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지음, 한겨레출판, 초판 1쇄 발행: 2018년 7월 18일, 253쪽, 정가: 13,000원

 

강렬한 저 표지를 보라.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표지 디자인을 보며 내용을 추측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 역시도 그렇게 내용을 먼저 추측했는데, 표지만 보며 든 생각은 당당하고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절개를 지닌 여인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어 강주룡이라는 분의 삶을 다룬 일대기이리라 싶었다. 연이어 강주룡이라는 분의 이름도 내 이름과 비슷하게 중의적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이름은 성별을 알 수 없어 좋은 것 같구나. 이 이름은 좋은 이름이다.' 첫 날 출석부를 보며 내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던 교수님의 말씀에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던 대학 시절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85~186쪽

내가 강주룡이오.
주룡은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자기소개를 이렇게 불친절하게 해보기는 또 처음인 듯하다. 남자는 주룡의 얼굴을 얼마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름만 듣고 영락없이 남직공인 줄 알았건만.
그짝 함자는 얼마이나 잘났기로 남의 이름 듣고 웃으시기요?
주룡이 쏘아붙이자 남자는 웃음을 그치고 목을 가다듬는다.
실례했소, 나 정달헌이라는 사람이오. 조선공산당에서 노동조합 연구합니다.
:
옳소. 하여간 이름도 성품도 걸작이군요. 듣던 대로요.
남의 이름 웃음거리 삼지 마시요. 두루주에 용룡 자입네다. 내 한 몸으로 이 세상 다 안아주는 용이 되라는 이름입네다.

 

 

 

 

강주룡은 실제 인물이다. 책의 맨 마지막에 그녀가 혼자 을밀대 지붕에 올라앉아 홀로 노동 운동을 하는 기사가 실려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 그려진 그녀는 그 기사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당시 여느 여성의 삶이 그랬듯)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으로 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물동이로 물을 여러 차례 길어 오며 부지런하게 일했던 사람. 일제 강점기에 남편을 따라 독립군 기지 중 하나에서 반 년간 지내며 그들을 위해 산모로 분하고 무기를 나르기도 했던 대담한 이. 남편을 잃은 죄로 시댁에서 머리채를 쥐여 잡히고 얻어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무고한 아내. 공장에서 고무공(工)으로 일하면서도 모단 껄(modern girl)이 된 자신을 꿈꾸기도 했던 천상 여자. 권리 신장을 위하여 두려움을 억누르고 동지들과 고무 공장 파업 운동을 하던 노동자. 그 모두가 강주룡이다.

 

 

 

65쪽
서방 따라 독립군 한다 나서지 않았으면 공은 머인 공을 세웠갔네. 기러니 나의 공이 내 서방 공이지. 안 그러네?
애초 하고 싶던 말과는 딴판이지만 이 또한 참말이다. 주룡은 공을 독차지하고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전빈이 언젠가 했던 말처럼 주룡이 독립을 원하는 것은 제 임자 때문이다.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

 

148쪽
대체로 조선인 자본으로 운영되는 고무 공장과 달리 제사 공장은 공장장도 일본인, 관리인도 일본인인 경우가 흔했다. 옥이네 공장도 잠사 애들만 조선인이고 간부급부터는 죄다 일본인이라는 모양이다.
욕봤구나야.
일없대두. 욕 몇 마디 듣는 거야 참말 아모것도 아니오. 니혼고가 촘 되는 아새끼들을 표 나게 예뻐하구 밥도 잘 주구 하는 거이 서럽지. 순 차별 대우다.
실 뽑는 공장 주제에 머인 일본말까지 하라구 야단이네?
내 말이 그 말이오. 어차피 공순이들이라고 무시에 무시를 하면서.

 

181쪽
생각거니 저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거이 분명합네다. 우리가 사람인 것을, 그것도 저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우리 손으로 보여주자면 저 강덕삼이 형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의 단결된 뜻을 총파업으로 보여주어야 됩네다.
:
총파업 선봉에 이 강주룡이가 설 것입네다.
내 동지, 내 동무, 나 자신을 위하여 죽고자 싸울 것입네다.

 

 

 

어떻게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디까지가 그녀의 실제 모습일까. 한편으로는 또 그것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 인물을 책으로 그려낼 때 그녀의 세세한 모습 하나하나를 사실 확인할 수 없었겠다 싶으면서도, 이런 인물의 일생기를 엮으며 또 그런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진 않다.

책에서 그려지는 다정한 아내, 다정히 내 방 와서 자거라 하는 셋방 언니의 모습에서 주룡의 여리고 부드러운 심사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전빈을 잃고 가족을 떠난 이후로는 제 의사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며 점점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쉽지 않은 그 여정을 지켜 보며 나도 몰래 손에 힘을 주고 응원하게 된다.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주룡은 평생 처음으로 제가 고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풀고 옷을 벗을지 옷을 벗고 머리를 풀지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부모를 따라서 이주하고, 시집을 가래서 가고, 서방이 독립군을 한대서 따라가고, 그런 식으로 살아온 주룡에게는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고무 공장 직공이 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일말 서러운 일일지언정.(153쪽)'
그래서 그녀는 곁에 잠든 주인집 딸애 '옥이'의 이마를 쓸어주며
'앞으로 너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201~202쪽
여러분은 자기 부인이 자기와 같은 사상을 가졌으리라구 보십네까?
:
비록 짧은 생각이지마는 내래 여러분의 배우자들은 여러분과 같은 사상을 가졌으리라구 생각하지 않습네다. 해가 저문 시방 이 시각에 여러분은 이 자리에 있구 그네들은 가정을 지키구 있는 탓입네다. 내처 한마디 덧붙이자면 여러분은 그네들의 사상이 어떤지 궁금해본 적두 없을 거입네다. 내심 아녀자의 무학무식이 당연하구, 여러분이 공산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하는 거이니 부인도 도매금으로 공산 부인인 거이 당연하다 여기시디요. 이 말이 옳지 않다면 시비 가려주시라요. 틀렸다 하신들 여러분이 부인에겐 이런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고 혼차서 예 와 있는 것은 변하지 않습네다. 부인들께선 아일 적부터 배운 법도대루 남편에게 순종하여 집을 지키고 있는 거이 아닙네까.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달헌이 손뼉을 친다. 눈치를 보던 젊은 회원들도 마지못한 기색으로 달헌을 따라서 손뼉을 부딪힌다.

 

 

왜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많고많은 바람 중 하나였을까. 지금이야 여성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당시에는 인권이 뭔가, 여성들은 혼인하고 나면 출가외인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기에 바빴다. 이 모습을 잘 드러낸 것이 바로 202쪽, 노동 운동을 위한 모임에서 9할 이상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자리에 여성이 단 한 사람밖에 없는 모습을 꼬집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이러한 환경을 그려낸 대표적 인물로 주룡의 고무 공장 동기 홍삼녀, 애칭으로 부르자면 '삼이'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서 홍삼녀라는 이름 역시 여자아이의 이름을 신경써서 짓지 않는 시대상을 드러내는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삼이는 '온 뼈마디가 쇠를 물고 있는 어금니처럼 시리다면서도 한 팔에는 애를 끼고 한 팔로는 고무형을 잘도 주물렀다. 집에서 애를 보자면 돈 버는 사람이 없어 곤란하고, 갓난애를 두고 일하러 오자니 시모도 남편도 믿을 수가 없어서 데리고 왔(173쪽)'고, 파업단을 나오지 않으면 이혼을 당해 아이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위협을 받기도 한다.

또 모단 껄이 된 주룡의 모습을 상상해 솜씨를 부린 삼이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작업 반장이 보인 행태도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모단 껄은 학생 아니면 기생이라고, 할라면 저하고 자유연애 한번 하자'는 막말을 퍼부으며 머리채를 잡고 마구 패는 모습에서 실제로 이런 시대가 있었구나,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했겠구나 싶다. 안타깝고 같은 여자로서 분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사이에 들어가 있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라는 노래를 들을 때는 이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극중 천우희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니 함께 들어도 좋으리라는 생각. 이 노래를 부른 윤심덕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죽었다는 대목에서는 이 영화와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구나 싶었다.

 

 

 

 

141~142쪽
또?
또 무어.
토끼 얘기 또 해주어.
글쎄 무어가 있으려나. 기래, 옥이 늬 거 아니?
무얼 말이오?
토끼는 외로워서 죽기도 하는 짐승이란다.
거짓말.
참말.
거짓말!
참말이다.
외로워서 죽는다니 순 거짓말이다. 사람도 아니면서.
옥이의 말에 주룡은 픽 웃는다.
사람이 외로워 죽는 것은 되는 말이구?
주룡의 물음에 옥이는 곰곰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다.
사람두 마찬가지. 죽을 만치 외롭다는 거는 기양 하는 소리지. 참으루 외로워서 죽은 이가 있거든 나와보라지.
주룡은 뭐라 대꾸하려다 입을 다문다. 옥이는 외로워본 적이 없을 만하다. 동생들이며 부모하고 함께 지내는 방이 지겨워 셋방으로 건너와 주룡하고 자는 애니, 오히려 지독하게 외로워보고 싶을 것이다.

 

33쪽
모든 것이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게 보인다. 작고 우습다. 무엇에 그토록 성이 났었는가도 잊힐 만큼 만사만물이 멀게 느껴진다.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면 나 또한 그렇게 작아지겠지. 다시 사소한 것에 화가 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그 좋은 서방 생각도 나지 않는다. 주룡은 그것이 외로움인 줄도 모르고 외로움을 곱씹는다. 오래 골몰할 수는 없는 생각이다.

 

 

 

 아무리 단단해보이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낀다. 본인의 선택이었으나 헤어진 가족이 그립고, 사별한 남편이 보고 싶다.  제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가 귀하다는 것은 그 손에서 흘러 나가 빠져 버린 이후에야 알 수 있다는 점. 잘 알고 있던 사실이어도 들을 때마다 슬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강주룡이라는 한 사람의 일생기를 그리면서도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문학적 표현에 감탄했고, 박서련이라는 작가를 궁금케 했던 작품, <체공녀 강주룡>. 체공, 공중에 머물며- 지붕에 올라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했던 여인. 그녀의 마지막은 외로웠을까?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 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긴 여인. 정말 그녀는 마지막까지 외롭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그녀의 마음 자리를 따라 가며 계속 씁쓸한 질문을 던져 본다.

*그리고 이 책의 이름은 끝의 끝까지 내 이름 옆에 놓일 것이다, 하였던 작가 박서련 님에게 한 번 더 경의를 표하며! 당신의 다음 책도 분명히 제 서가에 꽂힐 것이다,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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