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폴 맥어웬 지음, 조호근 옮김, 허블, 초판 1쇄 발행: 2018년 9월 5일, 520쪽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Spiral>로, 외국에서는 2011년에 출간되었다. 책 표지의 그림과 글씨체의 조합을 보면 (그리고 외국에서 발간한 책과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책의 디자인의 차이를 비교하다 보면)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은 SF 스릴러라는 분야와 약간 색채가 다르게도, 또 다른 시선에서 보면 잘 어울리게도 느껴진다.내게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은 제목이었다. 소용돌이에 휩쓸리는듯 빨려드는 글씨. 그리고 소용돌이를 관조하는듯 올려다 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는 아주 적합한 디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디자인에 어떤 상념을 가지지 않고 가볍게 책을 편 후,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배를 향해 노를 저어 오는 구명 보트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깨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을 만큼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책을 읽을 당신도 이에 공감하리라고, 또는 책을 읽은 당신도 그리 생각했으리라고 본다.
어떤 책을 읽을 때 일련의 사건들과 대화에 집중하게 되는 데에는 (작가가 설정한) 캐릭터가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그런 면에서 작가가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았다고 단언한다. 왜냐, 작가가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해 그려낸 덕분에 그 인물의 생김새, 성격, 신념, 취미, 습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함께 떠올리며 이야기의 흐름에 보폭을 맞춰가며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릴러물은 이러한 심리를 잘 따라서 밟아갈수록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덕분에 나는 리암 코너 교수의 젊은 시절부터 손녀와 함께하는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럴 법 하다'며 별 어려움 없이 그의 마음에 공감했고, 신념을 지키는 강단 있는 모습에 그를 자연스레 응원하게 되었다. 비록 여러 균류를 수집하는 그의 손에 굉장히 위험한 '무기들'이 쥐어져 있었기에(그가 일명 '부패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곳에 속한) 그것들이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도 했지마는.
생생함을 주기 위한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스파이, 범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일본 731 부대의 실험으로 배양된 최악의 균 '우즈마키(소용돌이라는 뜻으로,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 끔찍한 환각 증상을 보이고 광기에 시달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균류)'가 가미카제 특공대의 공격으로 미군 함대 한 척 전체에 퍼지는 장면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사로잡은 일본의 가미카제 '히토시 기타노'에게서 얻은 우즈마키 균이 든 실린더 하나. 그것이 리암 코너 교수의 손에 있으니 더욱 불안할밖에.그 실린더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내는 (것만 같은) 리암 코너 교수. 독자 입장에서는 그가 모으고 있는 저 균류의 바다가 지레 불안하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나. 초반 자세하게 묘사되는 우즈마키의 위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목도하고도 저들과 공생할 수 있을까. 두렵지 않을까.새초롬하게 움직이던 마이크로 크롤러(리암 코너 교수가 일할 때 손을 빌리던 기계명)들이 결국 부검을 통해 본인의 위장에서 발견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조용한 공간에서 일하던 코너 교수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위험에 처하리라는 사실을 아는 독자들은 숨죽여 그 때가 오기만을 손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결국 리암 코너 교수는 다리 위에서 투신한다. 자살할 동기가 없는 사람이 처음 보는 여성과 함께 다리를 건너던 중, 갑작스레 달리다 뛰어내려버린 상황이다.손녀인 '매기 코너'와 리암 코너 교수의 동료이자 제자인 '제이크 스털링'은 함께 유언장을 살피며 단서를 찾아 나간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들 앞에 실마리가 하나씩 나타나고, 그 와중 듣게 된 리암 코너 교수의 부검 결과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진실을 향해 한발씩 나아갈수록 어룽거리던 암살자의 그림자는 더욱 진하고 뚜렷해진다. 숨겨진 비밀, 우즈마키의 행방, 그리고 레터 박스와 모스 부호까지. 이 모든 소재가 얽히고 설켜 참혹한 진실로 나아가게 하는 책,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이 책의 매력은 '과학 스릴러'만이 줄 수 있는 사실에 입각한 추리 과정과 상세한 설명으로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는 점이다. 스쳐지나가는 설명이 중요한 힌트가 되기도 하고, 과정과정을 이해하며 읽어나가는 데서 오는 지적 충족감이 상당하다. 아래는 그와 관련한 페이지들을 일부 담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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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체로 사로잡힌 이들을 가장 빨리 죽인 균류를 수집해 배양을 거듭하여 만들어 낸 '우즈마키', 그리고 그 위험한 무기를 막는 것은 결국 사람. 사람이 만들어낸 비극과 그 비극을 수습하는 사람 간의 숨막히는 관계 속에서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긴장하고 추리하고 상상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코넬 대학에서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폴 맥어웬의 소설,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은 '기술 특유의 명암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써낸 한 편의 근사한 이야기로 접할 수 있다'는 점(책 소개에서 발췌)에서 흥미롭다. '과학 스릴러'라는 단어에 끌린 독자라면 과감하게 이 책을 집어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