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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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6명 작가의 ‘여긴 어디? 나는 누구?’ in SF.
이 6명의 작가들은 얼음이라는 소재를 각각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점을 가장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시공간 얼려버리기. 가장 처음으로 곽재식 작가님의 소설을 넣은 건 정말 제대로 된 낚시였다. 난 깔깔 대며 읽었고, “대단하지 않은가?(p.7)” 이런 문장을 읽으며 내가 방송에서 들었던 곽재식 작가님의 코맹맹이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후 다른 작가님들은 아포칼립스 시절을 빙하기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눈꼽같은 얼음덩어리를 귀에 넣고 다니는 존재로 만들기,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 위에 붕괴되기 일보직전인 임대아파트로 설정하기, (**) 눈까지(스포라서..**표시)! 안타깝다, 이런 단행본은 한 여름에 나왔어야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을 얼어붙었다. 심지어 남유하 작가님의 <얼음을 씹다>를 읽은 후 난 이 책을 며칠간 멀리했다. 딸래미 손톱 깎아주면서도 괴로웠다. 다른 분 단편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소름 돋았다. 책을 덮은 후 내가 최근에 읽은 한국작가 SF가 뭐지? 질문했다.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두 편이네, 이 책들은 이 6편의 백신이 될 수 없었다. 다 읽은 후 나의 소름들을 다행히도 곽재식 작가님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게 다 무슨 짓인지도 정확히 안다. 나는 소설의 등장인물이다”를 읽으며 위로받았다. 그래. 다 이야기야, 이야기.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얼음이 된 나는 스스로에게 “땡”을 외치며 풀어줄 수 있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채빙>, 천선란 작가님의 <운조를 위한>은 워낙 네임드가 있으신 작가님들이니 다른 분들도 많이 쓸 거 같아서 패스. 나는 연여름작가님의 <차가운 파수꾼>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이 여름이시라 그런지 이렇게 추운 이야기를 이렇게 따뜻하게 쓸 수 있는 건가, 아저씨 농담식으로 생각해보며.. 이 책의 다른 제목으로는 <너를 위한 파수꾼> 에이, 촌시럽구나. <교환>!!!! 이건 괜찮을 것 같은데. 노이와 이제트가 처한 세계에서는 교환만으로 생존이 가능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들의 교환이 조금씩 확장하면서 이런 세계에서도 가능할 수 있구나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비극인데, 이게 또 독자에게는 비극이라고 할 수 없는 연탄재 한 장 같은 그런 따스함을 우리에게 던져준다고나 할까.

다음 시리즈는 어떤 공통된 소재로 어떤 작가님들이 써주실까? 궁금해하며...
곽재식 작가님의 첫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주문이다. 내 팔에 곧 돋을 goosebumps를 손바닥의 마찰열로 싹싹 비벼가며 다시 책장을 펼친다. 내가 놓쳤던 소름을 찾아 다시 한번 이 얼음 위를 위태롭게 걸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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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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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흐름출판, 2023)


이 책은 1900~1945년대의 중요한 과학적 성취를 만들어가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이 원자라면, 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논쟁하는지, 나 같은 독자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이 과학자들의 활약상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과연 양자역학에서처럼 우리가 본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feat. 내가 뭘 쓴걸까, 어디다가 올려도 되는 글일까 ㄷㄷ.)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양자를 최초로 등장시킨 과학자마저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가장 첫 챕터에 나온다. “1900년 12월 14일 금요일 오후 5시”(p.27)“양자물리학의 탄생 시간”(p.29)을 탄생시킨 막스 플랑크는 “원자를 믿지 않는 보수적인 물리학자”(p.27)로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흑체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가설(p.27)을 내세웠고, 이 발표 이후에도 “양자에서 다시 벗어나려고 수년간 노력했다”(p.29). 본인이 써놓은 공식에 등장하는 양자를 믿지 못했다. 이 사실은 양자역학을 째려보는 나에게 매우 위로를 주면서 이 책에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마리 퀴리에 대해서는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내용에 더해, 정말 위대한 여성 과학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자이면서 막노동가였다, 그녀는. 그녀의 실험실에 대해 “독일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는 ”헛간과 감자 창고의 교집합“(p.38)”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엉터리인 이 헛간에서 순수한 라듐을 얻기 위해 “뼈가 부서지는 작업-무거운 양동이를 끌다시피 가져와 용액을 골고루 붓고,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를 쇠막대로 저었다. 알칼리성 염, 산, 수백 리터 물로 피치블렌드를 씻어내야 한다. 퀴리 부부는 추출을 위해 ‘분별 작용’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원료를 계속해서 끓이고 식히고 굳혔다”(p.39)-이 막노동을 통해 고작 “0.1g쯤 되는 순수 라듐을 손에 쥐었고(...)주기율표에 88번을 부여했다”(p.39)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화상으로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피에르의 손가락. 그것은 언젠가 마리를 죽게 할 방사능 질병의 전조”(p.41)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방사능으로 죽게 된다는 미래를 알았다면 그녀는 이 막노동에 가까운 실험을 계속 했을까? ... 했을 것 같다.(장갑이라도 끼지 않았을까?)
다른 챕터에 등장하는 아인슈타인이 특허청 말단 직원에서 상대성이론을 낸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린시절, 앞서 마리 퀴리와 같은 위인전 전집에서 읽어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서 눈에 띄었던 것은, 그래서 꼰대가 됐을 법도 한 그 높은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이 보여준, 1927년 브뤼셀에서 있었던 솔베이 회의에서의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결투”(p.301)라고 표현을 하긴 하지만,) 어떤 진중한 태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처럼 행동한 모습으로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 강연을 제안 받았지만, 약간의 망설임 끝에 거절했다. 그는 ”그럴 능력이 안 된다“고 로렌츠에게 썼다.”(p.304) 우리나라라면 무조건 아인슈타인에게 강연시켰을 텐데. 21세기의 오늘날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꼬리를 내리고 겸손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1927년 10월 26일 수요일. 젊은 반항자들-보른과 하이젠 베르크가 “양자역학은 원자 물리학과 고전물리학의 중대한 차이가 불연속성이라는 직관을 토대로 합니다.””(p.308)라고 발표한다. 이후 아인슈타인도 계속해서 보어와 논쟁을 이어가지만 “양자역학을 반박하지 못한 채, 제 5회 솔베이회의는 끝났다”(p.322)라는 과학사의 논쟁이 뭐랄까, 학연과 지연, 혈연이 끼어들지 않는 매우 클린하면서도, 열띤 지구촌 과학자들의 회의를 구경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양자역학이 뭔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유투브로 양자역학 강의(약 10분짜리 영상)를 클릭해 본 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우리의 김상욱교수님께서 각종 방송과, 여러 과학행사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소개해주시지만 볼 때마다 처음 듣는 얘기인 것 같은 마음으로 양자역학을 접하는 시청자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내 얘기다. 나의 경험론에 의거한 이성은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추천사를 써주신 이정모 과학관 관장님도 말씀하시지만 “이론이 어려울 땐 역사를 보는 법.”(p.4) 나 역시 유투브에서 힘겹게 알아낸 토막정보들 사이의 간극을 이 책이 메워주었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이름들이 메꾸어준 것이다. 어린이였을 때 위인전에 있었던 마리 퀴리와 아인슈타인의 이름만을 기억했던 나에게 1900년 에너지의 양자화를 발견한 막스 플랑크, 1913년 원자 모델을 제안한 닐스 보어, 1920년대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고양이가 더 유명한 것 같은 에르빈 슈뢰딩거 등등의 이 책에 나온 과학자들의 이름들이 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양자역학에 대해 매우 연속적으로 매우 논리적으로, 일타강사처럼, 설명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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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 엄마 건전지 가족
강인숙.전승배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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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숲길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건전지는 퇴근하고서도 다시 엄마로 출근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이 점이 나의 동심을 흐렸지만.. (리얼) 인간 엄마가 가족들과 밥을 먹는 모습(분명 "오늘 불이 났지 뭐예요" 얘기를 했겠지?)을 보니 이 집의 평화는 안전해보인다. 건전지 엄마 역시 저녁밥은 안해도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ㅋ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한 이불 속에 있는 것만으로 충전완료하는 모습은 행복해보인다. 건전지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다. 이 부분에서 살짝 예전의 나에 육아태도와 지금사이의 갭에 대해 반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슬이가 더 어렸을 땐 더 많이 사랑한 것 같은데 지금은 최근에 찍은 사젠 조차 몇 개월 전이다. 아니다!!! 예전처럼 24시간 지켜보며 아기를 기르는, 육아의 시기는 지났다는 뜻도 된다. 우리 슬이는 어엿한 사춘기 전단계이다. 이 그림책을 보고 있자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나 역시 슬이가 태어나고 물티슈, 뽀로로밴드를 잔뜩 사놓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했다. 모든 부모들이면 공감할 터. 여기에 건전지는 부가적인 사항이지만 난 꼭 잔뜩 쟁여놓았다. 그림책에서처럼 체온기 뿐만 아니라, 장난감 뽀로로 마이크, 폴리 음료수 자동판매기, 요괴워치 시계 등등 아이들 장난감은 충전식보다는 건전지 들어가는 방식이 더 많았다. 바꿔준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생각하며. 또 '이 건전지 갈아주면 얜 이거가지고 몇 분을 놀수 있으려나'를 궁금해 했다. 그 몇 분이 나에게는 집안 일을 할 시간이면서 자유시간이기도 했으니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건전지 엄마에게 빚이 있다. 슬이는 생각보다 뽀로로 마이크와 자동판매기를 가지고 정말 오래, 자주 놀아주었다.

지금도 나와 같이 건전지 엄마에게 빚을 진, 이 세상에 모든 육아하는 엄마들을 응원한다.


p.s 작년 겨울, 슬이가 양모인형 DIY를 사달라고 졸랐더랬다. 그게 슬이가 혼자 다 하기엔 역부족이라 나도 엄청 바늘 콕콕 찔러주는 것을 도와주었고, 바늘도 여러 개 휘기도 하고 분질러 먹었으며, 내 엄지 손가락은 여러번 공격 당했던 터라..이 두 부부의 엄지 손가락이 궁금하다.ㅜㅜ 골무라도 보내드리고 싶다. 그러고보니 골무도 따지고 보면 손가락들의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창작은 모방에서 탄생한다(!)

p.s 나도 표지의 표창, 슬이랑 꽤나 접었더랬다. (김아빠가 가르쳐준 거 였는데 ) 접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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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음 / 소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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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감성 장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런 갬성이 메마른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책은 감성이 아니다. 나같은 도시인들에게 저자가 권하는 가득 찬 한 컵의 물이다. 나이 먹을 수록 왜 그리 꽃과 나무를 찍어대는지 그 이유를 이 책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나무의 어깨가 필요하다. 그 어두움 속에 고요함이 있고 나를 촉촉히 적셔줄 무언가가 이 숲에 존재한다.


감성충만한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위험하다는 구청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은 위트가 있다. 뒷부분의 비자림로 나무들을 부둥켜 안은 모습의 그림들은 앞에 저자가 이야기한 나무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이 이 나무들을 지켜내야하는지 를 그림으로 설명한다.

왜 혼자 산책로를 걷게 되는지, 이 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단지 건강만을 위해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오늘 당장 당신도 근처에 나무가 있는 곳을 걷기를, 이 책을 통해 함께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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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음 / 소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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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두움이라 썼지만 나는 고요함이라 부르고 싶다. 숲과 나무라는 고요한 어깨에 기대어 쉼을 얻는 나를 발견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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