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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의 교사론 -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들어가는 말
고교 평준화, 0교시 수업, 매년 되풀이되는 수능과 입시 문제, 교사의 권위추락 등등...매번 교육 문제가 사회적 핫 이슈로 떠오르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물론 그 만큼 교육이라는 테마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까닭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작은 땅에서 우리가 믿을 거라곤 인적 자원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현실은 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마치 바퀴들이 공 회전하듯이 뚜렷한 해결책 없이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것에 있다.
현실에 대한 고찰 - 프레이리는 교육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비참한 교육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뒤로 한 채 무작정 해결책을 찾다보면 밑 기둥은 자꾸만 썩어가고 그 위에 자꾸만 지붕으로 덮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교육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 교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 프레이리의 교사론 ' 이라는 책이다.
책을 처음 읽어보며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교육관과 교사관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선뜻 받아드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자에게 인지시키는 과정이 아니었다. 교육은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텍스트에 대한 교조적인 이해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교육은 결국 텍스트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 과정을 통해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교육관이 단순한 지식의 암기와 읽기의 과정이었다면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교육은 학습자에게 세상을 읽고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조금 확대 해석 해보자면 우리 나라가 직면한 교육은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이라면 앞으로 개선해야 될 교육의 모습은 프레이리가 제시하는 것처럼 종합적이고 다양화된 교육일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육관은 세계에 대한 기계론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 인간의식의 물질구조의 단순한 반영물 ' 일 뿐이다. 즉 피동적인 인식과정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참된 인식의 과정을 상실한 것으로서 현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방해할 뿐이다.
프레이리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프레이리는 교육이 역사의 진보를 가능케 한다고 본 것 같다. 교육은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교육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3세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문해자들에 대한 교육은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교사들의 사회에 대한 저항은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교육에 의한 세계 진보의 가능성이 프레이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입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야 전교조라는 교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집단이 겨우 인정을 받았다. 교사들 스스로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의 교사상은 고귀하고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유교적 사상에 빠져 있어 보수화 되고, 교육을 보육과 양육으로 평가 절하하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게 하였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는 점점 더 보수화 되고 교육은 침체의 과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진보가 있기보다는 퇴행적인 구조로 편입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교사들이 스스로 변혁을 들고 나오고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교사들이 하는 교육이라면 프레이리가 제시한 사회의 진보와 가치의 고양이 가능한 세계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