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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금지된 소설들에 대한 회고
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이슬람공화국에서 금지된 것들.
ㅡ 파티, 사람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사랑에 빠지는 것, 손을 마주 잡는 것, 립스틱을 바르는 것, 공공연하게 큰 소리로 웃는 것, 그리고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 등.
언니 언니, 이란에서 어떤 여자 세 명이 잡혀갔는데 왜 그랬는줄 알아?
벤치에 앉아서 사과를 먹고 있었는데, 너무 요염하게 먹었다는 이유로 잡아갔대.
언니 언니, 이란에서는 아이스크림도 마음대로 못 먹는데,
언니 언니, 이란에서 여성은 가수도 될 수 없대, 목소리도 성적으로 자극하는 것이기때문에 감추어야한다는 거야.
언니는 그 동떨어진 나라 얘기 좀 그만 하라고 했다. 이 책은 이웃 '춘희'님의 추천으로 오래전에 빌려두었는데, 두꺼운 책이라서(난 책 두께에 연연하지 않는 무딘 사람이다) 늦게 읽었다기보다 책의 분위기가 좋아서 음미하면서 읽느라 거의 4주에 걸쳐서 읽은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나피시 교수는 한 마디로 고등교육을 받은 깨어있는 이슬람 여성이다. 그녀는 스위스와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영문학 학위를 따고, 테헤란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 소설의 힘을 누구보다 믿고 있는 나피시 교수는 혁명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이란에서 금기시 되었던 소설(롤리타, 위대한 개츠비,오만과 편견 등)들을 가르치고 토론을 했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헨리 제임스 작품들도 다루고 있다. (지독히 더 혼자일 때 다시 읽고 싶은 소설들)
그녀의 거실에서 토론하고 차를 마시는 7명의 젊은 이란 여성들.
그녀들은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려 보지 못한 여성들이다.
그래서, 세상을 보여주는 소설은 더 절실하고 간절했다.
나피시 교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책과 공책을 흐트려놓고 앉아서 수업 구상을 하느라 열심이었다. 외국 서적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어렵게 책을 구해 읽고 해지고 찢어질 때까지 읽고 연구하는 그녀. 상상만 해도 달려가 질문을 건네고픈 교수의 모습. 아니면 그녀의 질문에 답하고 싶은 충동.
"최고의 도덕성 형태는 자기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한다. 무슨 말일까.천천히 곱씹어 본다. 그녀는 아주 위대한 상상력의 산물들은 우리들 자신의 집에서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 방을 둘러보았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들의 목록을 적었다. 이 목록들은 최고의 소설이 항상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문제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이다.
책 220 페이지에 이런 글이 있다.
『소설은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나는 강의 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말했다. 소설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육감적인 경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세계로 들어가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그들의 숙명에 연루되지 않으면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소설의 핵심입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소설에서 읽었을 때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다. 공감이 없는 글은 죽어 있기에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녀가 믿었던 소설의 힘은 금지된 것들로 인해 숨쉴 수 없었던 이란 여성들에게 산소마스크였으며 그녀 자신의 삶을 신나게 해주는 장치였던 것이다. 책은 두껍고 할 말은 많지만 블로그 서평은 앞으로 간명하게, 독서노트는 질리도록 길게 쓰자는 것이 올해의 모토이기에 여기서 그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포근하게 했던 풍경이 떠올라 적으면서 상상해 본다.
안개 자욱한 창문
김을 뿜어내는 커피잔
우지직우지직 소리를 내는 장작불
나른한 슈크림(멋진 표현)
두꺼운 양털 스웨터
연기와 커피와 오렌지가 뒤섞여 있는 냄새
....나열만으로 흡수되는 무엇이 나를 그녀의 거실 한 복판에 있게 한다.
책 속의 토론, 작품 재판 한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듯 하다.
과연 서울에서 롤리타를 읽으면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