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오디세이아 1 - 그리스 여신들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
고혜경 지음 / 나무연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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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각의 렌즈는 가치의 무게를 바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는데, 헤라와 아프로디테가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한 내 생각이 그렇다.

신화의 캐릭터들은 인간의 고유하고 절대적인 특성을 따로따로 신격화해놓은 것들인데 예를 들면 아르테미스의 경우 공격성, 독립성이고, 헤스티아는 정서적 온기, 안전의 추구이다. 헤라는 질투심, 혼인관계의 집착, 아프로디테는 끊임없는 미의 추구, 매력과 유혹성, 찰나의 즐거움 추구 등이다.

헤라는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게 혼인의 서약을 포기하지 않는다. 제우스는 신,인간,요정 가리지 않고 바람을 피운다. 그런데도 헤라의 애티튜트는 ‘제우스, 난 너 아니면 안 돼.’이다. 그녀는 이런 여신이고, 그게 바로 그녀의 아이덴티티이다.

아프로디테의 사랑은 상대를 향한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한 몸짓이다.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다. 애인은 아레스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애티튜드는 ‘남자보다는…그냥 난 아름다운 내가 좋은 걸?’ 이다.
그녀는 이런 여신이고, 그게 바로 그녀의 아이덴티티이다.

p.216
여자란 성녀 아니면 창녀인, 내면의 여성상이 분열된 남성들도 상당하다. 전통적으로 아내의 (위치인 여자의) 덕목이라 간주하던 이미지는 끊임없는 노동자에 가깝다. 부지런하고,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알뜰살림 살림하고, 자녀들을 위해 무조건 헌신하고, 남편만을 섬기는 일부종사가 당연하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자랐으니 자신의 어머니를 처녀라 생각하는 성인 남자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내가 옮긴, 위 문장들은 책에 쓰여진 문장의 순서와 똑같지 않다.)

위의 아내의 이미지만 ‘진짜 아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프로디테 특질의 아내를 아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p.105
헤라는 올림푸스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아내로 규정하는 여신이다. 예술 작품에서 헤라와 제우스는 당당하고 수려하고 위엄 있게 묘사된다.

이렇게 상반된 캐릭터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두 여신의 캐릭터는 척을 지지 않으며 서로 불화하지 않는다. 책에서 두 여신을 별도로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여신들 이야기보다도 두 여신을 비교해 읽는 즐거움이 가장 컸다.

마치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의 마음이 어느 캐릭터에게 기우는지 느끼면서 읽으면 조금 더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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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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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나는 서술자의 온도가 묘사하는 대상의 매력과 장점을 거의 극대화해서 보여준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영화<타짜>에서 고니가 ‘그저 잘생기고 도박 잘하는 어린 놈’이 아닌, 처음 시작은 호구였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 좋은 타짜가 된, ‘얼굴 잘생기고 화투잘 치는데 성격도 멋있는, 갖고 싶은 남자’인 것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고니를 묘사하는 인물이 그를 사랑하는 정마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로 자기 사는 동네에 고니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혼한 누나 돈 훔쳐서 노름판에 빠진 놈’정도로 보지 않을까. 그가 도박판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여하튼, 그래서 서술자의 온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듯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녀의 생각에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p.148
요가나 악기 연주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을까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스스로 단 한 번도 그렇다고 확신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과연 그럴까. 그녀를 오해한 게 아니길 바라면서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그녀의 이야기는 신화와 전설,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가 없으면 쓸 수 없는 처절한 학습의 결과물로서의 이야기들이다. 큰 줄기의 플롯부터 인물의 심리까지 모두, 아주 깊은 사유의 산물이고 나는 이게 그녀가 학습한 것들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심리학을 전공했고, 카를 융의 사상과 불교철학에 정통한 그녀가, 자신이 연구한 부분들이 학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서술자의 심리학] 챕터였는데 옮겨보자면 이렇다.

p.202
그렇다면 서술자는 어떻게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알고 있는 걸까요? 창조의 과정이란 생각이 먼저고 나중에 종이나 화면으로 옮겨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글쓰기의 행위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자신에게 딱 맞는 목소리를 찾았을 때 책들은 스스로 글을 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적합한 목소리가 발견될 때까지 메모와 스케치를 반복하면서 몇 년이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태고의 시간들>의 경우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고, 매사를 꿰뚫어 보는 서술자는 짧고 간결한 문장, 성경 구절을 연상시키는 장을 선호했습니다. 덕분에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p.208
나는 이 책(낮의 집, 밤의 집)을 쓰면서 맛보았던 다양한 유형의 즐거움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나라는 심연과 벌이는 끊임없는 게임, 이것이야말로 글쓰기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장 짜릿한 희열이 아닐까요.

🌈 #도서지원_을 받았으나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민음사 #올가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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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이름도 잊히지 않게 - 여성 미스터리 소설집
서미애 외 지음 / 에오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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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소설 하나하나 다 재미있다.

영상화되기에도 완벽한 설정이다.
캐릭터 성격이나 인물 묘사, 도입부 흠잡을 데가 없다.

개인적으로 <까마귀 장례식>이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사고사로 위장되어 죽은 베트남 신부의 죽음을, 같은 동네 절친한 사이였던 베트남 여인이 집요하게 추적해서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인데 뭔가 <와이 우먼 킬>의 판권을 사서 한국 버젼으로 새롭게 리메이크한다면 에피소드로 들어가도 좋을 정도다. 한국적인 느낌+ 농촌이 배경인데, 희한하게도 개연성이 풍부하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세련되어서 읽는 내내 감탄하며 읽었다.

‘농촌이 배경인데 이렇게 서사가 안 촌스럽다고?’

이러면서. 한여름밤에 순식간에 읽을 수 있을 소설이면서, 중간중간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많아 너무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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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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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고 엄청 야한 걸 기대하신 분도 있을 거고,(저요!! 저요!!) 그러라고 작가도 이런 제목으로 지은 거 같은데 만약 제목 때문에 책을 고른다면 여러분은 낚이게 된다. 그렇다고 안 야하다는 건 아니고, 그런데 또 이 책에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가 야한 건 또 아니다(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마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같은 야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폭발하는 그런 소설은 아니지만 이 소설 속 야한 장면들은, 그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만든 야한 이야기’여서 그녀들의 못 다 이룬, 차마 해보지 못한 섹스 판타지가 들어가 있다.

여기서 그녀들, 이란 과부들이다. 사회적 금기 때문에 정숙하게 살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야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능 있는 여자들’. 웹소설 시장이 두 손 들고 환영할 ‘재능’일 텐데 아깝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야설클럽을 통해, 자신들의 ‘자연스럽고 폭발할 것 같은 욕구’를 이야기로서 분출하던 여성들이, 그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이후에 어떤 살해범을 찾아내고 잡아낸다는 것이다(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아무것도 스포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자살로 마무리했고, 그래서 자살로 묻힐 뻔 했지만, 결코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던 여자의 생을, 야설 쓰던 여자들이 찾아낸다.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야기 초반, 주인공이자 20대인 법과대학 중퇴생 니키가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부분과 동생 역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짐을 분담해주길 바라는 언니의 목소리를 그린 부분도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예전 같으면 ‘다들 가족끼리 싸우고 사는구나. 가족은 왜 이리 힘든 걸까.’ 하며 무겁게 읽혔을 텐데 ‘그래, 사실 각자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드러내다 보면 충돌 지점이 생기고, 그렇다면 감정이 겪해지는 게 당연한 거지.’로 읽힌다.

각자의 상황을 말하는 건 격한 감정이 표출된다고 해서 싸우는 건 아니다. 그냥 일시적으로 감정이 겪해지는 것이지.

참고로, 니키 속마음은 ‘사실 정확히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음. 뭘 목표로 해야하지? 어쨌든 지금 들어간 법대는 아닌 거 같아.’인데 어쨌든 장녀인 언니 민디의 목표는 ‘괜찮은 남자와의 결혼!’ 이라는 ‘전통적으로 어른들이 바라는 목표’와 부합하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엔딩이 무척 상큼하게 끝나는데 마치 영화관에서 기분 좋은 가족영화 또는 산뜻한 여름 로맨스 영화의 싱그러운 엔딩씬을 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빨리 읽히고, 재미있고, 중간중간 야하고, 무엇보다 기분좋게 책을 덮게 만들어주었던 책.

*출간 전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이나 매우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gimsieun20
인스타에서 좀더 자세하게 썼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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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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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꽤 유명한 시나리오 창작 수업을 듣던 때가 있었다. 그 수업의 종강 뒤풀이 때 강사님이 갑자기 자유 질문할 거 있으면 아무거나 하라고 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 쓰다가 막히는 부분 궁금한 거든 인생 상담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겠다고.

누군가가 수업 끝나고 한동안 쉬실 텐데 뭐하시고 싶냐고 물었다. 심오한 질문도, 공부 커리큘럼과도 무관한 질문인데 강사님이 생각보다 머뭇거리면서 솔직하게 말해도 되요? 하고는 다들 그렇다고 하자 대답했다.

-여러분들 글 거지 같은데, 그걸 어떻게든 읽고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고 나아지게 하는 게 제 일이긴 한데, 그런 글 읽으면 너무 스트레스예요. 본인이 생각해도 진짜 엉망진창인 글 쓴 사람 있잖아요. 그런 쓰레기 같은 글 말고, 진짜 잘 쓴 글, 플롯 탄탄한 좋은 이야기 그런 걸 제대로 읽는 시간을 좀 주고 싶네요.

<사라진 반쪽>이 어쩌면 그 강사님 취향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진짜 잘 쓴 글’, ‘플롯 탄탄한 좋은 이야기’.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구조를 잘 세워서 만든 건축물 같은 이야기.

📚
백인으로서의 베네핏을 항상 부러워하다가, 백인으로 살기로 한 하얀 흑인의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자매.

‘한 여자’가 사라지고 그녀의 진실을 찾기 위한 스토리는 오래 전부터 스토리텔링의 인기 있는 소재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화차>가 있고, 최근 방송중인 <안나>도 주인공이 부유한 사람인 척을 해서 겪게 되는 사건들과 그 인물의 심리묘사를 그린다는 점에서 <사라진 반쪽>과 같은 계열로 볼 수 있겠다. 원하는 삶을 갖기 위해 끊임 없이 죄책감 없이 거짓말하는 여자 이야기로는 <애나 만들기>도 떠오른다.

📒
책에는 데지레와 스텔라 두 자매가 나온다. 학생인 둘에게 엄마는 어느날, 고등학교는 그만두고 이제 일을 하라고 명령한다. 그동안 혼자서 세 식구를 먹여살려야 했던 엄마로서는 더이상 생계라는 가혹한 짐을 혼자 지고 있을 수 없어서 한 명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꿈 많은 소녀였던 둘은 엄마가 명령한 삶에 승복할 수 없었고 이곳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며 어느날 함께 가출한다.

스텔라는 함께 도망친 그곳에서 얼마 안 있어 완벽하게 백인이 되기 위해 언니인 데지레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백인인 척을 하여 취업도 하고, 결과적으로 부유한 백인남자와 결혼도 성공한다. ‘백인인 척을 한 덕분에’ 부유하고 다정한 백인남편, 좋은 집, 예쁜 딸, 대학교수지위(이건 그녀의 노력이지만 그녀가 검은 흑인이었다면, 백인으로 보이는 지금과 똑같은 루트로 교수직이 주어졌을 것인가)를 갖게 된 스텔라. 백인의 베네핏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스텔라. 그러면서 죄책감과 불안을 느끼는 스텔라.

14년 후, 데지레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딸과 함께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그에 비해 (잘 살고 있는) 스텔라는 흔적을 알 수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던 스텔라를 20년이 훌쩍 흐른 뒤에 데지레는 뜻밖의 상황으로 만나지만, 이제 스텔라는 자신의 자매였던 예전의 스텔라가 아닌,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백인으로서의 스텔라가 되어 있었다. 백인이기에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분은 데지레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좀더 공감이 가고 피부색을 바꾼 선택을 한 스텔라에게는 거리감이 든다고 하면서 독자에 따라서 두 사람에 대해 반대의 감정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역자의 추측처럼 스텔라에게 좀더 공감이 되는 부류였다.

우리는 문학작품이나 실제 뉴스들을 통해 ‘옳은 선택이나 훌륭한 선택을 하고’ 그 댓가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경우를 본다. 예를 들자면 흑인들이 백인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기를 바랐을 때, 흑인들이 흘려야 했던 수많은 피의 역사를 알고 있고 그래서 의문이 든다. 옳은 선택은, 그 자신의 몸에게도 옳은 선택일까 하는.

데지레의 삶이 훨씬 더 굴곡이 많았고 스텔라는 끊임없는 거짓말 덕분에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스텔라의 삶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다면 인생은 그걸로 된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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