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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트리스의 예언 ㅣ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평점 :
"비어트리스는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어.
계속해서 안스웰리카의 귀를 잡고 생각했지.
나는 비어트리스야. 세상에는 내 친구들이 있어.
난 더 이상 머리카락이 없어. 하지만 친구는 있어."
#비어트리스의예언 #케이트디카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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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긴 글이나 한 권의 책을 '다'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딱! 보기만 해도 발췌독을 할 것인가, 긴 흐름을 가지고 통독을 할 것인가...판단할 수 있는 각이 나오는데 반해 발췌독을 전혀 할 수 없는 소설이나 동화책(특히 내가 읽기를 어려워하는 책이다. 글이 어려운 게 아니라 멋진 동화를 쓴 작가가 어른이라는 점이 나를 항상 좌절하게 만든다)은 다 읽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주중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공들여 동화를 읽는다. 누군가(케이트 디카밀로라는 천재)가 지어낸 이야기인데,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비어트리스의 예언>은 큰 판형과 묵직한 양장본, 신비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여자 아이가 그려진 표지가 강렬하지만, 왠지 오래된 책처럼 고루해보였다. (비슷한 풍의 화보가 그려진 '돈키호테'도 그런 식으로 안 읽고 있다가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을 살짝 망칠 정도로 빠져들었었지) 그래서 자꾸 거부하고 있다가, 휘파람 불며 나를 유혹하는 가을 하늘 밑에서 휘몰아치듯 읽어버렸다.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기어코 아름다움을 보는 수사 에딕과, 자기 이름 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아이 비어트리스, 아주 단단한 머리를 가진 염소 안스웰리카 그리고 발도 빠르고 기억력도 좋고 흉내도 잘 내는 소년 잭 도리의 이야기는 다 읽고 난 후에, 글이라기보다 노래 같았다. 계속 듣고 싶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비어트리스와 잭 도리의 모험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또 원서를 아이북스에서 다운받았다. 한글판이 끝났으면 영문판으로 갈아타면 된다. 더 오래 이 세계에 머물 수 있다.
계속 언급되는 예언은 비극적이고, 읽고 쓰는 것이 일반인에게 읽고 쓰는 것이 금지된 시대적 배경을 품고 있는 이 작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은 나를 잠시 그들의 세상으로 데려다놓는다. 확신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가 다르고, 내 곁에는 염소도 없지만 오직 이야기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같다. 어딘가 하나씩 모자라 보이거나 불행을 품고 있는 인물들에게 운명을 맡기는 '왕좌의 게임' 스토리 라인도 엿보인다. 나는 항상 이런 이야기에 끌려다니는데, 그들이 불행을 극복하고 무언가가 되고야 마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가 아는 것은 오직,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뿐이었지.
집은 원래 자기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곳이지 않아?"(150)
비교적 쉬운 문장으로 되어있는 동화책이기 때문에, 여름이가 커서 어느 정도 스토리라는 것에 감이 왔을 때 밤마다 같이 읽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처음 읽기를 배우고, 글을 읽어서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신날까. "세상은, 글자로 다 쓸 수 있어." 비어트리스가 잭 도리에게 한 이 말을 아이에게도 해주고 싶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용감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아주 긴 노래이다. 이 노래에는 해마도 등장하고 인어도 등장하고 사랑스러운 염소와 머리를 맴돌며 즐겁게 윙윙 날아다니는 벌도 등장한다. 상상이 꼬리를 달고 헤엄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정한 사람을 만난다. 어둠엔 길이 없지만 우리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더듬더듬 걸어간다. 가는 길에 자주 웃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비어트리스의 예언'이 말한다. 사랑, 그리고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우리는 몰라, 무엇이 될지.
무엇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아는 것.
우리가 아는 건 그뿐."(211)
*본 책은 비룡소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