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 - 제1부 격랑시대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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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이데올로기 - 반세기의 역사는 다시 회귀하는가?

박수를 치기 위해서는 오른손과 왼손이 모두 있어야 한다. 한쪽이 기형적으로 크거나 혹은 작거나 또는 없다면 우리는 영영 박수를 못 치고 만다. 그러나 기형의 손으로 박수를 칠 수 없음이 분명함에도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오른손으로만 박수를 치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항상 박자가 안 맞고 소리가 작게 난다. 우리는 이런 터무니없는 일들을 무려 반세기가 넘도록 강요받아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은 통일을 원하고 있다. 통일이란 오른손과 왼손이 만드는 박수처럼 남과 북이 하나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장대한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용공, 반공, 국가보안법, 간첩 등과 같은 수많은 용어들은 지난 우리의 삶의 단편들을 보여주는 구실을 한다. 수많은 이들이 이데올로기라는 허상에 의해 끊임없이 그들의 삶을 침탈 당하고 사회 안에서 소외되는 아픔을 겪어왔다. 소설 '한강'의 유일민처럼 능력이 있어도 삶을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늘 감시 받아야만 했던 삶의 모습들...마치 조지 오웰의 ' 1984 '의 빅브라더가 우리 사회에 현신한 모습이 반공이데올로기인 것 같다. 우리의 파쇼정권의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란 인간의 삶을 더 고양된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도구에서 벗어나 우리를 지배할 때 그것은 우리 가슴에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반공이데올로기는 인간을 자신의 삶에서 소외시키고, 인간을 사회 안에서 소외시킨다.

박하사탕의 영호가 고문을 할 때 나체를 들어낸 사내를 가혹하게 때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순수함을 잃어 가고 고문당하는 이의 인권을 짓밟듯이 우리는 국가가 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제약들에 의해 국가의 진정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우리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다.

작가는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준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 속에 묻혀 살아가는 것인가. 사회 안에는 여전히 보수, 우익으로 대표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이 잔존하고 있다. 물론 건전한 보수는 건전한 진보와 함께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반공을 강요하는 극우파적 성향의 잔존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역사를 회귀하게 만드는 극악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세상은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라고 불릴 만큼 급변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만이 여전히 50년 전의 극한 대립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역사는 점점 지쳐간다. 돌이킬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을 때 역사를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는 시도를 해보자.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는 너무 커져버린 오른손을 줄일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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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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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글픈 우리의 초상
창피하고, 서글펐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퍼뜩 떠오른 감정의 단편들이다. 우리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들어낸 것이 창피했고, 이 나라의 건강하지 못함이 서글펐다. 박노자는 한국인 보다 더 한국적으로 이 나라를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방인 이였기 때문에 더 한국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밝히기 꺼려 했었고,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듯이 스스로 들추어 보일 수 없었던 수많은 이 나라의 상처들을 박노자는 과감히 이방인의 시각으로 때로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뜻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심층을 세밀히 관찰해 보면 무엇인가 비정상이다. 그에게 들켜 버린 서글픈 우리의 초상들....

● 마비된 이성
우리는 지난 현대사를 군사정권에 의한 독재로 그 밑그림을 그려왔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그들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라는 값어치를 채득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그때의 열정을 상실했다. 오히려 군사정권을 진두 지휘했던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현실이다. 섬뜩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일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과 그에 편승한 박근혜 신드롬등 검증되지 않은 많은 사실들이, 비판받아야 할 많은 과거 독재의 문제점들이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난무하고 있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란 이름으로 경제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신드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행사한 폭력 앞에 무참하게 짓밟힌 수많은 젊은이와 우리들의 모습은 조국 근대화 논리에 다시 한번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한국인들의 무조건적이 추앙이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추앙은 우상숭배로 이어진다.

● 너와 나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나와 타자를 구분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것은 좋지만 타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더불어 살아야 할 세상에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 나라라면 타자들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 지금도 도저히 사람이 일할 수 없는 작업현장에서 사람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멸시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깜둥이라는 말들, 또 베트남의 수많은 라이 따이한이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는 슬픈 타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너와 나에 대한 구분이 명확한 사회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는 결코 나만이 살아 갈 수 없다. 나만이 있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늘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는 사회가 그리울 뿐이다.

우리가 행하는 타자에 대한 멸시는 같은 민족간에도 존재하는 아픈 현실이다. 우리는 러시아에 있는 동포 고려인이나, 중국동포에 대해 동포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씌어 놓았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외국인 보다 더 타자로 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우월주의와 멸시로 가득 찬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 폭력으로 가득한 사회
이 사회는 비록 군사정권의 마수에서는 벗어났지만 군사문화가 충만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징병제에 의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참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할 시기에 군대라는 곳에서 천금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국가적 인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또 군대는 수많은 남자들에게 내재적으로 폭력성을 심어 놓았다. 상명하복체계가 뚜렷한, 수직적 계열이 명확한 군대의 조직은 한국 남성에게 복종이라는 말을 각인 시켜 놓았다. 많은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의무 대체를 인정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군대에 가는 것을 거부하지만 우리 나라는 국가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사회에서는 군대에 안가는 것을 터부시하는 잘못된 인식이 지배적이다. 군대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폭력과 그리고 군대에서 파생된 수많은 군사문화는 건강해야 할 사회를 멍들게 하고 점점 폭력이 난무한 사회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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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의 교사론 -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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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고교 평준화, 0교시 수업, 매년 되풀이되는 수능과 입시 문제, 교사의 권위추락 등등...매번 교육 문제가 사회적 핫 이슈로 떠오르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물론 그 만큼 교육이라는 테마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까닭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작은 땅에서 우리가 믿을 거라곤 인적 자원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현실은 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마치 바퀴들이 공 회전하듯이 뚜렷한 해결책 없이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것에 있다.

현실에 대한 고찰 - 프레이리는 교육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비참한 교육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뒤로 한 채 무작정 해결책을 찾다보면 밑 기둥은 자꾸만 썩어가고 그 위에 자꾸만 지붕으로 덮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교육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 교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 프레이리의 교사론 ' 이라는 책이다.

책을 처음 읽어보며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교육관과 교사관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선뜻 받아드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자에게 인지시키는 과정이 아니었다. 교육은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텍스트에 대한 교조적인 이해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교육은 결국 텍스트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 과정을 통해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교육관이 단순한 지식의 암기와 읽기의 과정이었다면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교육은 학습자에게 세상을 읽고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조금 확대 해석 해보자면 우리 나라가 직면한 교육은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이라면 앞으로 개선해야 될 교육의 모습은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것처럼 종합적이고 다양화된 교육일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육관은 세계에 대한 기계론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 인간의식의 물질구조의 단순한 반영물 ' 일 뿐이다. 즉 피동적인 인식과정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참된 인식의 과정을 상실한 것으로서 현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방해할 뿐이다.

프레이리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프레이리는 교육이 역사의 진보를 가능케 한다고 본 것 같다. 교육은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3세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문해자들에 대한 교육은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교사들의 사회에 대한 저항은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교육에 의한 세계 진보의 가능성이 프레이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입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야 전교조라는 교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집단이 겨우 인정을 받았다. 교사들 스스로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의 교사상은 고귀하고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유교적 사상에 빠져 있어 보수화 되고, 교육을 보육과 양육으로 평가 절하하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게 하였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는 점점 더 보수화 되고 교육은 침체의 과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진보가 있기보다는 퇴행적인 구조로 편입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교사들이 스스로 변혁을 들고 나오고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교사들이 하는 교육이라면 프레이리가 제시한 사회의 진보와 가치의 고양이 가능한 세계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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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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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공간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지난 반세기는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기를 가졌고 그 기준에 따라 서로가 대립하는 독특한 시간을 경험했다. 물론 지금도 좌파와 우파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도 대선 주자를 뽑는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좌파적 색깔을 문제삼고 그 장인의 좌파적 성향을 연좌제적 시각으로 후보의 자질을 문제삼고, 남북이 대치된 상태와 보혁갈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좌우의 경계지음은 반세기란 시간을 넘어 계속되고 있다.

아직 공부가 미진하여 나의 정체성을 좌우 어느 쪽에 기울여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짧은 견해나마 좌파적 주장이 더 인간적인 면을 지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좌우의 경계를 자유와 평등으로 단정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좌우를 가르는 큰 틀은 자신을 우선하느냐 , 우리를 우선하느냐의 물음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개인적 구분에 따른다면 우리, 즉 평등의 가치를 따지는 좌파적 논리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인식으로는 좌파는 빨갱이고 빨갱이는 민족 분단의 근원을 제공한 대상이겠지만 그것은 반공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역사적 조작에 불과하고 좌파를 규정하는 이론적 측면에서는 이제는 그만한 고정된 관념을 벗어버릴 때가 지난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 제국 '이라는 책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좌파인 안토니오 네그리가 쓴 책이라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특히 책을 구입할 당시 9.11 테러의 여파 등으로 인해 미국의 일방주의적, 강자적 대외 정책이 강하게 질타를 받는 상황이었고, 더불어 미국을 비롯한 서구라파의 신자유주의 , 전 지구화=일명 세계화로 세상이 변해 가는 시점 이여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 책을 선택하는 동기를 밝히는 글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제국주의적 성향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주 논제가 아닐 까하는 내 생각을 잠깐 밝혔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단견은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무참하게 깨어져 나갔다. 이 책은 단순하게 제국주의라는 단순한 논리로 세상을 재단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제목인 ' 제국 '은 단순히 제국주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 세계는 제국주의라는 19세기적 가치로는 표현될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도 또는 다른 어떠한 나라도 제국주의의 특징으로 표상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나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이 책제목인 ' 제국 '이란 지금 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지배적 체제를 안토니오 네그리가 자신의 논리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낸 말이었지 결코 제국주의를 대신하는 표현은 아니었다.

아직 책을 다 읽지 못해 네그리가 분석한 세계가 진행되어 가는 체계의 명확한 모습을 잘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부분을 통해 세계는 제국(여기서 제국이란 네그리가 새롭게 규정한 의미)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나라(단수의 개념이 아닌 복수의 개념)들에 의해 만들어져 가고 있고 그 나라들에 의해 특징지워 지고 있다. 한편 네그리는 이 책을 통해 제국을 상대적 개념인 대중을 선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대중이란 단순한 the mass 즉 우매한 대중을 나타내는 개념이 아닌 the multitude를 표상 하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결국 좌파적 시각의 네그리는 인간이 중심이 된 대중에 의해 기존의 견고한 제국이라는 체제 또한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하는 것이다.

네그리는 결국 이 책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논리에 대해 고찰해 보고 지금의 세계가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는 상황을 제국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제국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발전적 대안을 찾고자 한 것 같다. 대강의 설명은 이렇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저자의 의도를 고찰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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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mn 2004-11-1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 댓잔 먹었는데... 글쎄 이젠 글도 써보자란 심정으로 자판을 댄다.

네그리는 여러 유럽사상 특히 그가 헌법 내지 법철학자로써 유럽의 국가 및 주권사상을 그의 예의 자율주의적 시각과 특히 스피노자의 내재론적 세계관을 통해 유럽 정치사상사를 정리한 글이라 생각하며 단지  정리로 그치지않고 '제국'이란 현대자본주의의 향후 전망 및 경향을 제시하며 새 호칭을 씌웠다고 본다.

국가이론 및 정치사상사에서 국가주권론이 근대적 완성이었다면  탈근대는 네그리에게 무엇이었을까? 바로 탈주권적 경향.... 즉 명명컨데 '제국'인 것이었다.

이상은 그간의 탈근대주의자는 물론 강단 커리의 정치발전론 정도에서도 접근할 만한 소재이라고 하겠으나, 유럽근대정치사를 정리하면서 탈근대의 사회정치적 현상 저변을  스피노자의 내재론, 그리고 탈근대 유물론자 들뢰즈의 철학으로 설명, 예언하였다란 차원에서 그리고 자율주의의 주인공인 '다중'으로 그의 혁명론을 긴장을 놓치지 않고 다체롭게 정리하였단 의미가 잠짓 제2의 공산당선언에 준하지 않나 누구의 서평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그리는 광야에서 (혼자는 아닌듯) 외친다. 곧 다중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다중이 되는 것은 아니리. 우리의 생체에너지에 기생하는 - 마치 매트릭스적 세계와 같이- 자본과의 자못 진지한 절단 및 탈주를 통한 우리 각자들의 욕망에 대한 진지하고도 순수한 실천 없이는 '다중'은 우리에게 그 다스한 품을 열지 않으리....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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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세상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끊임없는 관심과 관찰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은 그 어떤 공간 보다 변화무쌍하여 한 순간 자신의 작업에 소홀하게 되면 그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조명해 보고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지난번에는 박노자라는 귀화한 외국인(실재로는 더 한국인에 가까운)이 세상을 바라보던 것을 같이 엿보았던 적이 있다. 이번에는 김훈이라는 신문기자 출신의 작가가 보고있던 우리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정당하게 살자

올해 MBC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은 한번쯤 들어보았겠지만 ' 정정당당 KOREA'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을 이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들을 얼마나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면 이 나라의 공영방송중에 하나인 MBC의 목표가 정정당당이겠는가...이러한 표제를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듯이 이 한국 사회는 온갖 부 정의와 부 정직이라는 말로 얼룩져 있다.

많은 이들은 군대를 안가기 위해 별별 수작을 다 부리고, 한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가 망해가도 자기 자식 생각에 여념이 없고,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던 20세기를 지난 이 시점에도 색깔론과 이념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이 사회...막댄 말로 미쳐 돌아가고 있는 사회속에 우리는 이렇게 놓여져 있다. 누군가 말했던... R.O.T.C 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총체적 부패 공화국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명제가 아닐 수 없다..(개인적으로 학군단인 나는 안 좋아 하는 말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김훈은 이와 같은 우리 사회를 따뜻하지만 이성적인 눈으로 고찰해 보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평발을 내밀며 군대에 안 갈 수 없냐고 물을 때의 가난하고 권력없는 아비의 심정과 올바른 국가관을 말하고 참됨만을 말해야 하는 자신의 모순된 위치(이 책의 저자)...많은 대한민국의 아버지들과 남성들이 겪어야 할 멍에이다. 이 나라는 반세기가 넘도록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고, 그에 따라 건전하지 못한 정신이 사회에 팽배하게 펼쳐져 있다. 우리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슬픈 초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서 절망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절망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패악들을 극복하고 정당한 위치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를 고찰하고 사회 속의 패단을 들추어내는 것이 많은 작가(이 책의 저자와 같이)들의 몫이 라면 그것을 수용하여 고쳐나가고, 개선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인 까닭이다.

우리라는 말을 돌려 달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커다란 문제점 또 하나는 이분법적 사고에 있다. ' 우리 '라는 말은 나와 타아간의 상호협력적인 관계가 성립될 때 인정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 대한민국 안에는 우리라는 말은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나만 있지 너는 없다. 모든 일의 기준은 나에서 비롯되고 너의 존재는 잊혀지기 마련이다.

지난 언론사태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중요한 재료가 되어 주었다. 정부는 조세정의라는 입장에서 언론에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고, 결국에는 거대한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처사는 조세정의라는 대의적 명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기의 부적절성과 그 의도의 불명확성에 의해 그 순수한 의도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한편 언론은 사회의 공기로서 스스로 자정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자신의 의무를 망각한 채 자신 스스로 권력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서 스스로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정부와 언론간의 투쟁에 있어서도 우리는 사회의 많은 지인들에게 어느 한 쪽 편에 설 것을 강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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