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 인류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들의 노트
이재영 지음 / 한티미디어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글쓰기는 우리를 성숙시키고,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의미있는 어떤 종류의 개념을 도출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냉정한 글쓰기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일정한 장소를 정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일정한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습관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바쁜 현대인의 삶에 수없이 많은 책과 문서, 보고서, 문자들이 난무하고, 여기저기 사인을 하다가 세월을 보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만의 흥미로운 주제를 놓고, 자신의 노트를 만들어 꼼꼼히 기록해가는 정성이 필요하다. (중략) 말하기와 달리 글쓰기는 도구가 요청된다. 도구를 사용한 글쓰기는 노동의 의미가 강하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개념을 그리워하는 글쓰기는 실락원 이후에 신이 내린 형벌을 감당하는 하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밤잠을 쪼개가며 글을 쓴 위대한 문호들의 삶을 굳이 살피지 않더라도, 누구나 밤을 새워가며 쓰고 또 찢어버린 종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므로 "언제인가 마음이 동하면" 글을 쓰리라 결심할 것이 아니라 "당장 노트를 사서"오늘부터 쓰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시간이 지나면 글은 스스로 생명을 갖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p90, 91

 

 

디지털 시대의 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공학박사.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풀어놓을 것 같아 다 읽고도 며칠 더 묵혀두었다. 오늘도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앉아 키보드로 타이핑을 시작한다. 나는 노트 매니아이다. 당장 쓸 노트도 아니면서 사 두는 경우가 많다. 다이어리만 해도 몰스킨, 엠엠엠지 다이어리, 공책 다이어리, 아트북, 스케치북, 스프링 노트, 대학 노트 등등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종이 노트의 사용 시간이 줄어들어서 이제는 옛 기록의 흔적만 있는 경우도 있다.(그나마 매일 들고다니는 몰스킨 리포터만 바쁘다) 될 수 있은한 컴퓨터 창을 3개 이하만 띄어놓고 작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메신저창까지 해서 멀티태스킹에 대한 압박은 나에게도 강하다. 저자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잠잘 때 어두운 방과 푹신한 침구가 필요하듯이 글을 쓰거나 새로운 공식을 생각할 때도 그에 걸맞는 도구와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종이에 생각을 키우는 것이다. 종이에서 자라는 생각은 진실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양이 확실해진다."(p101)
 

 

단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기 위해 하루 종일 하나만 생각하는 선택된 환경에 처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바쁜 현대인에게 하나만 생각한다는 것은 아주 원시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멀티 태스킹, 멀티 플레이어가 각광을 받는 시대이다. 이러한 멀티 기능이 마치 우리의 두뇌가 진화되어가는 결과인 냥 생각하게 한다. 컴퓨터 화면에 서너가지 일을 동시에 띄우고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종종 마치 해군 제독이 되어 이리저리 명령하는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의 한계는 분명하다. 아름다움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깊이 있는 내면의 숙성을 위해서는 고대의 선배들이 사용한 방법이 유효하다.

 

한 권의 노트를 펴는 순간, 그리고 자신의 사상이 육필로 나열된 순간 내면으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그곳에서는 순간적으로 고독이 엄습하며, 한 가지 주제가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p98. 99


그리고 인터넷은 정보가 넘쳐난다.(얼마나 식상한 표현인가) 남들이 만들어놓은 정보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독창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일링하고 출력(프린트 한 후 노트에 붙이기)해야한다. 스쳐가는 기사와 논문, 텍스트들이 모두 내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라. 가급적 쓸데 없는 클릭을 줄이고 인터넷 항해를 계획없이 하지 않을 것이다. 제 3부에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그들-대부분 과학자-의 노트' 비법이 공개되어 있다.(육필원고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뉴턴의 일생에서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노트'들이다.(p145)

제 4부에서는  <열정과 기질>의 하워드 가드너의 이론을 많이 빌리고 있다. 그래서 살짝 지루해질 찰나에 비운의 천재, 전혜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반갑게 펜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쓴다. 결론이 조금 빈약하다. 오히려 전반부가 힘이 있는 책이다. 오늘의 독서메모는 여기까지. 이제부터 종이 노트에 내밀한 나만의 일기를 기록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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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여자가 서른 살 여자에게 - 여자의 인생을 위로하는 47가지 조언
데버러 콜린스 스티븐슨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웅진윙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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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과도기에 놓인 여자들이 의자 하나만 갖고 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결과물로 책이 출간되고 우리 독자들은 각자가 정한 독서 공간에서 이 책을 읽는다.  당신은 이 겨울에 누구와 수다를 떨고 싶나요?(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혹은 차를 마시고 싶나요?  

 나는 이 책의 저자 4명의 언니와 도란도란 둘러앉아 마시고 싶다. 매일매일이 질풍노도인 내가 자꾸 용기와 자신감을 잃어간다. 30살이 가까워 올수록 말이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에세이에 썼다. 굳이 소설쓰는 여자가 아니라고 해도 우리 여성들은 더 이상 돈과 경제관념에 눈 뜬 장님처럼 있으면 안된다. 나의 경험과 수많은 여성들과의 대화를 정리해보면 하나같이 돈에 무디다. 

  ‘제발 영악해져라’고 따끔한 충고를 하는 언니들의 말을 들어보자. “대부분의 여자가 경제를 수학과 결부시키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공포가 돈을 벌고 관리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희망 연봉을 말하라고 할 때도 “연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라고 이상적인 답변을 늘어놓기 일쑤다.

  당신도 이 책의 저자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통해 지금 혹은 미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용기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고 행동을 개시하려는 의지를 다질수록 실천하기가 더 쉬워진다.  생각보다 밑줄 그을 것이 많아 책이 지저분해졌다. 그만큼 든든한 조언자를 얻은 것 같아 마음만은 가볍다.


 

용기는 쓸수록 단단해지는 근육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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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금지된 소설들에 대한 회고
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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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공화국에서 금지된 것들.

ㅡ 파티, 사람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사랑에 빠지는 것, 손을 마주 잡는 것, 립스틱을 바르는 것, 공공연하게 큰 소리로 웃는 것, 그리고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 등.

  

언니 언니, 이란에서 어떤 여자 세 명이 잡혀갔는데 왜 그랬는줄 알아?

벤치에 앉아서 사과를 먹고 있었는데, 너무 요염하게 먹었다는 이유로 잡아갔대.

언니 언니, 이란에서는 아이스크림도 마음대로 못 먹는데,

언니 언니, 이란에서 여성은 가수도 될 수 없대, 목소리도 성적으로 자극하는 것이기때문에 감추어야한다는 거야.

 

언니는 그 동떨어진 나라 얘기 좀 그만 하라고 했다. 이 책은 이웃 '춘희'님의 추천으로 오래전에 빌려두었는데, 두꺼운 책이라서(난 책 두께에 연연하지 않는 무딘 사람이다) 늦게 읽었다기보다 책의 분위기가 좋아서 음미하면서 읽느라 거의 4주에 걸쳐서 읽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나피시 교수는 한 마디로 고등교육을 받은 깨어있는 이슬람 여성이다. 그녀는 스위스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영문학 학위를 따고, 테헤란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 소설의 힘을 누구보다 믿고 있는 나피시 교수는 혁명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이란에서 금기시 되었던 소설(롤리타, 위대한 개츠비,오만과 편견 등)들을 가르치고 토론을 했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헨리 제임스 작품들도 다루고 있다. (지독히 더 혼자일 때 다시 읽고 싶은 소설들)

 

그녀의 거실에서 토론하고 차를 마시는 7명의 젊은 이란 여성들.

그녀들은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려 보지 못한 여성들이다.

그래서, 세상을 보여주는 소설은 더 절실하고 간절했다.

 

나피시 교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책과 공책을 흐트려놓고 앉아서 수업 구상을 하느라 열심이었다. 외국 서적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어렵게 책을 구해 읽고 해지고 찢어질 때까지 읽고 연구하는 그녀. 상상만 해도 달려가 질문을 건네고픈 교수의 모습. 아니면 그녀의 질문에 답하고 싶은 충동.

 

"최고의 도덕성 형태는 자기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한다. 무슨 말일까.천천히 곱씹어 본다. 그녀는 아주 위대한 상상력의 산물들은 우리들 자신의 집에서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 방을 둘러보았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이 목록들은 최고의 소설이 항상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문제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책 220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소설은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나는 강의 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말했다. 소설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육감적인 경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세계로 들어가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그들의 숙명에 연루되지 않으면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소설의 핵심입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소설에서 읽었을 때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다. 공감이 없는 글은 죽어 있기에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녀가 믿었던 소설의 힘은 금지된 것들로 인해 숨쉴 수 없었던 이란 여성들에게 산소마스크였으며 그녀 자신의 삶을 신나게 해주는 장치였던 것이다. 책은 두껍고 할 말은 많지만 블로그 서평은 앞으로 간명하게, 독서노트는 질리도록 길게 쓰자는 것이 올해의 모토이기에 여기서 그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포근하게 했던 풍경이 떠올라 적으면서 상상해 본다.

 

안개 자욱한 창문

김을 뿜어내는 커피잔

우지직우지직 소리를 내는 장작불

나른한 슈크림(멋진 표현)

두꺼운 양털 스웨터

연기와 커피와 오렌지가 뒤섞여 있는 냄새

 

....나열만으로 흡수되는 무엇이 나를 그녀의 거실 한 복판에 있게 한다.

책 속의 토론, 작품 재판 한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듯 하다.

과연 서울에서 롤리타를 읽으면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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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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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표지가 눈에 띤다.
목감기가 코감기로 옮겨가고 있는 몽롱한 상태로,
나는 '할' 일이 있음에도 이 책의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낼름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하.루.키 스럽다."('회사'라는 곳, 꼭 '세계의 끝'같다.그밖에 그대로 나오는 브랜드명들_집나와 헤매기 등등)

다시 읽고 난 느낌.
 
"비참하다."

 

물론 김영하답게 이 긴 장편을 휘리릭 써대는데 큰 걸림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냥 질투심에 그래보인다구)
<검은 꽃>이나 <빛의 제국>과는 달리 일인칭 화자가 전보다 덜 '쿨'한 척하며 오히려
비굴한 자기비하를 서슴치 않고 한다.(마치 우리 세대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88만원 세대로 낙인찍힌 자격지심인지도.)

이 책을 빌려오고(남자친구네집에서 업어왔다), 읽고, 생각하고,막상 남자친구와 못하는 술 하면서 말할려고 하려니 이 말 저 말 두서없이 나와버려서 내화되지 않은 말은 하지 말자는 주의가 자꾸 무너져버려서 후회가 된다. 역시 글로 정리한 다음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나로 돌아가야한다.

(힘들어하는 이에게 힘을 주고 싶다. 간절히) 

현실은 현실이지만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4년생에 모든 것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다.
사랑에 대한 거리유지라던지 돈보다는 이상(흔히들 이야기하는 꿈)이 아니겠는가하는
젊은이다운 객기, 모두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해문학상 수상작 <빛의 제국>보다 <퀴즈쇼>에게 별을 한 개 더 주고싶다.
이유는 분명하다.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아서 뜨끔했다. 이런 거 좋아한다 나는. 마치 미국인들이 자기 대통령 비판하기를 취미로 갖고 있는 것처럼.

퀴즈쇼에서는 "몰라도 아는 척하고 알아도 더 아는 척하는 세계"가 바로 내가 놀고 있는 이 사이버 공간이 아닌가 싶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가장 피곤했던 것은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으면 차례대로 밥과 반찬을 준다. 하루의 일과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육군본부와 사단 같은, 나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 높은 곳에서 정한다.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군대에서는 아무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회로 돌아오자 세상은 선택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좀 가려고 해도 먼저 버스냐 지하철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배스킨라빈스든 스타벅스든 계산대 앞에서는 늘 뭔가를 골라야 한다. 부라보콘이냐 월드콘이냐만 결정하면 됐던 시절은 가 버린 것이다.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들에게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p67)


 

선택해야 하는 순간, 선택을 미루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것은 무엇일까.
김영하의 글 속에는 아주 많은 코드들이 숨어있어서 벅찰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이 '잡채'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책도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많은 것은 그때문이다.
핸드폰, 인터넷(구글링, 이메일...), 편의점 알바, 헌 책방, 텔레비전의 퀴즈쇼.
핸드폰의 전원을 꺼 버리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첫 데이트 후 문자메시지 하나 없는 상대방을 기다려본 이들은 알 것이다.
몇 초면 보낼 수 있는 것을. 괘씸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나싶기도 하고.

아, 이러다간 정말 미쳐버리겠구나 싶기도 하고.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
제품도 레고블럭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
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앙.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p193)

 

씁쓸하고도 늘 우리가 사회 기사면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 나도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티비를 보고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2002년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고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다양한
교육을 받았으며 문화적으로 세련되었고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라났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p194) 작가의 말과 나의 말이 겹치고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놈의 대기업들은 채용은 안 하고 대학에 건물만 지어주고 앉아 있잖아. 누가 건물 필요하대?" 작가의 이력때문인가 나는 배부른 자의 아는 척으로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전보다 내 이해심(마음의 여유로 순화)이 줄어든 것이 분명하다.

 

나의 글이 뒤죽박죽 길어지고 끝이 결국 헌 책방 '어제의 책' 아르바이트생으로 머물고 있는 주인공 민수가 지원의 말처럼 다 잘 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대체 장군, 탱고, 유리, 메두사 걔네는 뭐야. 꿈이야 결국 그 모든 자기앞 수표도?. 하루키한테 물어보고 싶다.

 

나도 백지 위에 말들을 적어본다.

 

돈이 필요해.
그럴려면 직장을 구해야지.
아니야, 직업을 가져야하는 거야.

 

문학평론가는 그럴듯하게 (모든 평론이 그렇지만)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라는 멋진 글로 이 책을 평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양극화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는 현 MB정부에서 내가 살아갈 만한 철학은 보이질 않는다.

 

작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자 했던 디오게네스의 윤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나보다.
우리는 그저 이카루스의 날개일 뿐인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면 속을 수밖에 없는 환경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것일까.
조용히 '사보타주'해봤자 이제는 손해만 보는 세상 속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자기 내면에만 갇혀있으면 오타쿠라 손가락질 당하는 그런 세상 아닌가.

많은 질문을 던져놓고 작가는 멋진 집에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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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범우사상신서 19
콜린 윌슨 지음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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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저자가 내 나이보다 젊었을 때인 24살에 써 낸 기념비적인 평론집이다. 이 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콜린 윌슨의 다른 책은 ‘문학과 상상력’(속 아웃사이더)이외엔 접하지 못했지만 속편이 나올 정도로 이 책은 매력적이다. 특히 문학 속 아웃사이더를 현란한 지적 비유로 물 흐르듯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어도 흥미를 느낄 만하다. 자신이 아는 작가나 작품 부분만 따라 읽어도 된다. 그리고 읽지 않았던 책에 대한 저자의 비평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대개 문학을 하는 작가와 그 작가가 창조해낸 등장인물들은 비정상, 즉 사회로부터 튕겨나간듯한 ‘아웃사이더’인 경향이 많다.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 사르트르의 로깡땡, 헤밍웨이의 크레브스, 제임스 조이스의 스티븐 디덜러스, 헤르만 헤세의 싱클레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과 알료샤 등 방대한 작가와 작품들을 나열하며 실존주의적이고 낭만적이며 비전적인 아웃사이더들의 세계를 낱낱이 파헤친다.


 

인간은 자기가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웃사이더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만나게 되고 종국에는 도스토예프스키까지 오게 된다. 자유를 알지 못하는 우리 속 사람들과 자신 역시 감옥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서 탈출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세상이다. 인생이 무상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며 그것에 신경쓰고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이 품은 삶의 무상감은 자기를 보다 강인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생명력이 강할수록 자유의 가능성은 배가 된다는 사실, 나는 이 책의 아웃사이더들을 통해 다시 배운다.


 

문학 속 아웃사이더 외에 이 책에서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고흐는 많은 양의 편지와 회화를 남겼고 그것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아웃사이더적인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고흐는 우리에게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문학 속 인물들도 모든 것을 알아버린, 그래서 다시 암흑 속인 우리들에게 친숙한 이방인들이다. 본질을 알아버린 인생은 고통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로 아웃사이더들의 사명이자 세상과 자신을 위한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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