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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웨이안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안녕, 웨이안>,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한겨레출판, 초판 1쇄 발행: 2018년 3월 23일, 198쪽
책의 뒤표지에서부터 평범한 결혼을 할 수 있을까를 묻고 있는 이 책이 전달하는 전반적인 정서는 '쓸쓸함'이다. 어떤 공간에 머물 때 내가 차지하는 물리적인 공간을 제외하면 남는 그 공백들, 숨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무생물이 주는 차가운 감각, 인생을 살아가며 생기는 허무한 감각이 책을 뒤덮고 있다. 이 책 역시 앞서 서평을 썼던 <칠월과 안생>과 같이 여러 편의 짧은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가 '칭산'으로 동일해서인가 책을 덮을 때 느꼈던 씁쓸한 뒷맛이 아직까지도 생경하다.


책은 <칠월과 안생>, <안녕, 웨이안> 모두 제본 형식이 특이하여(단순히 책등 디자인이 별도로 붙지 않고 풀을 발라 말려놓은 데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세트 구성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최근 북디자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어서, '빨간색'과 '파란색' 두 가지의 색감을 다르게 하되 책 제본 방식을 통일하여 세트 구성의 느낌과 (간접적이나마) 중국 고서의 느낌을 동시에 살릴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 중국 저자가 쓴, (한국의 인터넷 소설과 같은 개념의) 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시선에서 바라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소설이라 하면 어느 직업군이건, 어떤 사람을 만나건 사랑에 빠지고 갈등을 겪고 위기를 맞고 헤어질 위기에도 놓이고 한 번쯤은 헤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을 쟁취하고 일도 성공하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중국의 인터넷소설이라는 이 책, <안녕, 웨이안>은 손쉬운 결말이 하나도 없다. 이별을 고하거나, 마음 속 갈등이나 고독은 그대로인데도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고뇌하고 번민하다가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 그리고 저자는 다시 외로운 누군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그를 재조명한다. 아, 또 슬프고 외로운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이 끝은 결코 행복하진 않으리라. 곱씹으며 다음 장을 펼친다.
"정말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지금껏 이해한 적도 없지만."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왜 이해하려고 하는 거야? 우린 언제나 외로워.
그냥 함께 있으면 되는 거지, 사랑할 필요는 없어."
42p, 「안녕, 웨이안」
안, 너는 꼭 식인 식물 같아. 생긴 건 위협적이지 않은데 누가 너에게 다가서는 순간 독을 쏘잖아.
상대방이 아예 손쓸 새가 없도록.
56p,「상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철 플랫폼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늘 차가운 얼굴로 어딘가를 향해 바삐 가고 있어.
다들 외로움이라는 투명 외투를 걸치고서.
그 모습이 꼭 심해를 가르는 물고기처럼 보여. 제각각 자기 일을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들이지.
75~76p,「텅 빈 도시」
단편마다 순간 순간 저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경계와 공허, 허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는데, '이 감정, 나도 너무 잘 알고 있던 거였는데' 싶기도 하고 최근에 받은 상처들로 내면이 많이 다치고 가라앉아 있어 '내가 모르다가 새로 이해하게 된 감정인가' 싶기도 했다. 책에 나온 글귀처럼 '내 마음이 차츰차츰 사위어 차가운 먼지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가, 또 그런 생각도 했다.
슬픔은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고 한다 해서 공유되는 건 아니다. 나도 그렇게 아파본 경험이 있고 울어본 경험이 있어야지 그 순간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역설적이게도 나의 그 아픈 경험을 상대에게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바쁘게 일하다 집에 오면 그 적막에 파묻혀 멍하니 있어본 사람만이, 불 꺼진 집의 불을 직접 켜 '누구 없나' 하고 허공에 말을 걸어본 사람만이, 속상하고 슬플 때 혼자 속울음을 삼켜본 사람만이 아마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라건대, 이런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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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는 섬에 있는 교도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 앞에 항상 혼자 있을 곳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사랑을 하기 전에는 충분히 혼자여야 하거든요. 그것이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저는 그저 사랑을 기다릴 뿐입니다.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해도 말이지요. 그 기다림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 94p, 「텅 빈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