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감각적인 표지가 눈에 띤다.
목감기가 코감기로 옮겨가고 있는 몽롱한 상태로,
나는 '할' 일이 있음에도 이 책의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낼름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하.루.키 스럽다."('회사'라는 곳, 꼭 '세계의 끝'같다.그밖에 그대로 나오는 브랜드명들_집나와 헤매기 등등)

다시 읽고 난 느낌.
 
"비참하다."

 

물론 김영하답게 이 긴 장편을 휘리릭 써대는데 큰 걸림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냥 질투심에 그래보인다구)
<검은 꽃>이나 <빛의 제국>과는 달리 일인칭 화자가 전보다 덜 '쿨'한 척하며 오히려
비굴한 자기비하를 서슴치 않고 한다.(마치 우리 세대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88만원 세대로 낙인찍힌 자격지심인지도.)

이 책을 빌려오고(남자친구네집에서 업어왔다), 읽고, 생각하고,막상 남자친구와 못하는 술 하면서 말할려고 하려니 이 말 저 말 두서없이 나와버려서 내화되지 않은 말은 하지 말자는 주의가 자꾸 무너져버려서 후회가 된다. 역시 글로 정리한 다음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나로 돌아가야한다.

(힘들어하는 이에게 힘을 주고 싶다. 간절히) 

현실은 현실이지만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4년생에 모든 것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다.
사랑에 대한 거리유지라던지 돈보다는 이상(흔히들 이야기하는 꿈)이 아니겠는가하는
젊은이다운 객기, 모두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해문학상 수상작 <빛의 제국>보다 <퀴즈쇼>에게 별을 한 개 더 주고싶다.
이유는 분명하다.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아서 뜨끔했다. 이런 거 좋아한다 나는. 마치 미국인들이 자기 대통령 비판하기를 취미로 갖고 있는 것처럼.

퀴즈쇼에서는 "몰라도 아는 척하고 알아도 더 아는 척하는 세계"가 바로 내가 놀고 있는 이 사이버 공간이 아닌가 싶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가장 피곤했던 것은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으면 차례대로 밥과 반찬을 준다. 하루의 일과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육군본부와 사단 같은, 나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 높은 곳에서 정한다.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군대에서는 아무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회로 돌아오자 세상은 선택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좀 가려고 해도 먼저 버스냐 지하철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배스킨라빈스든 스타벅스든 계산대 앞에서는 늘 뭔가를 골라야 한다. 부라보콘이냐 월드콘이냐만 결정하면 됐던 시절은 가 버린 것이다.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들에게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p67)


 

선택해야 하는 순간, 선택을 미루고 싶을 정도로 힘든 것은 무엇일까.
김영하의 글 속에는 아주 많은 코드들이 숨어있어서 벅찰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이 '잡채'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책도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많은 것은 그때문이다.
핸드폰, 인터넷(구글링, 이메일...), 편의점 알바, 헌 책방, 텔레비전의 퀴즈쇼.
핸드폰의 전원을 꺼 버리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첫 데이트 후 문자메시지 하나 없는 상대방을 기다려본 이들은 알 것이다.
몇 초면 보낼 수 있는 것을. 괘씸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나싶기도 하고.

아, 이러다간 정말 미쳐버리겠구나 싶기도 하고.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
제품도 레고블럭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
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앙.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p193)

 

씁쓸하고도 늘 우리가 사회 기사면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 나도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티비를 보고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2002년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고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다양한
교육을 받았으며 문화적으로 세련되었고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라났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p194) 작가의 말과 나의 말이 겹치고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놈의 대기업들은 채용은 안 하고 대학에 건물만 지어주고 앉아 있잖아. 누가 건물 필요하대?" 작가의 이력때문인가 나는 배부른 자의 아는 척으로 느껴지는 것이 확실히 전보다 내 이해심(마음의 여유로 순화)이 줄어든 것이 분명하다.

 

나의 글이 뒤죽박죽 길어지고 끝이 결국 헌 책방 '어제의 책' 아르바이트생으로 머물고 있는 주인공 민수가 지원의 말처럼 다 잘 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대체 장군, 탱고, 유리, 메두사 걔네는 뭐야. 꿈이야 결국 그 모든 자기앞 수표도?. 하루키한테 물어보고 싶다.

 

나도 백지 위에 말들을 적어본다.

 

돈이 필요해.
그럴려면 직장을 구해야지.
아니야, 직업을 가져야하는 거야.

 

문학평론가는 그럴듯하게 (모든 평론이 그렇지만) 추방된 젊음, 디오게네스의 윤리라는 멋진 글로 이 책을 평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양극화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는 현 MB정부에서 내가 살아갈 만한 철학은 보이질 않는다.

 

작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자 했던 디오게네스의 윤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았나보다.
우리는 그저 이카루스의 날개일 뿐인가.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다면 속을 수밖에 없는 환경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것일까.
조용히 '사보타주'해봤자 이제는 손해만 보는 세상 속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자기 내면에만 갇혀있으면 오타쿠라 손가락질 당하는 그런 세상 아닌가.

많은 질문을 던져놓고 작가는 멋진 집에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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