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리자 톰은 이모네 집으로 보내져 여름방학을 보내야만 한다. 동생과 함께 마당의 나무를 타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 톰은 정원도 없는 다세대 주택의 셋집인 이모네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것이 끔찍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에게 영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집주인 바솔로뮤 부인의 괘종시계가 13번의 종을 울리면, 다세대 주택의 뒷문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마법의 출구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소녀 해티가 있다.

「톰은 졸면서도 시계를 비웃었다. 열셋! 시계는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듯 한 번 더 치고 나서 잠잠해졌다. (p28)」

손꼽히는 ‘문장가’라는 필리퍼 피어스의 명성 그대로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역시 미려한 문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글이다. ‘시간’을 가로지르는 환상도 굉장히 흥미롭다. 현실 세계의 시간과 정원의 시간이 대칭적으로 흐르지 않는 까닭에 톰과 해티의 마냥 즐겁기만 하던 시절들이 점점 퇴색해가는 순간에는 어쩐지 가슴이 시리기도 했다. 톰은 여전히 어린 소년이지만, 해티는 소극적이고 수줍음 많던 소녀에서 사춘기를 지나 숙녀가 된다. 이제 해티는 어린 시절에 함께 뛰어놀던 톰보다는 사촌오빠와 함께 어울리는 어른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정겹지만, 톰과의 한때는 그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어른이 돼 버린 해티가 낯설기만 한 톰 역시 언젠가는 그런 어른이 될 것이고.

시간을 건너 마법의 정원에서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대단원은 영화 ‘동감’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말로 짠한 감동. ^^

「톰, 그 때 나는 알았단다. 정원도 항상 변하고 있다는 걸.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지.(p287)」

다른 코멘트 따위 필요 없다. 우리 기억 속의 즐거운 추억은 시간이 지나며 멋진 무늬로 바래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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