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학교에 헌혈차가 와서 헌혈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몇차례 헌혈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불합격.  헤모글로빈 수가 모자라느니, 생리중이니 등등 이런저런 이유들로 거절 당했다. 다시 기회가 온 것은 대구 지하철공사장 폭파사건으로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 피가 모자랐을 때였다. 교회에 차가 와서 예배를 마친 후 검사를 받았더니 기쁘게도 합격, 유년부실에 좌악 누워서 헌혈했다.  ‘0선생은 두 통 뽑지’라는 주변분들의 농담을 들으면서...


이후 약 10년이 지났나.... 합격여부를 걱정하면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합격, 헌혈할 수 있었다. 작년 서울에서 어떤 청년이 헌혈하고 죽은 사건이 생각났다. 후유증치고는 심한 사건이어서 나 역시 그렇게 되면 어떻하나 걱정이 되었는데, 좀 어지럽고, 식은 땀이 약간 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 지금도 약간 어지럼증이 있긴 하나 이 정도야 가끔씩 있는 일이고...


힘이 없고 우울해지는 것은 아마도, 지난 몇 달 긴장하며 외국생활을 했던 탓이리라.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생활이 안정되어 여러모로 여유가 생긴 것은 분명한데... 아마 정신력이 많이 약해진 듯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서당에 갔다가 학교에 가서 강의하고 늦게까지 공부하던 예전의 나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정신력이 곧 육체력이니 그 만큼 체력이 떨어진 탓이기도 할 게다. 거부하고 싶지만 늙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이 적은 탓이다.


같은 아파트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인이라 언어소통이 불편하고 그나마 언어가 좀 통하는 일본사람들은 폐쇄적이고...접근해 오는 남자들은 느끼하거나 무례하고....이리저리 따져보니 결국 나 혼자인 것이 제일 편한데, 이 역시 실패한 인생의 증거처럼 느껴져서 우울해진다. 그런데, 여기서의 ‘실패’의 기준은 뭐지? 이곳에 오기전 수도원에서 일주일간 침묵수련을 했을 때에는 말하지 않고도 결코 외롭거나 하지 않았는데....같이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탓일까. 지금의 힘든 감정은 수도원의 약발이 다 떨어진 탓일까.

하여간, 난 일본인과 피를 나눈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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