적 진실이라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로일지 몰라도 나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계와 꿈이라 여겼던 세계가 사실은 정반대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소름이라고 할까.

소소한 반전들과 마지막의 커다란 반전,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딱히 웃긴 결말이 아니었음에도. 사실은 이 모든 게 꿈이었다, 라는 결말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꿈이라는 결말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화나게 만든 다면 이 결말은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정통 추리 소설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는 못 하겠지만 아기자기하고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 속에 추리 소설 다운 스릴도 충분히 많으니까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고 권하고 싶다.

초반에는 살짝 지루할 수는 있지만 중후반대가 정말로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번에 읽어 내려갔다.

"스나크는,"
전기 충격과도 같은 오한이 아리의 온몸을 엄습한다.
입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모리는 아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안 된다.
여기서 대답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아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이제 평온한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예감이 물밀 듯 전해져왔다.
이모리는 확신에 찬 눈으로 아리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일말의 불안도 없었다.
그는 아리가 올바른 답을 들려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이 한 마디로 세계가 무너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무릇 세계는 처음부터 이랬는 걸.
그렇지?
아리는 각오를 굳혔다.
"부정이었다."
세계가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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