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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Muse - The Resistance [초회한정 CD+DVD Deluxe Edition]
뮤즈 (Muse) 노래 / Warner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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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앨범보다 한층 더 MUSE 다워진 앨범. 기다려온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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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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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일본에서 신예 작가가 쓴 책이 큰 상을 받아 화제가 된 "일식"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는 수상 이유가 <문체>였기 때문인데, 덕분에 번역된 책에서는 그 매력이 반감됐다, 라는 평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난 지금 그야말로 내가 읽은 <칼의 노래>는 전체로되 내게 읽힌 그 문장들은 개별적이었음이 와 닿는다. 역사 소설이 으레 그러하듯이 허구를 엮어 넣어 그럴듯한 이야기를 거짓꾸며 보임도 아니요, 민족처럼 왜 거기에 경외심을 가지는지에 대한 의심도 할 수 없게 나의 사회화 과정 어디선가에서 주입된 것 같은 가치를 새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직히 독자들에게 읖조려지고 있을 뿐이다.

항시 글 잘 쓰는 능력이란 주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한 줌의 이야기를 됫박으로 만들면서도 감정이 지나침 없이 절제를 잃지 않음이 부럽다. 그 한줌이 짊어진 무게는 됫박으로도 일 수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부풀리면 부풀릴수록 한없이 늘어나련만, 그 무게를 끈끈한 살가움도 가슴벅참도 아니고 오히려 어딘가 모자란듯 되씹으면 단맛나는 밥알처럼 진득하게, 이미 내 속에 들어앉혀버린 면밀한 글쓰기.

참으로 유려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부러울정도의 문장들은 바로 1인칭 시점에서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지도 않는 문체의 힘임을 새삼 깨닫는다. 나직히 읖조려지듯 다가오는 산문의 운율, 싯귀처럼 조탁한 언어로도 눈 앞에 정경을 그려내는 묘사력.
그러니 이제 잡다한 수사는 그만두고 읽어보란 말만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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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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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항상 내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아마도 그의 이름보다도 내게 먼저 다가왔던, 고등학교 시절 교지에 실렸던 감상문 첫머리에 자리 잡고 있던 [그 당시 나는 미쳐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글귀 때문이리라.

[원인도 알 수 없는 고약한 결과를 육신에서 감지]하게 된 그레고르 잠자(Samsa). 눈을 떠 흉측한 해충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면 모든 일은 한바탕 꿈이고 다시 인간이 되어있기를 기대하지만, 작품 마지막까지 ‘변신’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변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험자가 자신의 의지로써,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일어나는 행위이련만, 그레고르의 변신은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해서 과연 ‘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이 벌레는 그 크기며 모양새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 그레고르와 동일한 크기의 벌레로 변한 것처럼 보였지만 후에는 가정부가 빗자루로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작가 자신도 그레고르의 모습에 대해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지만, (조별 토론을 하면서) 벌레가 점점 작아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것은 집 바깥과 연결되는 고리란 날마다 창을 바라보는 일 외에는 없는 그레고르가 밖이 점점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도 연관되는 것 같은데, 이렇게 그는 점점 자아가 움츠러들며,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그레고르의 가족은 5년 동안이나 그레고르가 홀로, 필요이상으로 부양해왔는데, 그가 벌레가 되어버린 이후 가족들은 그제서야 간신히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변신을 보인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제복을 입고 이전보다 훨씬 당당한 모습으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를 차마 버리거나 죽일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귀엽지도 않은 다 늙은 애완동물 키우듯, 간신히 먹이만 줄 뿐이다. 그 미움이 폭발하여 아버지는 사과를 던지고 그 조각에 맞은 그레고르가 죽자마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가족은 소풍을 떠나며, 그의 부모는 이제 그레고르 대신 그의 위치에 동생 그레테를 대입시키는 것이다.

작품 말미에 그레테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에서 ‘좋은 남자 하나 잡아서 결혼하여 우리를 부양해주겠지’라는 속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함을 느꼈고, 하나의 애정의 테두리 안에 들어있는 아들로서의 그레고르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고 그로써 관계 맺는 사람인 양, 가족이 아니라 마치 그 자리에 곧 다른 사람을 대입시켜도 하등 문제될 것 없는 소모품인 양 그려진 그레고르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변신을 읽으면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인간 소외나,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내 울타리가 되어줄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계약 관계와 다를 것 없다는 인식이 서글펐지만 가장 슬펐던 것은, 실존적인 사유는 하나도 하지 않고 벌레가 되어 하는 일이라곤 벽을 기어 다니며 창 밖을 바라보는 것뿐인 그레고르의 모습보다 별 생각도 없이 긴 휴일 내내 스파이더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하등 나을 것이 없다는 참담함이었다. 카프카가 변신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벌레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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