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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해리 포터>보다 <반지의 제왕>을 더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 개의 탑’에서 피핀과 메리가 엔트족을 찾아가 트리비어드와 대화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엔트족 나무들은 숲속의 거인으로 사는 동안 많은 동물, 곤충들과 공생해왔다. 그 중 하루종일 지저귀는 새들과 더 친해서일까? 트리비어드 역시 피핀에게 마더구스같은 노래를 불러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떠올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 엔트족이 지켜내지 못한 엔트와이프에 대해 시를 읊는 부분이다. 인간들의 시인처럼 예민하거나 감수성이 뛰어나보이지는 않는 이 엔트족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그들을 시인으로 만들었음을 느꼈다. 그때부터일까 나는 나무에 대해 그래도 관심이 있는 편이다. 우리 동네 길가의 플라타너스와 옆 아파트의 은행나무,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벚나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봄마다 가지치기(당)하는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를 보면 마치 군입대 전날의 한 청년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어느 새 여름이 되어 커다란 활엽수 특유의 푸른 잎들로 수영버스를 기다리는 슬이에게 그림자를 선물해주는 플라타너스와 가을이 되면 매해 다른 노란 빛으로 길가를 덮어주는 은행나무들을 보며 계절이 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국내 1호 나무 전문기자인 저자에게도 나무는 특별했다.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그의 눈에는 나무들이 ‘아름답’ 지만 지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천년을 산 거인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저자가 발로 뛰며 취재했던 아름답고 위태로운 노거수(수령이 오래된 거목)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Chapter 1 ‘나무 할머니 나무 할아버지’에서는 안동에 있는 천년기념물 은행나무, 회화 나무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이팝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고목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Ch 2에서는 도시 길가의 플라타너스, 포플러나무, 삼나무를, Ch3에서는 버드나무, 향나무, 팽나무 등 물가에 사는 나무들의 이야기가 써 있다. Ch4에서는 숲에 사는 나무, 그리고 마지막 Ch5에서는 사람과 나무를 담았다.
그 어느 나무 하나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가 없었다. 굳이 고르자면 나는 보라매공원에 남은 네 그루의 포플러가 인상적이다. 그 나무들을 주목해온 보라매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만든 ‘보초맘’의 활동과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원관리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나무들 중 가장 유명할 제주도의 비자림로 삼나무이다. 제2공항을 짓기 위해 3400그루의 삼나무가 베어져 나간 이 에피소드를 통해, 이렇게 이슈화가 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의 단체와 예술가들이 뭉쳐서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지 않는 정부의 대처에 놀랐다. 단순한 환경파괴, 생태계 파괴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마시는 지하수와도 연결되어 있는 숨골이 위치한 이곳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베어내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이는 대체 누구일까? 제주도는 이미 코로나 전에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유일한 천혜의 섬을 관광도시로 만들려는(어쩌면 이미 만들어졌을) 행정당국과 이익이 맞는 이들이 누구일까? 동시에 도시에서의 인공적인 공원의 모습과 아파트 내 산책로로 꾸며진 제주도가 상상되며 끔찍했다. 이렇듯 저자는 분명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나에게는 인류의 결과물인 현재의 세상- 정치, 사회, 환경이라는 시스템 속 오류가 읽히는 시간이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트리비어드가 사우론의 만행을 보다못해 간달프가 제안하는 동맹에 합류했듯 오늘날에 보이는 기후위기는 어쩌면 인간이라는 인류에 대해 대항하는 자연 동맹의 울부짖음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저자가 제안하는,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20~30살 된 가로수 한 그루가, 제 명대로 살아 수백 살짜리 나무로 커갈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선한 마음들이 모일 겁니다. 우리 대에 누릴 수 없는 혜택을 후손들에게 전달해줘야 한다는 긴 호흡의 사고를 하게 될 겁니다. 각종 제도를 바꿔내기 위해 민주주의가 발달할 겁니다. 인류가 가진 지혜와 기술이 총동원될 겁니다. 그렇게 도시가 바뀌고 숲이 살아날 겁니다.“(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