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과 안생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칠월과 안생,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한겨레출판, 초판 1쇄 발행: 2018년 1월 29일, 287쪽

 

 

사랑하는 사람을 나눌 수 있는 우정은 도대체 뭘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다시 앞서 읽었던 <체공녀 강주룡>에 대한 서평에서 언급한 영화, <해어화>를 떠올렸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고증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품과 복장의 섬세함과 영상미 때문이었고 지금까지도 그 섬세한 연출력에 감탄하고는 한다. 그러나 유연석이 분한 캐릭터가 보여주는 우유부단함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무책임함, 천우희가 분한 캐릭터가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욕망에 반감이 들어, 이 영화를 떠올리면 항상 양가 감정이 들었다.

왜 그 남자는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너는 그저 귀여운 동생일 뿐이니 나를 포기하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 그 여자는 단짝 친구의 연심을 긴 시간 지켜보았음에도 무심히 짓밟고야 말까. 정말, 정말로 친구의 진심을 몰랐을까? 왜 제 마음을 친구에게 먼저 말해 주지도 않은 채 휩쓸리듯 격정적으로 감정을 발산하고야 말았을까. 제 감정에는 솔직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감정에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다고, 영화를 본 지 한참이 흘렀는데도 그때 느낀 감상이 생생하다.

실은 내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직 덜 자란 것일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과 이 책, <칠월과 안생>을 읽는 지금의 감정이 비슷한 걸 보면 내가 한결같은 건가 싶은 생각도 해 본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과 감정을 발산하는 것. 참고 억누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49쪽
"가명, 잘 생각해. 나인지, 안생인지. 시안에 남을지, 돌아올지. 넌 하나만 선택해야 해."
칠월은 손목에 차고 있던 연청색 옥팔찌를 풀어 가명에게 건넸다.

"이거 우선 네가 가지고 있어. 안생은 어릴 때부터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았어. 사실 나도 안생이 이 연청색 팔찌를 더 좋아한다는 거 짐작하고 있었어."

 

 

 

 

 

 이 책은 총 열 가지의 단편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그 안에 사랑, 우정, 충족되지 않는 허무와 공허의 감정을 녹여 넣었다. 책의 제목이자 첫 번째 단편이기도 한 <칠월과 안생>의  주인공 '칠월'과 '안생' 외에도 다른 단편에 나오는 린, 안란, 안, 란, 징, 차오 등의 인물은 이 이야기의 맥이 흐르는 듯 흐르며 겹치는 듯 겹치지 않게 한다.

이름도, 그들의 삶도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 들지만 각 단편의 인물의 삶이 겹치지 않고 누구 하나의 이야기도 똑같지 않다. 아, 접근이 잘못 된 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똑같은 삶'이란 없는 거다. 그러나 이들을 관통하는 굵은 줄기에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고야 마는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다. 왜 그들은 행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내몰기만 할까.

그러나 실은 나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라고 정확히 설명은 못 해도, 제 마음을 들쑤시는 무언가를 잠재울 방법을 그들 자신이 모르는데 타인이 노력하여 잠재울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기분들이 왜 하나 같이 이리도 씁쓸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곳에 정착할 수 없는 인간이야.'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인간이야.' '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우리는 결코 영원하지는 못할 거야.' 열기에 들떠 서로를 탐하면서도 '아, 그때 말고는 그와 소통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구나.' 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띠는 그들의 면면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 풍파를 다 겪었기에, 일에 치이고 사람에 상처 받았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느낀다. 그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감정에 마음을 기울이고 읽고 또 읽으면 왠지 나도 모르게 침잠하는 느낌이다.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현실 부적응자는 누가 판단할까? 누구의 기준과 잣대일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현실 부적응자이지 않을까? 잘 정착하고 한 계단씩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롯이 나의 기준일 뿐 다른 이에게는 미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남들의 시선이 중요할까? 책을 죽 읽어가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삶, 하나뿐인 내 인생. 상처도 결핍도 내가 끌어안고 가는 것. 허무한 선택도 기쁨도 평안도 방랑도 다 제 선택이라고. 다른 이의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열망도 탐색도 방랑도 저를 알기 위한 과정일 수 있겠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부적응'으로 비춰진대도 그들의 눈에 비친 내 삶은 아주 작은 조각일 수 있겠다고.

똑같아지려고, 평안해지려고, 남들만큼 하려고, 쥐어 가지려고 애를 쓰던 삶에 한 번 폭우가 내리고 씻겨 내려간 것처럼 일렁이던 마음을 꼭꼭 다져주는 책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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