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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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소설을 만났다. 많은 작가들이 열심히 ,잘 쓰고 계시겠지만, 요새 들어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그런 책을 잘 못만났다. 흐음, 하고 읽다가 끝이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문장도 그저 그렇다는 느낌(주관적인 내느낌)에 끝까지 읽지 않거나 했는데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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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포수 이야기 낭만픽션 2
구마가이 다쓰야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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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쩌면 진짜 날것의 이야기. 원시의 삶이 남아있는 일본의 속살을 엿본 기분이다. 곰 사냥꾼의 숙명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갖다 바친 남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곰을 죽이면 비가 온다. 마타기에게 전해지는 전승을 충실히 지키려는 듯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p.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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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포수 이야기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우연히 이 소설을 교정을 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교정보다, 이 소설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딱히 그런 게 있을 리 없지만 나에게는 일본 소설= 장르 소설이라는 편견이 조금 있는 편이었다. ‘빙점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등의 정통소설도 분명히 있는데도 여전히 나에게 일본 소설은 장르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현재 많이 번역되는 일본 소설들이 그러한 부류가 많아서 일수도 있고. 아무래도 인기 있는 일본 장르 소설들이 많은데 그들의 색깔을 내가 좀 확대해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흔히 요즈음의 인기 있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리를 위해 소설의 재미를 위해 아주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 살인이라는 소재인데, 이 소설은 살인 사건, 혹은 큰 줄거리가 될 만한 폭행 사건조차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싸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님에도 요새의 영화나 소설들은 쉽게 그런 사건들을 설정하고는 한다.

 

신기한 게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딱히 누굴 미워하는 게 없다.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막는 사람도 없다. 내가 이게 신기한 이유는 모든 강력한 서사에는 안티 히어로, 라고 할 만한 누군가가 있어서 주인공의 곁에서 죽도록 인생을 방해하는 인물이 있어야 이야기는 재미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없다.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은 방해하는 무언가(그것이 사람이든, 제도이든)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꽤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데 그런 나쁜, 절대악 같은 것이 없다. 이상해, 이상해, 하면서 계속 읽었다. 약간 사냥꾼판 원피스 같기도 하달까. 물론 만화보다는 훨씬 많이 현실적이고 생생하긴 하지만, 주인공을 괴롭히는 어떤 놈도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거나 그렇다.

 

주인공 도미지는 사랑하는 여자 후미에가 있지만 그녀의 아버지의 반대로 혼인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녀의 뱃속엔 둘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녀와 함께 자신의 고향을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사랑 앞에선 한 조각 부끄러움 없던, 주인공 도미지와의 밤을 보내기 위해 집 앞 감나무에 아버지의 부재를 알리는 표식까지 해줄 정도로 그와의 사랑에 적극적이었던 정인 후미에는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너와는 혼인할 수 없다며 그와의 도피를 거절한다. 그 순간 그는 엄청난 분노를 느끼기보다, 그녀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그리고 함께 느꼈던 수많은 떨림과 많은 밤들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생각하며 마음 한 곳이 텅 비는 것을 느낀다.

도미지는 후미에를 임신시킨 벌로 고향을 떠나 광산으로 떠나게 된다. 집안 대대로 마타기(곰 사냥꾼)이었던 도미지는 탄광에서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인생을 확 바꿀 사람일 수도 있고, 그냥 그래야 했던 인연이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 중 인상적인 남자가 우메조다. 우메조는 바깥 세상에서 보자면 늙고 병든 퇴역광부다.

도미지가 업어서 탄광에까지 데려다 줄 정도로 그는 기력이 없는 늙은이다. 도미지가 우메조를 업고 탄광까지 걸어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보편적이면서도, 생생하다.

p.181

일어서 보니 생각보다 가벼워서 놀랐다. 우메조는 뼈와 피부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사냥한 곰을 업을 때보다 훨씬 가볍다. 이 정도라면 오자와의 함바까지 남은 이 킬로미터를 중간에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걷기 시작한 도미지의 등에서 우메조가, “미안해, 젊은 친구하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조금 전의 비열한 말들은 자취도 없었다.

어쩌겠어요, 산속에 버리고 갈 수도 없고,” 도미지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없이 걸었다.

늙은 아버지 어머니를 이렇게 업어 드릴 기회가 있을까, 영원히 없겠지, 하고 생각하니 못 견디게 쓸쓸했다.

 

도미지는 고타로의 누나인 이쿠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걸림돌은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이쿠는 창부로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마는, 한동안 그녀도 그 삶을 즐기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성정의 여자였다. 그런 여인을 단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삶이었다, 라고 생각하고, 안쓰럽다, 고 생각하며 껴안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녀와 결혼을 하고 삶을 꾸린다. 나중에 이쿠와 후미에는 도미지를 놓고 말없는 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직접 눈으로 읽는 것이 더 매력적일 것 같으니 비밀로 남겨놓는 편이 좋겠다.

 

마지막이 될 곰과의 전투에서 도미지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p.551

곰을 죽이면 비가 온다. 마타기에게 전해지는 전승을 충실히 지키려는 듯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진눈깨비 섞인 차가운 비가 볼을 때리자 도미지는 의식을 찾았다.

죽은 곰 옆구리에 자신이 등을 기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력을 잃었나 하고 한순간 당황했다. 희미하게 떠오른 숲의 윤곽을 포착하고 이미 밤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떨어지는 빗방울로 목을 축이려고 입을 벌렸다. 왼쪽 볼이 아교로 붙여놓은 것처럼 뻣뻣해서 뜻대로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한 곰이 안내한 대로 마을을 따라 내려온다. 마치 곰은 정령이라도 되는 듯이 그를 인도한다.

생생한 듯한 꿈을 꾸는 이야기, 라고만 표현하기엔 미흡한 느낌이다. 이것이 심장이 뛰는 느낌의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두자. 정확한 느낌은 읽은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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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1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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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다행의 후손들

 

 

 

 

 

 

우리가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기록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슈퍼 화산이 잠잠해지고 나서부터이다.

수십, 수백 개의 분화와 맞먹는 엄청난 마그마가 분출되었던 시베리아와 데칸 고원, 아미산, 대서양의 중앙 해령들. 우리가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정말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시절에 생기지 않았을까?

 

그 시절, 뜨거운 마그마 덩어리였던 지구.

지구도 인간과 똑같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생명체처럼 몸뚱이 한 가운데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달은 지금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고, 그래서 그 시절의 바다는 숨을 쉬듯 밤낮으로 수면이 오르내렸다. 달이 가까운 만큼 자전이 빨라서 하루는 6시간에서 7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지구가 품고 있는 심장 같은 마그마는 우리도 그렇듯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아 멋대로 끓어오르고 그 들끓음으로 땅을 여기 저기 찢어놓았다.

그랬던 지구가 조금이나마 침착해지고 표면이 촉촉해진 것은 40억 년 전.

첫 시작은 미미했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유전자만을 가진 채 종의 안팎을 불문하고 서로 유전자를 공유하며 살아온 생물들을 원핵생물이라고 한다. 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크기이지만 그들은 몇 십 억년을 그들 나름대로 다양성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진화는 아주 다른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낸다. 원핵생물, 세균, 고세균들을 제외한 모든 동물, 식물들을 아우르는 진핵생물이 생겨난 것이다. 이름만으로는 아마 원핵생물이랑 진핵생물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진핵생물은 지구에 산소가 남아돌기 시작할 무렵 산소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천재적인 세균이 다른 고세균의 세포에서 공생을 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공생자이자 세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구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지금은 미토콘드리아라고 부르는 이 존재가 해낸 일은 대충 이러하다.

 

 

몸 안에 터보 엔진이 장착되다 

일단 생명체들은 체온을 유지하고 활동을 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이러한 에너지를 ATP의 형태로 저장해 쓴다. 그런데 원핵생물들이 포도당 한 분자를 분해해서 얻을 수 있는 ATP는 겨우 2분자. 그러나 포도당을 미토콘드리아에 제공하면 미토콘드리아는 ATP34분자나 만들어낸다. 17배의 고성능 에너지 생산자를 몸 안에 생기게 한 것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제공하는 풍부함으로 진핵세포는 몸 안에서 더욱 더 다양한 기관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미토콘드리아가 ATP생산을 대행함으로써 생기는 이점은 또 있다. 세포벽이 필요없어진 것이다. 덕분에 세포막을 통한 다른 기능이 발전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제 진핵세포는 세포막을 통해 포식행위를 할 수도 있게 되었고 여러 가지 물질을 분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세포와의 군집을 통해 다세포생물로의 진화 가능성도 열어젖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입맛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진화적 폭발이 벌어지다 

그리하여 캄브리아기. 캄브리아기에는 갑자기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생물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새로운 감각 기관을 갖춘 포식자의 등장이 캄브리아기이 진화적 폭발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전까지는 해류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떠다니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동물성 플랑크톤. 그리고 이들을 섭취하는 생물들뿐이었다.

그런데 플랑크톤이 아닌 다른 다세포생물을 포식하는 생물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왜 갑자기 그들의 입맛이 다른 다세포생물들을 먹고 싶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다세포 생물들은 당황했다. 별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삶을 살았던 생물들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고 굴을 파기 시작했으며 몸의 바깥을 딱딱한 갑옷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식자, 피식자 모두 갖가지 감각 기관을 발달시켰다. 소리를 듣는 청각기관, 물의 흐름을 느끼는 촉각 기관, 특정한 화학물질을 파악하는 후각과 미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각까지.

시각은 다른 감각기관들과 달리 속이기 힘든 부분이다. 청각은 다른 소리에 묻힐 수 있다. 후각이나 미각은 다른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각은 속이기 힘든 부분이었고 그만큼 발달하기 힘들었던 감각기관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시각도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변신하고, 잡아먹기 위해 발전하는- 덕분에 여러 가지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진화했다(그들은 고생했겠지만).

이 시기 대표적인 생물은 누가 뭐라 해도 삼엽충이다. 그리고 삼엽충처럼 딱딱한 껍질을 가진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생물이 괴상한 새우라는 뜻의 아노말로카리스이다. 큰 아노말로카리스 중에는 그 크기가 2m인 것도 있었다. 이 시기 생물들이 대부분 1,2cm에서 20cm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어쨌든 이때까지의 생명들은 모두 바다에서 탄생한 것이다. 육지에선 살 수가 없었다. 태양 자외선이 너무 강했던 탓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바닷속 생물들이 이루어놓은 광합성 활동이 수십억 년 동안 대기에 쌓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 결과물은 성층권에 제대로 된 오존층이 되었다. 그 결과로 해안가나 강변, 호수에 육상 생물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육상생물들이 등장한 시기를 실루리아기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육지에 뚝 하고 완전히 새로운 종들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수많은 포식자들이 있는 바다에 지친, 그리고 육지에 적응할 기본적인 기능을 갖춘 생물들이 육지로(정확히 말하면 해안가, 강변, 호수와 육지 사이 근처) 올라왔다. 그들에겐 육지가 경쟁자 없는 천국이었을 것이다. 마치 지긋지긋한 막중한 세금을 피해 도망가는 백성들처럼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 도망을 친 셈이다.

몇몇 생물들이 도망을 친 이후 바다 속에서는 계속해서 경쟁이 일어났다. 가장 큰 패배를 맛본 것이 바다전갈이다. 바다전갈은 원래 몸 크기가 2mrk 넘는 종류가 있을 정도로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였다. 하지만 물고기들, 비늘로 뒤덮은 몸에 쌍으로 된 지느러미, 턱과 이빨을 가진 그들을 이길 수 없었던 전갈류는 차츰 작아졌고, 결국 바다에서 민물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어류는 이때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그들의 시기에 붙인 이름은 데본기이다. 실루리아기 후기부터 나타난 이빨 난 물고기들은 데본기에 그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갑피어, 판피어, 상어, 극어류 등. 다양한 형태의 어류들이 바다 속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데본기의 멸종으로 바다 생물 중 79~87%가 멸종했다. 다른 시기의 멸종과는 다르게 이천만 년에 이르는 긴 시간에 걸쳐 나타난 멸종이기도 하다. 그리고 워낙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멸종이라 멸종의 원인이 가장 분명하지 않은 멸종이기도 하다.

 

그리고 석탄기. 이 시기부터 페름기는 지구 역사상 가장 따뜻하고(지구에게나 뭇 생명들에게나)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육지의 넓은 면적에 커다란 식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고 아트로플레우라(무척추동물인데 지네처럼 생겼다.), 거대한 잠자리 메가네우라(70cm의 몸길이에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2m였다), 길이 70cm의 전갈, 50cm의 거미 등 거대한 절지동물들의 천국이었다.

이 당시 이들의 큰 몸집의 이유는 높은 산소 농도 덕분이었다.

생물이 죽으면 세균에 의해 분해가 되고 그 중 탄소 성분이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 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나무들은 죽고 나서도 늪지에 묻혀 분해되지 않았고 결국 이산화탄소가 생성되지 않고 산소 농도가 점점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풍부한 산소 속 세계에서 양막 척추동물이 본격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양막 척추동물은 에서의 삶을 안쪽에서만 살고 나온다. 양막 척추동물들은 알 안에 막을 만들고 알 속에서 크는 배아가 물 속 같은 환경-포식자가 넘볼 수 없는-을 누리게 해 주고, 난황낭으로 이 배아가 커나갈 때까지 영양을 공급해준다. 이러한 번식 방법은 많은 에너지와 힘을 필요로 한다. 물고기나 개구리가 한 번에 수백 개 많게는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 데 반해, 새나 도마뱀은 알의 갯수가 많아봐야 몇십개로 줄어들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 결국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캄브리아기는 알고 있었지만 실루리아기, 데본기, 카보니페로스기등은 처음 들었다. 그걸 알았다고 내 삶이 크게 변할 리도 없고 지식이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킬 리는 더더욱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와 지도들을 곁들여 우리에게 대화를 거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를 가르치겠다거나 하는 것을 느낄 수도 없었다. 내가 적극적인 학생처럼 귀 기울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힘들게 오랜 시간의 터널을 거쳐 완성된 지금의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가, 우리 모두의 터전을 망치고 있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인간이 멸종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지구가 전부이지만 지구에게 우리가 전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멸종에도 그 후의 삶이 있듯 우리의 멸종 이후에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후가 없을 리는 없다. 한 번도 멸종 이후가 없던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좀더 늦추면서, 진화의 시작인지, 아니면 완성일지 모르는 우리의 눈을 통해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노력하길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들이 바라는 것은 아마도 그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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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가난하게 살까봐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23살이었나.24살이었나. 그때 당신의 글을 보고 생각했죠. 평생 가난하게 살다 죽더라도 당신이 내게 주었던 느낌을 제가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다면 가난해도 작가로 사는 게 행복할 거 같다고 말이에요. 굿바이. 그곳에선 고독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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