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윈 - 찰나의 영광을 넘어 오래 지속되는 승리로
캐스 비숍 지음, 정성재 옮김 / 클랩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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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윈 : 찰나의 영광을 넘어 오래 지속되는 승리로.

캐스 비숍은 2004년 올림픽 조정 은메달리스트였고 영국 외무부 외교관 출신으로 현재는 기업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은메달리스트로서 한 끗 차이인 금메달을 향한 재도전을 멈추는 대신 롱 윈이라는 좁은길을 개척했다. 세계 2위라는 은메달리스트임에도 힘들었던 마음을 겪으며 승리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지속되는 승리를 위한 ‘롱 윈 Long Win’ 사고법을 고안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2020년 《The Long Win: The Search for a Better Way to Succeed》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같은 해 파이낸셜 타임스 비즈니스 분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이 사고법을 적용한 리더들의 예시와 독자들도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을 추가한 최신 개정판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총 3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승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경쟁이 늘 긍정적인 원동력이라고 믿으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서술했다.
2부는 ‘승리는 어떻게 인간을 망가트리는지’, 교육, 스포츠, 기업, 전쟁, 정치, 선거 등에서 나타나는 승리와 그 폐해를 적는다. 전쟁에 진정한 승리자가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영국의 브렉시트 사례가 눈에 띄었다. 요새 계엄령을 두고 찬반으로 나뉘어 한국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슈는 결국 정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 역시 2016년 브렉시트 국민 투표 이후 이에 찬성하는 정치인들과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지킬 수 없는 약속과 “변화하는 정세에 맞춰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줄을 모르”(p.199)는, 승패만을 중요시하는 정치인의 행태를 보여준다. 영국이라는 선진국 정치 역시 다를 바 없음에 한숨이 나왔다. 더 이상 우리가 모방할만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이어 ‘새 시대에 걸맞은 리더’라는 부분에서 만델라, 오바마, 뉴질랜드의 저신다아던 총리의 예시를 들며 “서로를 돌볼 수 있어야 강한 공동체가 되고, 그래야만 더 단단한 사회와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p.202)라는 문장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3부에서는 ‘지속되는 승리는 어떻게 얻는지’에 대한 서술이다. 롱 윈 사고- 명확성, 꾸준한 배움과 연결, 이 세가지가 핵심요소다. 첫 번째로 저자는 성공에 대해 명확하게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내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p.231)을 생각하다보면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독자에게 권한다. 저자에게는 다음의 질문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질문1. 나를 아침에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2.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은가?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런 나를 세상과 연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다음 단계로 꾸준한 배움을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연결로 이어진다. 저자는 의도적으로라도 더 많이 연결될 것을 제안한다.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들은 모두 협력이 있어야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인류의 미래는 ‘연결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에게 이미 존재하지만 지금보다 더 의식적으로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p.315)

지구상에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자식 세대들에게 떠넘겨야 하는 기성세대와 앞으로 이런 지구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과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광화문에 나가 계시는 우리 윗세대와의 연결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싶다. 현재 한 정치인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이 사회를 향해 함께 오래도록 걸어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바로 이 때에 이 책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함께 롱 윈하는 방법에 대해 심사숙고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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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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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우리가 혼돈 속에서도 타오르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라는 천선란 소설가의 강력추천을 받은 줄리애나 배곳의 SF단편집이다.

원제가 너무 궁금했는데 “I’d really prefer not to be here with you”로 ‘필경사 바틀비’의 대사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문장의 제목이다. 한국어 버전의 제목과 거리가 느껴지는 원제이지만, 한국인 편집자가 선택한 제목이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어 책 제목의 문장은 <포털>이라는 단편에 나온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두려워 하는 것, 원하는 것······ 비밀과 수치심도 구멍을 낼 수 있다.”(p.29)

데릭 톰킨스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곳에서 포털이 나타나면서 시작하는 이 단편소설 속 포털은 네사 가족의 소파 쿠션 안쪽에서, 물빠진 수영장에서는 음악소리가, 다브로스키의 정원에 있는 타이어로 만든 그네의 타이어속에 생긴다. 포털이 왜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포털은 화자인 ’나’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호감이 있었던 콜렛 해들리가 할머니와 차 사고로 죽자 그때 이미 ‘나’에게 보였다. 그때 포털 구멍에 손을 넣어보지 못했던 ‘나’는 에이든과 함께 데릭 톰킨스가 발견한 다섯 개의 구멍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나’는 콜렛 해들리의 얼굴을 한번 만져보길 희망하지만 같이 그곳에 간 에이든의 공포와 함께 포털이 생긴 장소와 상관있던 인물의 슬픔과 수치심, 그리움, 기대감, 불안을 대신 느껴본다. 그리고 함께 있었던 에이든 역시 ‘나’의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둘은 타이어를 다시 찾아 그 속을 들여다본다. “잉크처럼 검고 별이 총총한 우주가”(p.32) 보이는 곳에서 둘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누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타이어 속 우주만큼의 행복이 느껴진다. 요새 작가들은 왜 이리 통이 작은 것이냐, 불평도 해보지만 딱 그만큼이라 더 예쁜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소설인 <역노화> 역시 재미있다. ‘나’는 외동딸로 최근 3년간 연락을 끊었던 80대의 아버지가 머물었던 한 의료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임종 전에 소생술을 포기하는 대신 ‘ “대략 10년 정도를 하루 만에 살게 되는”(p.40) 역노화라는 신기술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보호자라는 명목의 참관인이 필요하기에 ’나‘를 부른 것이었다. 평소 무관심하고 형편없는 아버지였기에 내키지 않은 8일 동안의 동거를 그린다. 80대, 70대, 60대.... 역노화해가는 아버지를 대면하는 서른 네 살의 딸. 섬유예술가라, 그러니까 펠트예술가보다 펠트장이(felter)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는 “뭔가 느꼈던(felt) 사람이라는 뜻이지. 지금, 그러니까 현재가 아니라. 한때 느꼈던 사람. 예전에 느꼈던 사람.”(p.43)이라고 규정지으며 다가올 실망에 대해 두려워하는 ’나‘는 아버지의 역노화 과정을 지켜보며 현재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휴지를 준비해둘 것.

내게는 이 책이 소설은 픽션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선물해주는 책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선물해주는 각자의 포털에 대해 상상할 차례다. 나의 포털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있을지, 그것을 누구와 함께 할지. 그리고 현재 느끼는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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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똑똑 빗방울 삼 형제 자음과모음 문해력 동시 1
장석주 지음, 최혜진 그림 / 자음과모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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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속에 있는 태풍, 천둥, 벼락, 번개를 알아본 장석주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시집에 등장하는 어린이 화자의 ‘난생처음’의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을 보며 어린아이와 같이 반짝이는 눈을 가진 시인을 상상하게 된다. 어린아이의 귀여운 호기심과 시라는 예쁜 말, 그리고 시인 특유의 관찰력이 가득담긴 시집이다.

표지의 제목과도 같은 <또르르 똑똑 빗방울 삼 형제>을 소개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 삼 형제

손잡고 사이좋게 내려오는
빗방울 삼 형제

키는 고만고만하지만
마음씨는 크대요

콧등이 예쁜
빗방울 삼 형제

슬이와 이 시를 읽어보며 왜 빗방울은 삼형제일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친구들 중에 사형제도 없고 오형제도 없어. 이형제는 너무 적고. 그래서 삼형제 아닐까?” 대답한다. 그래 네 말도 맞다. “학교 끝나고 나왔는데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어. 신발을 갈아신고 우산을 폈어. 그런데 비를 만져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우산 밖으로 손바닥을 내밀었어. 보통 그러면 한 방울만 손바닥에 떨어지지 않잖아 니 말대로 세 방울 떨어졌을 때 손을 거두어 구경했어.” 나도 나만의 상상을 이야기해본다. 똑같이 아롱다롱한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라 친구 말고 형제라고 말한 게 아닐까? 작아보이는데 아뿔싸, 손바닥을 모았더니 하나로 합쳐졌다. 셋의 마음이 이렇게 잘 맞는 걸 보니 마음씨도 넓겠어. 잠깐 내 손바닥에 있었다고 친해진 것 같아. 친해지고 나니 물방울이 햇빛에 비치는 모습이 콧등처럼 보인다. 참 예쁘다. 아이들의 아기자기한 마음이 느껴진다.

슬이가 뱀띠이다 보니 뱀에 대한 시도 인상적이다. 심지어 뱀에 대한 시는 두 편이 나온다. 그 중 두 번째 시를 소개한다.

<뱀2>
뱀은 구불구불 기어다니는
나무가 아닐까요?

뱀은 번개가 놓친
무지개가 아닐까요?

뱀은 헌 옷을 버리고 새 옷만 찾는
멋쟁이가 아닐까요?

뱀은 우리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아닐까요?

뱀은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미친
영혼이 아닐까요?

뱀이 구멍에 웅크리고 사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요?


나무, 무지개, 멋쟁이, 수수께끼, 영혼에 은유한 마음이 재미있다. 나는 특히 6연에 깔깔거렸다. 슬이는 자기도 한 번 지어보겠다고 하더니 “뱀은 한번 묶이면 풀 수 없는 밧줄이 아닐까요?”라고 지어본다. 흑사띠 답다..항상 착착 감기는 너의 모습과 비슷하다 ㅋㅋ

이 동시집을 읽으며 듣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육아가 끝났다고 이제 더 이상 잘 들으려 하지 않고 먹었니, 치웠니, 씻었니 등 대화가 아닌 나의 언어를 반성해본다. 이 동시집은 닫혀가던 나의 귀를 다시한번 열어주었다.

한글을 배우는 아이와 함께 읽기에도, 한글 쓰는 것을 배우는 중인 초등저학년 아이들 필사용으로도 더 없이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와 대화를 하고 싶은 부모님께 특히 더 추천한다.  
#또르르똑똑빗방울삼형제#장석주#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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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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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어려보이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유독 피터팬을 향한 열광이 깃든 민족이라 생각된다. ‘백세시대’라는 키워드와 함께 떠오른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이자 올해 104세가 된 김형석 교수님에게 그 누구도 윤동주와 함께 공부했을 때나 도산안창호의 설교가 어땠는지, 김일성의 중학교 시절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오로지 장수의 비결을 묻는 인터뷰만이 흔하다. 그리고 스타상담가의 50대가 되어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세 가지 시리즈들, 삼질-자랑질, 이간질, 지적질, 삼안-전화안하냐, 안오냐, 안고맙냐, 삼소리-죽는 소리, 싫은 소리, 욕하는소리 - 쇼트강의가 조회수 상승중이다. 노년을 준비하는 나이의 나는, 이런 시대적, 사회적 흐름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나이들수록 어려보여야지, 추잡시러워보이지 말아야지, 더 잘 입고 다녀야지, 말도 가려가며 해야지, 노인이 되기 너무 어려운거 아닌가? 하지만 주변에 노년의 어르신들 중, 나는 저렇게 나이들고 싶지 않다는 분도 있고, 반대로 저렇게 나이들고 싶은 분도 있다. 안드레이 칼라일은 후자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일타강사처럼 옷을 이렇게 입어라, 이런 말은 하지마라 등, 뭐해라 마라 하지 않아 더없이 좋았다.

There Was an Old Woman 이라는 원제를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라고 제목을 붙인 책이다. 나는 이 원제와 한국책 제목 사이에서 읽으며, ‘옛날 옛날에~’라는 말은 없지만 그 뒤를 이어주는 “어느 지혜로운 할머니가 살았어요”로 읽혔다. 저자는 소설, 에세이 등을 쓴 미국작가이면서, 100세를 산 어머니를 7년간 간병한 이야기를 SNS에 올리며 큰 관심을 받은 분이라고 한다. 나이를 드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해, “나는 어린아이였고 지금은 나이 든 여자다. 나는 정말 온전한 인간인가?”(p.69)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이 책을 써내려가는 원동력이었구나, 싶다.

‘하지만 나는 젊음을 원하지 않는다.(...) 나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온전히 살아가고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증언해달라고 요청할 가치가 있는 심오한 시간이다.“(p.98)라며 우리에게 나이든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더 이상 불평을 하지 말고 공유하는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러 장벽을 허물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대화를 ’불평‘에서 나이가 든다는 게 어떤 건지 공유하는 대화로 바꾸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p.101)

또, 1970~80년대에 아이들을 가르치던 저자는, 교사들 조차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연령 차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p.202)라고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노년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지적한다.

뭐니뭐니해도 이 책은 저자가 사는 하우스보트에서 산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책을 집필하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칠면조 독수리, 백로, 사슴을 보며 자신의 반려견이었던 (심지어 세 마리) 카슨, 분, 브리오를 떠올리는 것으로 마친다. 그렇게 하루하루 다가오는 대로 일상적인 삶을 누리며 마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 뒷표지에 적혀있듯이 “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잘 살아내고 싶다. 그 안의 빛과 그림자까지 받아들이며.” 이제 빛이 소멸해가고 그림자가 다가오는 생의 전환점에서 나 역시 나이드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안드레아처럼 산책하듯, 우아하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해보며 책을 덮는다.
#나는언제나늙기를기다려왔다#웅진지식하우스#안드레아칼라일#양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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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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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보다 <반지의 제왕>을 더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개의 탑’에서 피핀과 메리가 엔트족을 찾아가 트리비어드와 대화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엔트족 나무들은 숲속의 거인으로 사는 동안 많은 동물, 곤충들과 공생해왔다. 그 중 하루종일 지저귀는 새들과 더 친해서일까? 트리비어드 역시 피핀에게 마더구스같은 노래를 불러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떠올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 엔트족이 지켜내지 못한 엔트와이프에 대해 시를 읊는 부분이다. 인간들의 시인처럼 예민하거나 감수성이 뛰어나보이지는 않는 이 엔트족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그들을 시인으로 만들었음을 느꼈다. 그때부터일까 나는 나무에 대해 그래도 관심이 있는 편이다. 우리 동네 길가의 플라타너스와 옆 아파트의 은행나무,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벚나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봄마다 가지치기(당)하는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를 보면 마치 군입대 전날의 한 청년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어느 새 여름이 되어 커다란 활엽수 특유의 푸른 잎들로 수영버스를 기다리는 슬이에게 그림자를 선물해주는 플라타너스와 가을이 되면 매해 다른 노란 빛으로 길가를 덮어주는 은행나무들을 보며 계절이 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국내 1호 나무 전문기자인 저자에게도 나무는 특별했다.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그의 눈에는 나무들이 ‘아름답’ 지만 지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천년을 산 거인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저자가 발로 뛰며 취재했던 아름답고 위태로운 노거수(수령이 오래된 거목)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Chapter 1 ‘나무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에서는 안동에 있는 천년기념물 은행나무, 회화 나무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이팝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고목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Ch 2에서는 도시 길가의 플라타너스, 포플러나무, 삼나무를, Ch3에서는 버드나무, 향나무, 팽나무 등 물가에 사는 나무들의 이야기가 써 있다. Ch4에서는 숲에 사는 나무, 그리고 마지막 Ch5에서는 사람과 나무를 담았다.

그 어느 나무 하나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가 없었다. 굳이 고르자면 나는 보라매공원에 남은 네 그루의 포플러가 인상적이다. 그 나무들을 주목해온 보라매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만든 ‘보초맘’의 활동과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원관리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나무들 중 가장 유명할 제주도의 비자림로 삼나무이다. 제2공항을 짓기 위해 3400그루의 삼나무가 베어져 나간 이 에피소드를 통해, 이렇게 이슈화가 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의 단체와 예술가들이 뭉쳐서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지 않는 정부의 대처에 놀랐다. 단순한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마시는 지하수와도 연결되어 있는 숨골이 위치한 이곳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베어내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이는 대체 누구일까? 제주도는 이미 코로나 전에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유일한 천혜의 섬을 관광도시로 만들려는(어쩌면 이미 만들어졌을) 행정당국과 이익이 맞는 이들이 누구일까? 동시에 도시에서의 인공적인 공원의 모습과 아파트 내 산책로로 꾸며진 제주도가 상상되며 끔찍했다. 이렇듯 저자는 분명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나에게는 인류의 결과물인 현재의 세상- 정치, 사회, 환경이라는 시스템 속 오류가 읽히는 시간이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트리비어드가 사우론의 만행을 보다못해 간달프가 제안하는 동맹에 합류했듯 오늘날에 보이는 기후위기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인류에 대해 대항하는 자연 동맹의 울부짖음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저자가 제안하는,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20~30살 된 가로수 한 그루가, 제 명대로 살아 수백 살짜리 나무로 커갈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선한 마음들이 모일 겁니다. 우리 대에 누릴 수 없는 혜택을 후손들에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긴 호흡의 사고를 하게 될 겁니다. 각종 제도를 바꿔내기 위해 민주주의가 발달할 겁니다. 인류가 가진 지혜와 기술이 총동원될 겁니다. 그렇게 도시가 바뀌고 숲이 살아날 겁니다.“(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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