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 만에 다시 서재문을 열었다. 먼지가 뽀얗다.
작년 컴퓨터파일을 날린 후로-일부 다시 복구할 수 있었지만-잃어버린 글들이 아까워 다시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글을 잘 못쓴다, 혹은 게으르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얼마 안되는 글들을 아까워해야할 만큼 바쁘기도 무지하게 바빴다. 그 만큼 나의 삶의 변화도 많았고..... 지금 여기는 일본의 조그만 항구도시이다. 이곳에 있는 작은 대학에 전임으로 왔고, 학생들에게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한국이란 욘사마의 나라, 젊은 연예인들과 한국드라마, 그리고 수학여행때 가 본 서울과 경주 정도이고, 한국역사나 문화에 대해 관심은 커녕 아예 한국이란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사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늘 일본을 의식하고 살았던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 대학에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재미있게 열심히 배우는 학생도 많지만 의무방어자세로 앉아 있는 학생들이 더 많다. 이들에게 얼마나 한국어가 매력있는 언어인지, 한국말이 얼마나 과학적인 언어인지, 일본말보다 얼마나 다양한 발음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도쿄와는 달리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바닷가라서 스시와 생선맛도 좋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방출당해서 좋고............그런데도 가끔 한국이 몹시 그립다는 것이다. 지난 번 황금연휴에 집에 갔다가 돌아오기 싫어서 혼났다. 한국에서의 그 지긋지긋했던 강사생활이 아직 나를 가끔씩 가위눌리게 하는 데도 말이다.
먼지 낀 서재문을 다시 들어선 건 아마 미우면서도 그리운 한국으로의 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조금씩 다시 독서를 시작하게 된 까닭도 있고...무엇보다 내가 팔자에 없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국어가 아니라)를 가르치게 되었으니, 누구보다 정확하고 능통하게 한국어를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일본어적인 한국말이 더러 튀어나오고 있고 있고, 일본어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겨서 오타를 내기도 한다. 나의 한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똑똑하고 예리하게 지적해 줄, 게다가 따뜻한 인간성을 가지기까지 한 분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많이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