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나쁜게 아녜요. 페르민이 반대했다. 개자식들이지. 그것과는 다르죠. 악은 도덕적인 결정, 의도 그리고 특정한 사고를 상정하지요. 개자식이나 야만인은 생각하고나 설명하기 위해 멈추질 않아요. 악은 우리에 있는 야수처럼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호가신하고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며, 피부색이나 신념, 언어, 국정 또는 돈 페데리코의 경우처럼 여가의 습관 같은 것들이 자기와 다른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걸 자랑하고 다니며 본능적으로 행동하지요. 세상에 필요한 건 진짜로 나쁜 사람들이고 그 경계에 있는 짐승같은 놈들이 줄어드는 거지요.
- 페르민-248쪽

누군가 그가 살아있길 원한다는 걸, 그를 기억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좋아했을 텐데요. 누군가 우리를 기억하기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그는 종종 말하곤 했거든요.
- 누리아-276쪽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그녀가 결국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언젠가 누가 그랬어.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섰다면, 그땐 이미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거라고."
내가 말했다. 베아는 내 얼굴을 재빨리 쳐다보며 내 말에 진심이 담겨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랬는데?"
"훌리안 카락스라는 사람"-282쪽

"좋은 아버지요?"
"그래. 너희 아버지 같은. 머리와 가슴과 영혼이 있는 그런 남자 말야. 자식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자식을 이끌면서도 또 동시에 존중할 줄 아는 남자, 하지만 자기 결점을 자식에게서 보상받으려 하지 않는 그런 남자 말야. 아들이 그냥 자기 아버지이기에 좋아해주는 그런 사람 말고 그의 인간성으로 인해 감격해하는 그런 남자. 아들이 닮고 싶어하는 그런 남자 말야." - 페르민-298쪽

세월이 가면 중요한 건 때떄로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고 무엇을 양보하느냐라는 것을 알게 될거야.
- 페르민-299쪽

이봐, 다니엘. 여자들이란, 이웃에 사는 메르세디타스처럼 대단한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들보다 더 똑똑하단다. 아니면 적어도 자기들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너나 세상사람들에게 말하고 않고는 또 다른 문제야. 넌 지금 본성의 수수께끼에 직면해 있는 거란다. 여자란 바벨탑이자 미로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넌 지게 돼.이 말을 기억하라구.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정신. 사랑을 갈구하는 자의 코드지. -3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낙원』을 읽으려고 했는데, 『모방범』의 후속작 격이라는 걸 알고 긴급히 『모방범』을 먼저 구해 읽었다. 꽤나 두꺼운 책 세권이었는데, 미유키 여사의 책은 역시 엄청 재미있어서, 주말새에 다 읽어버렸다.

일본 소설은 미스테리, 스릴러라고는 해도 장르가 다소 모호한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정통 추리소설은 사건 발생후 탐정이 등장해 실마리를 파헤치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 짜잔! 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순간의 짜릿함이 매력이지만, 미야베 여사의 소설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고, 범인도 미리 다 밝혀버린다!!!   

그럼 대체 무슨 재미로 읽느냐고? 독자는 철저히 극의 바깥에 배치된 채로 르포를 읽듯 사건의 설명을 듣고, 범인의 각본에 피해자가, 주변인물이, 이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진범은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가 이 소설의 포인트인 듯 싶다. 제목이 의미하는 모방범이란 무엇인지, 이 책의 마지막에서야 알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심리 소설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는 책에 쏙 빠져들어서 정신없이 읽어버렸지만.   

서구 스타일의 추리소설과 달리 수사의뢰를 받은 탐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사건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단서에는 한계가 있고, 사건을 풀 수 있는 관계자들이 서로가 미처 닿지 못하고 정보를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존재하지만, 바로 그것이 이 거대한 사회의 모습이다. 『이유』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미시적인 사건에 거시적인 사회가 어떻게 소용돌이치는가를 잘 그려내는 점이 매력적이라서 미유베 여사의 소설이 참 좋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면서 살아, 시게코. 

라는 작중 대사대로,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중에서 분명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내 삶을 지배하는 가치, 내가 지키고자 투쟁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수원에 내려오니 일단 출근하고 나면 회사 밖을 벗어날 일이 없네요;;
때문에 식당을 이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할 일이 없어 한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는 점심시간에
책을 빌리러 가서 집어온 책은  이곤 실레의 그림과 붉은 표지가 인상적인 김연수씨의 최근작, 『밤은 노래한다』 입니다.
작년 서점가에서 한창 띄워주던 책이라 벌써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것 같긴 하네요^^; 

 
그동안 김연수 작가의 평에 낚여서 읽은 좋은 책이 여러권인데, 정작 김연수 씨의 책은 너무너무너무(-_-;;;) 재미가 없어서
서평 한 문장 제목 한 문장은 그렇게 잘 쓰면서, 대체 왜 자기 소설은 그런가요?
하는 불평해왔었는데요, 이번에도 잘못 골라온거 아냐? 하는 불안감과 함께 퇴근 버스가 출발하는 잠깐 동안 펴들었다가
출근 걱정을 잊고 새벽까지 읽었을 정도로 흠뻑 빠져들게 된 책입니다.

 
1930년대말 간도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일제 치하 조선인의 생이 그저 밝지만은 않겠지만, 그 정도의 음영이 이 세계에 드리워진 그늘이라고 믿고 있던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으로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사상이라든가 이념, 역사적 사실같은 것보다는 결국 삶과 죽음, 사랑 같은 궁극적인 것들에 닿게됩니다.

 

   
  인도주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지만,  그래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변화하는 인간의 힘을 믿겠지만,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만은 톨스토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내가 민생단 간첩으로 오해받아 죽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가 진리라면 인도주의 역시 개개인에게는 잔혹함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도, 분노도 없소. 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분노할 뿐이오. 인간은 진리 속에 있을 때만이 인간일 뿐이오. 그리고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끝없이 변화할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 pp. 232-235, 박도만
 
   


 

   
  정희가 내게 보냈던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소리를 내면서 무너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 김해연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

이젠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p. 324-325 이정희
 
   

  

평소에도 감탄해왔던 작가의 문장력이 잘 씌인 소설안에서 더 빛나고 있어 무척 사랑하게 된 책이라
비오는 화요일에 감히 추천해봅니다.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보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맥스무비와 알라딘 공동 시사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에 당첨됐다.
원작 소설도 준다고 해서 눈에 불을 켜고 두군데 다 응모했었는데 알라딘에서 당첨 -_-v 

======================================================================================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을 모티브로
80세 노인의 신체를 갖고 태어나 점차로 젊어지는, 남들과 달리 시간을 거꾸로 살아내는 사나이 벤자민 버튼의 생과 사랑을 다룬 무려 세시간짜리(-_-) 영화.  
원작 소설과는 달리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나름의 감동이 있어서 좋았다 :)

 

우리는 때로 시간을 거꾸로 산다면 언제로 돌아가면 좋을까? 궁리하기도 하고,
마크 트웨인처럼 80세에서 18세를 향해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쉽고, 또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벤자민 버튼은 너무나 특별한 생을 부여받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하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그의 삶은 어쩌면 그저 단조롭고, 너무나 평온해서 때론 따분하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누구는 일생을 배를 타다 바다에서 죽고,  누구는 음악에 조예가 깊어 피아노를 칠 줄 알며,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예술가로 살아간다...라며,
그 어떤 삶이라도 결국은 수많은 인간 군상의 한 모습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라는 걸까요?

 

영화에서 벤자민 버트은 여러차례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미친 개처럼 욕해도 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 이야기하는데.
아, 저것이 지금껏 내가 회사생활 하면서 깨달은 것이지 -_- 하는 생각이 들지 아니할 수 없었답니다. ㅋ
 

만약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살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고등학교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테고, 어쩌면 다른 전공을 택했을테고,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철없이 마냥 놀지만 않았을 테고,
취직을 준비할 무렵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회사를 택할 수도 있었을 테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나 제게는 더 많은 선택의 길이 열려있다는 것을 기억할 겁니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그래픽 처리한 브래드 피트의 노인 모습도, 모두가 감탄한 젊은 모습도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던 것처럼
저는 정말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해도 -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대신 지금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브래드 피트의 노인 모습과 청년 모습을 CG로 만들어 내 관심을 모으고 있기도 한 이 영화는 다음주 개봉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챙겨보시면 좋겠네요 ^^
(원작에서는 모티브만 가져왔을뿐, 영화와는 많이 달라서 굳이 책을 먼저 읽으실 필요는 없을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