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변신.시골의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카프카는 항상 내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아마도 그의 이름보다도 내게 먼저 다가왔던, 고등학교 시절 교지에 실렸던 감상문 첫머리에 자리 잡고 있던 [그 당시 나는 미쳐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글귀 때문이리라.
[원인도 알 수 없는 고약한 결과를 육신에서 감지]하게 된 그레고르 잠자(Samsa). 눈을 떠 흉측한 해충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면 모든 일은 한바탕 꿈이고 다시 인간이 되어있기를 기대하지만, 작품 마지막까지 ‘변신’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변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험자가 자신의 의지로써,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일어나는 행위이련만, 그레고르의 변신은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해서 과연 ‘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이 벌레는 그 크기며 모양새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 그레고르와 동일한 크기의 벌레로 변한 것처럼 보였지만 후에는 가정부가 빗자루로도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작가 자신도 그레고르의 모습에 대해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지만, (조별 토론을 하면서) 벌레가 점점 작아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것은 집 바깥과 연결되는 고리란 날마다 창을 바라보는 일 외에는 없는 그레고르가 밖이 점점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도 연관되는 것 같은데, 이렇게 그는 점점 자아가 움츠러들며,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그레고르의 가족은 5년 동안이나 그레고르가 홀로, 필요이상으로 부양해왔는데, 그가 벌레가 되어버린 이후 가족들은 그제서야 간신히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변신을 보인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제복을 입고 이전보다 훨씬 당당한 모습으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를 차마 버리거나 죽일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귀엽지도 않은 다 늙은 애완동물 키우듯, 간신히 먹이만 줄 뿐이다. 그 미움이 폭발하여 아버지는 사과를 던지고 그 조각에 맞은 그레고르가 죽자마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가족은 소풍을 떠나며, 그의 부모는 이제 그레고르 대신 그의 위치에 동생 그레테를 대입시키는 것이다.
작품 말미에 그레테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에서 ‘좋은 남자 하나 잡아서 결혼하여 우리를 부양해주겠지’라는 속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함을 느꼈고, 하나의 애정의 테두리 안에 들어있는 아들로서의 그레고르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고 그로써 관계 맺는 사람인 양, 가족이 아니라 마치 그 자리에 곧 다른 사람을 대입시켜도 하등 문제될 것 없는 소모품인 양 그려진 그레고르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변신을 읽으면서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인간 소외나,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내 울타리가 되어줄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계약 관계와 다를 것 없다는 인식이 서글펐지만 가장 슬펐던 것은, 실존적인 사유는 하나도 하지 않고 벌레가 되어 하는 일이라곤 벽을 기어 다니며 창 밖을 바라보는 것뿐인 그레고르의 모습보다 별 생각도 없이 긴 휴일 내내 스파이더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하등 나을 것이 없다는 참담함이었다. 카프카가 변신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벌레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