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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최근 북유럽 스릴러에 대한 관심도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그 열풍의 시작은 아무래도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데, 그 시리즈가 출간된 게 2006년이었으니 벌써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최근같이 순식간에 바뀌는 트렌드는 물론이거니와 인기있는 책의 장르,라는 것도 5년이면 충분히 바뀌고도 남은 시간이리라. 나야 몇 년 만에 스티그 라르손의 작품을 다시 펼쳐 이제서야 천천히 읽고 있지만, 원산지(?)였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어느정도 스릴러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걸 알고 있으니, 그 돌풍의 중심에 있는 작가라는 소문이 자자하니 이렇게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는 것이다.
'제2의 스티그 라르손', '북유럽의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할런 코벤' 등의 화려한 별칭을 달고 다니는 요 네스뵈,라는 작가다.
현재 북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릴러 작가이자 한 록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기도 하다고. 뭐 특이하다는데 그닥 특이하진 않다...
뭐 어쨌든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요 네스뵈의 작품은 <헤드헌터>다. 인력 스카우터이자 사람 사냥꾼,을 뜻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스릴러인데, 사람 사냥꾼 정도는 사뿐하게 등장하지 않겠나 싶다.
냉혹한 체스 플레이어라면 말이 있었던 위치를 잊지 않고, 두려움 따위는 잠시 접어 두고, 본래 계획을 고수할 테니까.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전략을 재구성하여 게임을 계속한 다음, 승리의 기쁨을 누릴 테니까.
하지만 의기양양한 기색은 없이 우아하게 그 자리를 떠날 테니까.
-p.132~133
로게르 브론은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로, 그가 추천한 인재는 단 한 번도 거부당한적이 없을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누구나 뒤돌아보게 하는 아내가 있는데, 아내에게 화랑을 하나 선뜻 선물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비가 만만치 않은 집을 떡하니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헤드헌터라는 직업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화려한 생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주 고객이자 면접대상인 상류층 인사(?)에게서 집안에 있는 그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뒤 그것을 훔쳐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헤드헌터로서 그의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GPS 개발 회사 패스파인더의 CEO를 찾는 중, 그에 완벽히 들어맞는 후보가 루벤스의 사라진 그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훔치기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배신, 함께 그림을 훔치던 공범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며 다가오는 그림자. 그림 사냥꾼과 사람 사냥꾼, 그들 사이의 피말리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역자는 이 소설을 '한 편의 롤러코스터 같은 소설'이라 칭한다. 그 말이 딱 맞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를 생각해본다.
처음부터 빨리 달릴 순 없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끝까지 달리기 위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천천히, 레일의 정점까지 올라간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언제나 알고는 있지만, 롤러코스터를 탈 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바로 이 때다. 순식간에 높은 곳을 치달았다 떨어지는 것보다, 천천히 고도가 높아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속도가 한 번 붙으면, 높아서 무섭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빠른 질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에 다다른 순간, 다시 한 번 침을 삼킨다. 지금부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안전장치에만 의존한 채 그저 롤러코스터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야 함을 알고 있으니까. 잘못하다간 눈 뜰 새도 없이 무섭도록 질주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다보면, 어느샌가 우리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드디어 끝났다,라는 안도감 반, 그리고 벌써 끝인가,싶은 아쉬움 반. 그리고 타고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든, 다시 땅을 밟고 우리는 걷기 시작한다.
요 네스뵈의 <헤드헌터>를 읽는 동안의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롤러코스터가 달리기 전, 천천히 꼭대기를 올라가는 것 같은 초반 도입부는,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 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긴장감. 그러나 롤러코스터에 익숙한 이에게는,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때 까지의 복선과 암시가 다 모이는 순간, 롤러코스터처럼 소설은 달리기 시작한다. 꼭대기에서부터 떨어지는 엄청난 스피드와 폭발력.
쉴새없이 쫓기고 있는 로게르는, 볼 꼴 못 볼 꼴 다 보이며 필사적으로 도망쳐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질주는 쉴 새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틈없이 최고속력을 유지하며 달리기만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질주에 함께 동참하듯 페이지가 쉴 새 없이 넘기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레일의 끝이자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드디어 끝났다,라는 해방감과,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을 동반한 채.
어쨌든, 처음 만나게 된 요 네스뵈가 들려준 이야기는, 꽤나 즐거웠다.
사실 이렇게 쉴 새 없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기 전개,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탁월해 보인다. 괜히 북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라는 게 아니라는거다.
그저 헤드헌터라는 직업을 둘러싼 기업 사이의 음모가 아니라 정말 머리 중앙을 노리는 사냥꾼을 데려와 자극적인 묘사가 자극적이라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마구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경찰이라는 정의와 범인이라는 악, 혹은 선량한 피해자와 악의적인 가해자라는 대립 구도 대신, 요 네스뵈는 악당 두 명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야말로 나쁜 놈 vs 더 나쁜 놈,이라는 것이다. 살인과 절도,라는 범죄의 악랄함을 어찌 감히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일단은 둘 다 잡히면 형량은 다르게 받을테니 편의상 그렇게 이야기해 보자.
아예 화자가 나쁜 놈이라면, 그래서 무고한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생명을 빼앗고 있다면, 차라리 욕을 하면서 보겠지만서도, 이 두 악당을 두고 어찌해야 하나. 필연적으로 독자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다.
과연 주인공 로게르는 자신보다 더 나쁜 녀석을 처리하고, 예전의 미술품 절도,라는 명목으로 삶을 살아갈까 혹은 호되게 당한 뒤 평화롭게 살아갈까. 아니면, 두 악당은 모두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방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일까. 그 끝이 궁금해지는 것도 은근한 묘미가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본 요 네스뵈와의 첫 만남은 나쁘지는, 아니 만족스러웠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의 국내 상륙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